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짐승·귀신 소음 고문" 절규에 김동연 "모든 수단 강구"

파주 대성동 마을 방문, 대남방송 피해 증언 청취... 방음창, 방음문 설치 등 지시

등록|2024.10.23 18:12 수정|2024.10.23 23:20

▲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3일 파주 캠프그리브스에서 열린 대남 확성기 소음피해 주민 긴급현장 간담회에서 민북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경기도


"이러다가 진짜 미치겠더라고요. 전쟁 나는 줄 알았어요. '꽈광'하고 시작해서 밤에는 짐승 소리, 굉음 소리... 이게 9월 28일부터 시작된 거예요. 한 달 동안 이 고문을 받고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고통스러운 암흑세계예요. 잠을 한숨도 못 자고...

귀마개를 20일 하니까 염증이 생기더라고요. 염증은 소리 안 들으면 낫겠지만, 마음의 상처가 스트레스가 돼서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차나 트랙터만 지나가도 '또 시작하는구나' 하게 되고... (집안) 입구만 들어서면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열이 오르고, 귀에서 '웅웅' 환청이 들리고, 이게 사는 거냐고요."

비무장지대 내 최일선에 소재한 파주 조산리 대성동 마을의 한 주민이 23일 김동연 경기도지사를 만나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방송에 따른 피해를 절절하게 호소했다.

이날 김동연 지사는 최근 고조되고 있는 남북 접경지대의 군사 긴장으로 나날이 심각해지는 주민 피해 실상을 청취하고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대성동을 방문, 마을 주민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강민석 경기도 대변인에 따르면, 김동연 지사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김 지사는 현장에서 곧바로 주민들의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세 가지 방안을 지시했다.

▲방음 새시를 대성동 마을 51가구에 설치-방음창, 방음문을 만들 것 ▲ 건강검진 차량과 '마음안심버스'(트라우마 검사 및 진료용) 2대를 바로 투입해 주민들 '마음의 병'과 난청 등을 치유해 드릴 것 ▲ 탄현 영어마을에 주민 쉼터와 임시 숙소(그래도 힘든 주민 대상)를 마련할 것 등이다.

김동연 지사는 특히 방음 새시와 관련 배석한 도 간부들에게 "시간 끌지 말고, 당장 내일이라도 공사를 해서 최단기에 마무리하라"고 지시하는 등 빠른 조치를 독려했다.

▲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3일 파주 캠프그리브스에서 열린 대남 확성기 소음피해 주민 긴급현장 간담회에서 민북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경기도


▲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3일 파주 캠프그리브스에서 열린 대남 확성기 소음피해 주민 긴급현장 간담회에서 민북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경기도


"밤낮없이 확성기 타고 나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주민들 극심한 고통 토로

올해 들어 파주 접경지역 일대는 반북·우익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맞서 북한이 오물풍선을 살포하고, 이어진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로 대응하면서 긴장의 수위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이날 김동연 지사를 만난 접경지역 주민들은 기다렸다는 듯 북한의 소음방송으로 인한 고통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현재까지 25일가량 지속되고 있는 북측의 대남 확성기 방송은 주민들이 이제껏 거주하면서 들어본 대남방송 중 가장 높은 강도의 소음이었다. 들개, 여우, 까마귀 등 동물 울음소리부터 기계 돌아가는 소리, 쇠뭉치 긁는 소리 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밤낮없이 확성기를 타고 방송되면서 대부분의 주민은 극심한 불안과 불면증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성동 주민 A씨는 "죄인도 잠은 재울 것 아닌가? 우리는 죄인보다 더하다"면서 "너무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B씨는 "완전히 지옥 같다. 중증 환자여서 병원 갔다 오면 쉬어야 하고, 아이들은 공부해야 하는데 그런 걸 할 수 없다"면서 "동네 어르신들은 (확성기에서 나오는) 비행기 뜨는 소리에 전쟁 났다고, 피난 가야 된다는 분도 계신다"고 전했다.

