비틀거리거나 왜소하면 어때, 이것이 장애 여성들의 '욕망'
[리뷰]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몸 이동' 준비운동 얼음 땡>
▲ 정은혜 작가가 지난 2022년서울 종로구 갤러리 토포하우스에서 열린 '은혜씨의 포옹'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정은혜 배우가 다운증후군 당사자로서 직접 연기를 보여주어 호평을 받았다. 약간 어색하게도 보이는 그의 연기가 실상 연기의 어색함이라기보다, 그간 드라마 등의 콘텐츠에서 재현된 비장애인의 장애 연기가 오히려 어색했음을 방증하며 묘한 감동을 줬다.
이는 연기의 리얼리티만을 중시해야 한다거나, 장애인만 장애 연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장애인이 장애인의 몸으로 연기를 펼침으로써 사회가 무지했거나 경시했던 그들의 몸이 그 나름의 '고유함'과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럼으로써 시청자는 비로소 장애인의 몸을 인간의 몸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정상 비정상의 이분법에 갇혀있던 비장애인의 특권적 몸을 면구스러워하면서 말이다.
불편하다고 회피할 수는 없다. 비장애인의 불편한 감정은 이들이 불편한 몸을 이동해 밖으로 나오면서 비롯됐다. 집에만 머물던 장애인이 그들의 불편한 몸을 움직여 연극 무대로 지하철로 나서자 그 낯선 출몰에 당황한 것이다. 이들의 등장 혹은 진출이 충격을 던진 까닭은, 그동안 장애인의 몸을 볼 수 없는 상태로 살며 이 세상이 비장애인의 멀쩡한 몸으로만 구성됐다는 허위를 만천하에 깨부수었기 때문이다. 장애를 극복한 강인한 장애인이거나 장애에 굴복한 불쌍한 장애인이라는 이분법을 무시한 나대로의 몸을 내보이는 장애인의 몸 앞에서 비장애인은 쩔쩔매고 있었다.
장애여성 연극단의 매력
▲ <‘몸이동’ 준비운동 얼음땡> 포스터 ⓒ 극단 춤추는허리
서두가 길었는데 22일 모두예술극장에서 관람한 장애여성들의 연극 공연 <'몸 이동' 준비운동 얼음 땡>을 보며 떠올린 단상이다. 이 작품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15~23일 개최한 '모두스테이지 2024'의 일부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는 정상, 주류, 질서로 대변되는 기존 예술 문법에서 벗어난 장애예술의 다양한 창작과 표현방식을 탐구하는 퍼포먼스(5건), 워크숍(3건), 강연(1건)이 펼쳐쳤는데, '춤추는 허리'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앞서 장애여성 단체 '장애여성공감'은 지난해부터 장애여성 극단 '춤추는 허리'를 진행해 왔다. '장애여성공감'이 분기마다 보내주는 활동상에 이들의 '몸 이동 프로젝트'가 소개되었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지금껏 전원이 장애인인 연극단도 없었는데, 그것도 장애여성 연극단이라니 놀라웠다.
하지만 모든 단체의 속성이 그렇듯이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다양하게 모였는데 원팀이 되는 일이 결코 쉬울 리가 없다. 장애하면 대부분 지체장애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춤추는 허리'의 구성원만 보더라도 장애의 형태가 다양함을 알 수 있다. 골형성부전증, 뇌성마비, CMT(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의 점진적인 손상에 의해 팔과 다리 근육이 위축되고 보행 장애가 발생하는 유전질환), 프리더윌리 증후군(15번 염색체의 이상으로 지능 장애, 작은 키, 과도한 식욕, 비만, 성 기능 장애 등이 나타나는 유전 질환 - 기자 말), 지적 장애 등 각각의 장애를 안고서 극단을 꾸린다. 장애인이라고 모든 장애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춤추는 허리'의 무대는 배우들이 여러 파트로 나뉘어 연기했다. 첫 무대는 휠체어를 타는 쌍둥이 자매 진성선·진은선 배우가 등장해 자신들의 연기가 애매하다는 평에 대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한다. '니들이 장애 연기를 알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모든 연극이 비장애인에 의해 재현되고 장애인 연기도 비장애인이 수행하는 이 지형의 기준으로 장애인의 연기력을 재단하는 관객의 판단은 사실 매우 편파적이지 않은가. 뜨끔했다.
휠체어를 매우 잘 타는 두 배우가 휠체어로 무대를 활보하거나 질주하자 무대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이어 자신들의 근육 장애로 손목 부분이 마치 뼈가 없는 듯 흐물흐물 움직이는 것을 보이며 웃음을 유도하자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장애 엄숙주의에 입각하면 이런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리면 몰지각한 비장애인의 행동이 되지 않는가. 그런데 비장애인도 몸으로 별짓을 다하며 웃기는데 장애인이라고 금지해야 하는 것도 이상하다. 결국 묘한 해방감을 느끼며 신나게 웃었다. 경멸과 조롱이 담긴 비웃음이 아니라면 웃기는 몸을 보고 웃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 극단 춤추는 허리 ⓒ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유튜브 캡처
프리더윌리 장애를 가진 조화영 배우는 무대를 압도했다. 대사를 천천히 힘있게 전달하는 그의 연기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15번 염색체 이상으로 장애를 가진 자기 몸을 설명하며 "장애냐 비장애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던지는 대사는, 그 고민에 휩싸여있다기보다 '이런들 저런들 내 몸이다'로 해석되며 몸에 대한 긍정감을 고조시켰다. 관객과 함께 "프리더 윌리 파이팅"을 외치는 그의 몸 연기가 일품이었다.
뇌병변 장애로 언어 전달이 쉽지 않은 서지원 배우의 등장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대사는 자막과 수어 통역으로 전달되었다. 경증의 뇌병변 장애 배우 고나영과 함께 선 무대에서 이들은 각기 정도가 다른 장애로 겪는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부의 차이에 의한 갈등을 비집고 나온 소통의 문제를 직시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보다 장애인 내부의 차이가 더 큰 것처럼, 이들은 서로 다른 자신들의 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과정은 종국에 동료의 몸을 이해하고 조응하는 것을 넘어 자기 몸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는 성찰에 이른다.
장애로 비틀리거나 왜소하거나 거대해진 몸을 무대에서 만나는 경험은 경이로운 쾌감을 주었다. '춤추는 허리'의 배우들은 장애인이 저 정도면 잘했다는 칭찬은 사양할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더 원대하다. 개성 있는 장애로 특별한 배우가 되는 것, 매력적인 배우가 되는 것이다. 신선하지 않은가. 비장애인의 차별적 시선으로 꽁꽁 결빙된 편견의 얼음덩어리가 마침내 녹아내리고 있다. '얼음 땡'이다. 이제 장애여성 몸의 욕망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를 목도할 준비가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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