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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되려는 아들, 유산 받으러 가서 알게 된 진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공작새>

등록|2024.10.24 14:59 수정|2024.10.24 15:17

▲ 영화 <공작새> 스틸 ⓒ ㈜영화사그램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란한 전자음악, 화려한 복색의 댄서들로 가득한 클럽에서 댄스대회가 한창 진행 중이다. 댄서 '신명'은 국제적인 왁킹 댄스대회에 참가해 최종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긴장과 흥분, 초조와 기대가 교차하는 대기실 풍경이 이어진다. 그는 반드시 우승하고자 결의를 다진다. 신명에겐 대회 우승 상금이 절실하다. 그는 트랜스젠더 수술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당장 수술비를 마련하기 힘들고, 수술이 연기되면 군입대 문제 등 여러 골치 아픈 현안이 그 앞에 활짝 열릴 예정이다.

마침내 맞이한 결선에서 신명은 전력으로 결승 상대와 춤 대결을 벌인다. 심사위원들도 누구 손을 들어줄지 곤혹스럽다. 심사위원장은 재대결을 제안한다. 마침내 누군가의 손이 번쩍 들릴 시간이다. 위원장의 결정은 신명이 아니다. 따져 묻는 그에게 날아온 건 '넌 너만의 컬러가 없어'라는 답이다. 수상에 실패하고 주눅이 든 신명은 동료 크루와 함께 술과 춤으로 속을 달랜다.

격동 같은 순간이 지나고 신명은 대회에 집중하느라 확인하지 못한 휴대전화를 본다. 오래전부터 연을 끊고 산 지 오래인 아버지 '덕길'의 부고 연락이 와 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아 갈등이 심했던 아버지의 장례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버지의 애제자로 신명과도 절친했던 '우기'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린다. 추모 굿에 참여해 주면 덕길의 숨겨진 유산을 신명에게 주겠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자신을 박해한 고향의 친지와 이웃들을 마주하는 건 전혀 내키지 않지만, 신명에겐 그 유산이 절실하다.

결단한 그는 마침내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고향 호창으로 내려간다. 아버지는 그 지역에 전승되어 온 농악 계승자로 동네에는 그의 뜻을 잇는 이들이 잔뜩 있다. 자신을 반겨 맞이하는 우기 외엔 누구나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냉대를 감수한 채 급전 마련을 위해 며칠만 참고 견디려는 신명이지만, 그가 알지 못했던 여러 속사정과 함께 당황스러운 사건이 속출한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비밀과 마주하는 건 물론, 지난 대회에서 한계로 지적된 '자신만의 색'을 찾기 위한 과제도 덩달아 그를 괴롭힌다. 과연 신명은 원한 바를 얻을 수 있을까? 그가 몰랐던 가족사의 내력과 고향 사람들과의 불화는 해소될 수 있을까?

변성빈 감독의 첫 장편

▲ 영화 <공작새> 스틸 ⓒ ㈜영화사그램


변성빈 감독은 10대 시절부터 한국 사회 내 감춰진 이면, 드러나지 않는 소수자 문제에 천착해 왔다. 그의 초창기 단편 영화들은 10대의 성장통을 (잔혹) 우화나 어두운 판타지로 담아내 현실을 그저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 흥미로운 접근법을 선보여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 170mm >(2008)와 < 미행토끼>(2009), <뿔>(2014)까지 연속된 작업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학원폭력에 초현실적 장치를 가미한 <뿔>에서 그는 현재까지 공동작업에 빠지지 않고 참여 중인 배우 김우겸과 처음 만난다.

이후 감독은 <우주의 닭>(2015)과 <손과 날개>(2019)에서 우리 사회 내 소외된 장애인 문제에 주목한다. 다운증후군 소녀의 담임교사를 향한 연정과 이를 지켜보는 또 다른 소수자 동급생의 이야기, 장애 소재 중에도 언급이 터부시되는 지체장애인의 성욕 해소 문제를 제기하는 도발적 담론을 풀어내며 소재주의에만 기울지 않는 저력을 선보인다.

