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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간첩단 사건, 간첩단은커녕 조폭 취급도 받지 못했다

검찰 '간첩죄·범죄단체구성죄' 적용해 징역 20년 구형... 법원 "통솔체계 없는 사적관계 불과"

등록|2024.10.24 09:23 수정|2024.10.24 10:01

▲ 충북동지회 소속 A씨가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충북인뉴스DB) ⓒ 충북인뉴스


간첩단은커녕 조폭 취급도 받지 못했다.

북으로부터 "국내 대기업노조를 장악하라. 국내 진보정당에 들어가 당내당을 강화하라. 정당과 노조인사 60여 명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고 활동했다는 일명 청주간첩단 사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결국 '청주간첩단' 사건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간첩죄'와 형법상 범죄단체구성죄를 적용해 징역 20년을 구형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가 판단하기에 이들 충북동지회는 간첩단은커녕 '범죄단체구성죄'가 적용되는 조폭 기준에도 못미친 것이다.

지난 21일 대전고법 청주 제1형사부는 21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충북동지회 위원장 손모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2명도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지만 모두 징역 5년으로 감형됐다.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범죄단체조직죄 등 혐의를 적용해 중형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에서 해당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1심에서 무죄라고 본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 혐의는 유죄 판단을 내렸다. 국가보안법 제4조 목적수행죄도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간첩죄와 범죄단체구성죄 모두 무죄로 판단했지만 애시당초 간첩죄 적용은 무리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들 충북동지회 활동은 보면 간첩단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설픈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심지어 북으로부터 받았다는 공작금을 한 조직원이 횡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발생했다.

경찰과 검찰에 따르면 충북동지회는 북으로부터 "국내 대기업 노조를 장악하라. 국내 모 진보정당에 들어가 당내당을 강화하라. 정당과 노조인사 60여 명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충북동지회 구성원들은 대기업 노조를 장악하기는커녕 민주노총엔 가입을 거부당했다.

이들은 법적 소송을 통해 노조가입엔 성공했지만 조합비를 내지 않아 결국 제명 처리됐다.ㅎ충북동지회 활동 주무대였던 충북 청주와 대전광역시 지역 민주노총 인사들은 이들 충북동지회에 소속된 사람들의 이름만 나와도 손사래를 쳤다.

60명 포섭하랬더니 "아들 포섭했다"고 북에 보고

"당내 인사를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은 진보정당에선 징계를 받거나 스스로 탈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전위 조직인 '자주통일충북동지회'란 조직까지 결성해 F-35스텔스기 도입저지 운동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지만 실상은 매우 초라했다. 이들이 진행한 활동은 1인시위와 기자회견, 자신들이 운영하는 신문사와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에 그쳤다.

다른 단체에 활동에 동참하는 제안서를 보내기도 했지만 이 과정에서 모 진보정당은 당의 승인없이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이들을 징계위에 회부했다. 1인 시위나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도 구속영장이 청구된 4인과 가족 1명, 평소 이들과 함께 활동했던 1인 등 6인 정도에 불과했다.

충북동지회 소속으로 구속자 중 한 명은 심지어 북한에서 받은 공작금 2만 달러 중 1만 달러를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이한 행적도 있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의 아내나 아들을 포섭하고 있다고 북에 보고문을 올렸다. 충북동지회 4인 중 3명은 충북동지회를 사실상 이끌었던 A씨의 아내 B씨를 '안기부의 프락치'로 몰았다. B씨도 충북동지회의 구성원으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법원이 보기에도 한심했다. 언론에선 이들 충북동지회를 '청주간첩단'이라 호명하며 대서특필했다.

간첩단이 되려면 일명 '간첩죄'가 입증돼야 하는데 이 이름의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국가보안법 4조 목적수행죄를 간첩죄라고 부른다. 국가보안법 4조의 목적수행 혐의는 반국가 단체의 지령을 받은 사람이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활동을 수행할 때 적용된다.

반국가활동에는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해 북에 전달하거나 중개하는 행위가 포함된다. 처벌도 매우 무겁다. 군사상 기밀인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 외의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있다.

검찰은 기소된 충북동지회 구성원들이 중국과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인 문화교류국 소속 리광진등 3인을 만나 지하당을 만들라는 지령을 받고, 각종 국가기밀을 탐지해 북한에 보고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국가기밀이란 국가안전에 '중대한' 불이익을 미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며 "피고인들이 탐지한 정보는 그 가치가 낮아 국가안전에 별다른 불이익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국가보안법상 국가기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특히 "사소한 것도 국가기밀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 입장을 따르더라도 (이들이 수집한 정보가) 국가안전에 별다른 불이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충북동지회가 지하당 포섭대상으로 지목한 인사의 정보가 국가가 관리할 만큼 관리할 정보가 아니다"며 "북한이 알아도 이익을 얻을 게 없다"고 판단했다.

또 "민중당 내부 정보를 탐지(해 북에 보고한 것)했다는 것도 실상은 "피고인들이 민중당 활동하다 징계를 받자. 징계 정보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고 다른 내용도 선거를 위해 인터넷에 게시된 자료 다운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도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범죄단체구성죄 1심은 유죄, 항소심은 무죄

형법상 '범죄단체조직죄'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거나 병역 또는 납세의 의무를 거부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하는 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조직폭력배에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 '조폭 잡는 죄'로 불린다.

그동안 검찰은 북한 간첩단이나 북한 지령에 의해 결성된 지하조직에 대해서는 대부분 국가보안법 제3조의 반국가단체 구성, 가입죄를 적용해 왔다.

하지만 반국가단체 구성과 가입과 관련해 법원은 판결은 엄격하게 적용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2011년 왕재산 간첩단 때 검찰은 반국가단체 구성가입죄를 적용했으나 법원이 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검찰은 충북동지회 사건에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가 아닌 형법상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국가보안법위반(회합·통신)죄, 국가보안법(자진지원·금품수수)죄를 목적으로 하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를 조직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범죄단체조직죄를 인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밝혔다.

범죄단체 구성요건과 관련해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북한을 본사라고 부르며 규율 위반자에 대하여 북한에 징계를 요청하는 등의 지휘 또는 명령과 복종체계 및 통솔체계가 갖추어져 있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충북동지회를 내부 질서를 유지할 통솔 체계도 없고, 구성원도 사적 관계에 있던 4명에 불과해 실질적 범죄단체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북한 공작원 지령을 받으려고 국외로 떠났다가 지령을 받고 국내로 입국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죄는 유죄라고 판시했다.

한편 검찰은 2017년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의 지령에 따라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를 결성하고, 4년간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2만 달러를 수수하고 국가기밀과 국내 정세를 수집·보고한 혐의(묵적수행 간첩·금품수수·잠입탈출·회합·통신 편의제공 등)로 2021년 9월 이들을 기소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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