C씨는 김동연 지사에게 "저희 좀 살려달라. 저희도 대한민국 국민 아니냐"며 "부귀영화 바라는 것 아니다. 잠 좀 자게 해 달라. 사람답게 평범한 일상을 원한다"고 절규했다. D씨는 "우리 측에서 하는 좋은 소리(대북방송)도 매일 들으면 환청이 들릴 정도"라며 "그러다가 밤에는 (북한의) 대남방송... 귀신 소리, 동물 학대해서 나는 소리 같은 게 엄청 시끄럽게 들린다. 대성초등학교 애들이 전학 갈까 불안해하고, 어느새 그 많던 고양이들이 없어졌다. (고양이들도) 공포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머리가 아주 터져나가고 뒷골이 뻣뻣해진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너무 아프니까 울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토하고, 눈이 거의 20일째 퉁퉁 부었다" 등 북한의 대남 소음방송으로 인한 고통을 토로하는 주민들의 증언이 계속 이어졌다.

특히 주민들은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의 원인을 제공한 반북·우익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막는 것이 가장 시급한 해결방안 중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민북지역 통일촌 주민 E씨는 "대북전단 살포와 대북방송으로 인해 남북 관계가 악화할 경우 안보 관광이 중단되고 원점 타격 등으로 오발 시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니 탈북단체 등의 대북전단 살포 시 적극적인 행정 조치를 건의한다"고 강조했다.

해마루촌 주민 F씨는 "남측에서 대북전단지를 날리게 되면 여기 주민들은 굉장히 불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북한 쪽의 포병 사단들이 전부 즉각 사격 준비 태세를 하고 있는데, (대북전단)풍선을 날리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먼저 피해를 볼 수 있는 게 접경지역 주민"이라며 강력한 조치를 촉구했다.

▲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3일 파주 캠프그리브스에서 열린 대남 확성기 소음피해 주민 긴급현장 간담회에서 민북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경기도


▲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3일 파주 캠프그리브스에서 열린 대남 확성기 소음피해 주민 긴급현장 간담회에서 민북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경기도


"정부가 오히려 대북 관계 긴장 고조... 대북전단 살포 강력히 제재할 것"

한 주민은 김동연 지사에게 "우리 좀 안아주세요"라며 위로를 요청했고, 김 지사는 그 주민을 꼭 얼싸안았다.

김 지사는 이어 현장에 함께 온 오후석 행정2부지사에게 "파주시청에 비상상황실을 설치해 상주하면서, 특별사법경찰관들을 진두지휘하면서 오늘처럼 현장에서 바로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대성초등학교에 대한 방음 새시 등의 지원 방안은 경기교육청과 대화해서 찾도록 하라"고 말했다.

김동구 대성동 이장은 방음 새시를 설치하면 생활소음 이하인 30dB 정도(현재는 80dB 안팎)로 대폭 낮출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동연 지사는 또 "튼튼한 안보를 중심으로 하되, 북한과 대화와 타협을 하면서 전단 날리는 것은 막아야 하는데 정부가 오히려 대북 관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며 "저희 경기도는 이를 계속 비판해 왔지만, 앞으로도 중앙정부에 제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특히 대북전단지를 북한으로 보내지 못하게 해달라는 주민들의 건의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하게 제재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이도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장은 "김동연 지사가 파주.연천.김포를 위험지역으로 설정한 만큼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해칠 수 있는 불법 행위에 대해선 강력하게 제지할 것"이라며 "대북전단 풍선이 올라갈 수 있는 세 곳의 거점지역 76개소를 경찰과 특사경이 주야로 거의 24시간 순찰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추가로 112로 제보를 주시면 저희가 바로 출동해서 제지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동연 지사의 현장 지시에 주민들은 "무거운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다"(A씨), "너무 감사하고 응어리가 풀어지는 것 같다"(B씨), "말만으로도 위안이 된다"(C씨) 등의 반응을 보였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