감독은 2020년 <신의 딸은 춤을 춘다>에서 <공작새>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형성하게 될 주역 해준과 만난다. 스트릿 댄서로 이미 명성이 높았던 해준의 영화배우 데뷔로 기억될 <신의 딸은 춤을 춘다>는 <공작새>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전 단계에 해당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병무청에서 본인이 군 기피를 위한 '나이롱' 성소수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댄서 '신미'의 사연과 이를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인 춤을 통해 돌파하는 과정이 장렬하게 그려지는 이 단편으로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와 찬사를 받기에 이른다.

이후 코로나 시기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프로젝트로 제작된 소품 <신의 딸은 언제나 연기가 어렵다>에 이어 본격 장편으로 <공작새>가 탄생하지만, <신의 딸은 춤을 춘다>의 문제의식이 확장되고 본격화된 데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전작 단편을 돌아봄은 <공작새>의 주제와 의도를 이해하는 데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장편 데뷔라는 통과 단계를 거친 변성빈 감독의 작품 연대기, 그리고 해준 댄서를 배우로 기용하면서 본격 만개한 경향성, 현재 독립영화를 넘어 주목받는 김우겸 배우와의 결합 과정까지 돌아본다면, <공작새>를 소화하는 데 좀 더 풍성한 감각을 공유할 수 있을 테다.

주인공의 춤사위

▲ 영화 <공작새> 스틸 ⓒ ㈜영화사그램


앞서 영화의 기본 줄거리 전반부를 요약해서 소개했지만, <공작새>는 감독이 텍스트 서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영화의 본질, '활동사진'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물이기에 시각적 체험이 없이 소화하기란 불가능한 작업에 속한다. 감독의 작품세계에 국내 왁킹&보깅 댄스계 상징적 존재인 해준 배우가 결속되면서 비약적인 비주얼 황홀경으로 확장되는 도상인 셈이다.

영화는 도입부의 왁킹 댄스 대회 경연과 이를 기다리는 대기실의 주인공이 직면하는 심리 묘사를 감각적인 판타지로 구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빨려들 듯 몰입감을 선사하는 영화 속 몇 차례의 댄스 장면이 대개 극영화 서사에서 사건의 진행과 해설로 풀리는 과정을 대체한다. 주인공에게 닥칠 위기는 춤과 음악의 향연 속에서 예견되고, 그 카타르시스의 과정 역시 해준이 펼치는 춤의 성격과 형질이 변화하는 찰나와 함께 연결된다. 그 무빙 이미지에 올라타 어깨춤을 추거나 슬픔에 공명하지 못하면 <공작새>가 풀어내는 격동에 도달할 수 없을 테다.

해준이 구사하는 춤은 'Bowl'이라는 실내 클럽에 특화된 왁킹과 보깅 장르다. 실제 국내에서 권위 있는 해당 분야 댄서이기에 구현할 수 있는 영역인 셈이다. 이 댄스 장르들은 미국의 동부와 서부에서 각각 발전된 장르인 동시에, LGBTQ 커뮤니티의 역사 및 문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전통을 지닌다. 즉 영화 속에서 마치 인도의 마살라 장르처럼 툭 하면 튀어나오는 주인공의 춤사위는 그저 현란한 안무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그가 처한 상황을 묘사하는 결정적 순간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검색 품 좀 들여 해당 춤의 기원과 스타일을 이해하고 본다면 새로운 차원의 감상에 도달할 수 있다.

