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 박정희"의 부활... 영남대에 세워진 금색 동상
[김종성의 히,스토리] 박정희가 빼앗고, 박근혜가 이사장 맡은 영남대... 박씨 일가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 영남대 천마아너스파크에 세우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 조정훈
경북 경산시에 위치한 영남대학교가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개교 77주년 이벤트를 열었다. 영남대 홈페이지의 'YU 뉴스룸' 코너는 23일 자 글에서 "개교 77주년을 맞아 23일 영남대 천마아너스파크에서 설립자인 박정희 선생의 동상 제막식을 거행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번 행사는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과 교육철학, 업적을 기리고 개교 77주년을 맞아 그의 뜻을 후대에 더욱 빛내기 위해 마련됐다"고 덧붙인다.
"박정희 선생"이 대학 설립자라지만, 설립 과정에서 그의 개인 자금은 전혀 투입되지 않았다. 이에 관해서는 이 학교를 운영하는 영남학원의 제5대 이사장이 공식 확인을 했다.
정관에 박정희가 '교주'로 되어 있었던 대학
국회 사무처의 <1988년도 국정감사 문교공보위원회 회의록 제2반>에 따르면, 질의 직전에 김동영은 영남대 탄생의 비화를 요약했다. 그는 영남대가 설립되기 전에 대구대와 청구대가 있었고 그중 대구대를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뒤 "5·16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주위의 사람들이 대구대와 청구대를 합해 영남대학을 만들어 은퇴 이후 이것을 맡아 해야 될 것이 아니냐 해서 사실상 강제로 이 사람들한테 포기각서를 쓰게 만든 대학"이라고 정리했다.
3선 개헌(1969)과 유신체제 선포(1972) 이전인 1967년만 해도 박정희의 종신집권 의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 사람들이 은퇴를 대비해 대학 재단을 확보해 두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영남대가 대구대·청구대 강탈의 결과물임을 지적한 김동영은 "고 박 대통령이 재단에 출연한 자금은 얼마입니까?"라고 질의했다. 조일문 이사장은 "문서상 나타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김동영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현재 재단이사로 박근혜씨가 되어 있는데, 박근혜씨가 재단 출연한 액수는 얼마입니까?"라고 물었다. 조일문은 "그것도 나타나 있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 제6조 제1항은 "이 법인의 자산은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으로 구분"한다고 규정한다. 영남학원의 법인격을 지탱해 주는 핵심 요소인 기본재산과 보통재산 어디에도 박정희나 박근혜가 출연한 것이 없었다는 답변이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것이다.
박정희와 박근혜가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대답이 나오자, 김동영은 "그러면 총장께 묻겠습니다"라며 권혁기 총장서리에게 질의를 던졌다. 김동영은 "문서상에 영남대학에 고 박정희 씨가 출연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고 박정희 씨의 후예들이 맡아야 된다고 보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런 뒤 "정통성이 있다고 봅니까?"라고 덧붙였다.
영남대가 설립된 해인 1967년 1월 16일 개정된 사립학교법 제5조 제1항은 "학교법인은 그 설치·경영하는 사립학교에 필요한 시설·설비와 당해 학교의 경영에 필요한 재산을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현행 사립학교법 제5조 제1항은 "그"를 "그가"로, "당해"를 "그"로 바꾸었을 뿐, 나머지 부분은 그때와 똑같다.
사립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은 시설·설비와 재산을 갖춰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학교법인은 재단법인의 일종이다. 시설·설비·재산이 학교법인의 생명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출연하지 않으면 사립학교 설립자의 정통성을 갖기 어렵다. 박정희와 박근혜는 학교 설립을 위해 그런 것을 출연한 사실이 없었다. 그래서 김동영이 정통성을 운운했던 것이다.
"정통성이 있다고 봅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마이크가 자기에게 돌아오자 권혁기 총장서리는 "정관을 보면 박 대통령께서 교주로 되어 있고, 그 정관이 고쳐지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그대로 인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현행 정관 제1조는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설립자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며 박정희를 설립자로 지칭하지만, 박정희가 죽은 지 2년 뒤에 개정된 정관은 그를 교주(校主)로 지칭했다.
2019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구대 설립자 최준의 장손인 최염은 그해 10월 3일 대구향교 유림회관 강연회에서 "1981년 박근혜는 이사로 있으면서 영남대 정관 제1조를 개정합니다"라며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 정신에 입각하여"라는 문구가 이때 들어갔다고 소개했다.
박정희는 법적 근거 없이 영남대를 지배하다가 10·26사태로 갑자기 사망했다. 그래서 박근혜가 영남대에 지배력을 행사할 근거가 마땅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교주 박정희"라는 문구가 정관에 들어가 박근혜의 입장을 세워줬던 것이다.
박정희·박근혜 그늘에서 벗어나야
▲ 2016년 10월 31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영남대학교 학생들이 박근혜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한 모습. ⓒ 조정훈
박씨 일가의 법적 권리가 없었다는 점은 10·26 사태 6개월 뒤인 1980년 4월 24일 이사장에 취임한 박근혜가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사로 내려간 이유를 설명해 준다. 2007년에 발간된 박근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이렇게 설명한다.
"새마음봉사단이 강제 해산되면서 자연히 어떤 사회활동도 할 수 없었던 1980년, 나는 영남대 이사장직을 잠시 맡았다. 그러나 학교 내 운동권에서 많은 반대가 있었다. 결국 세상은 내가 그 자리를 맡도록 내버려두지 않았고, 나는 아무 사심이 없었기에 그 자리를 내 자리라 여기지 않았다."
박정희가 사라진 뒤인 1980년대의 영남대는 학생들의 함성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위 국정감사 때 통일민주당의 박관용 의원이 '권혁기 총장'이 아니라 '권혁기 총장서리'인 현실을 지적하고 김동영 의원이 조일문 취임 이후로 이사회가 제대로 열리지 못한 점을 지적하자 조일문은 이렇게 답했다.
"지난 총장께서도 임기를 다 채우지를 못하고 학생들의 함성 속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소요가 계속해서 있었기 때문에 우선 총장을 서리로 모시자 그렇게 이사회에서 결의해가지고 그 결의가 있은 연후에 한번 이사회가 있었습니다."
10·26사태 이후로 영남대가 오랫동안 홍역을 겪은 것은 이 대학의 실질적 지배자가 다른 인물이 아닌 박정희였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았던 그가 이 대학도 불법적으로 강탈했기 때문에 정통성 시비가 일 수밖에 없었다. 이 학교 학생들의 함성은 박정희의 정통성 부족에 기인한 것이었다.
박정희는 두 대학을 강탈해 영남대를 만들었다. 그는 영남대의 법적 설립자가 아닐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설립자도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영남대는 개교 77주년 이벤트로 박정희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 영남대와 영남학원이 태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박정희·박근혜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는 길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것은 미래를 스스로 어둡게 만드는 일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