감독은 <신의 딸은 춤을 춘다>에서 도전한 이런 유형의 영상 문법에다 장편 데뷔작을 통해 대립하는 두 집단과 장르의 파열을 통한 새로운 경지로의 진입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해준 vs. 덕길, 가족의 극한 대립은 자유로운 소수자의 춤 vs. 전통문화 농악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문화인의 대결로 초반에 표현되지만, 농악이 원래 갖는 대동과 해방, 어우러짐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해준이 이해하고 도입하게 되는 후반부를 통해 합일의 가능성으로 이끈다.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던 마이너리티 댄스와 박제화된 전통 농악의 정체성이 실은 닮아있다는 깨달음과 이를 창조적으로 수용하려는 주인공의 변화는 곧 감독이 영화를 통해 구현하려는 소통과 이해라는 주제와 직결된다. 여기에 후반부 갈등의 주요 축으로 들어서는 주인공의 가까운 지인이 가진 사연은, 대개 LGBTQ(여성 동성애자(Lesbian), 남성 동성애자(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성정체성이 불명확한 사람(Queer)의 약자로 성소수자를 통칭한다 - 기자 말) 소재를 다루는 작업이 성소수자 내에서도 동일 정체성을 지닌 이들 중 택일해 다루는 것과는 달리, 이질적인 주체들을 병치하는 도전을 감행한다. 그만큼 감독이 해당 소재에 대해 자신감을 가졌다는 증명이다.

영화의 도전과 한계

▲ 영화 <공작새> 스틸 ⓒ ㈜영화사그램


물론 이 모든 게 온전히 구현되었는지는 관객이 판단하고 평가할 몫이다. <공작새>가 선보인 도전은 무척 급진적이기도 하지만, 물과 기름처럼 쉽게 섞이기 힘든 요소들을 과감하게 한 그릇에 담는 과정에서 무척 생경한 맛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무빙에 많은 서사를 맡긴 과감한 선택은 일정하게는 난해함으로, 혹은 의도와 다른 부정합으로 읽힐 여지도 상당하다. 인물 사이에 평생 해소되지 않을 것만 같던 갈등이 다소 싱겁게 화해에 달하는 측면도 호불호를 만들 거리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가 품은 야망과 도전은 천편일률적으로 기성품 찍어내는 느낌도 살짝 감도는 근래 한국 독립영화판에서 흥미로운 지점임에는 분명하다. 그저 온정적으로, 혹은 당위적으로 취급되는 소수자 표현에서도 일정한 변주를 형성한 작업임은 물론, 진화하며 점점 영화 동료를 획득해 가는 감독의 연대기를 관찰하는 재미도 만만하지 않은 작업이다. 물론 해준 이라는 걸출한 존재를 통해 구현되는 '신의 딸'의 춤이 <공작새>의 상징으로 각인될 테다.

인물들 간의 다소 도식적 갈등과 대립, 또 다른 핵심 캐릭터라 할 '우기'의 속내 설정 등 영화의 다소 헐거운 이야기 서사는 지적될 수 있겠지만, 처음엔 두꺼운 화장을 갑옷처럼 걸치던 주인공이 점점 화장을 옅게 줄여가며 정면으로 그가 처한 억압을 돌파하는 과정이 검무처럼 매혹적인 몇 장면들은 잊기 힘든 순간으로 관객에게 각인될 것이다. '풍물'로도 불리는 농악이 어떻게 '해방춤'으로 해석되었는지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의 엔딩은 아득한 감회로 이끌기에 충분한 극적 찰나가 될 테다.

<작품정보>

공작새 Peafowl
2022 한국 컬러풀 센세이션 드라마
2024.10.23. 개봉 114분 15세 관람가
감독 변성빈
출연 해준(신명 역), 김우겸(우기 역), 고재현(보석 역), 김진수(억도 역), 황정민(문숙 역)
특별출연 기주봉(덕길 역)
제작 싸리나무 필름, 세미콜론 스튜디오
배급 ㈜영화사그램

27회 부산국제영화제 왓챠상
12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
6회 서울무용영화제 최우수작품상
1회 남도영화제 감독상/배우상
15회 필라델피아아시안아메리칸영화제 대상
11회 바르셀로나아시안영화제 최우수작품상
18회 파리한국영화제 관객상
24회 메지파트라퀴어영화제 대상
41회 아웃페스트로스앤젤레스LGBTQ+영화제 배우상

▲ 영화 <공작새> 포스터 ⓒ ㈜영화사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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