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당은 보수, 마음은 진보 ... 고진화 전 의원 별세
향년 61세, 1985년 삼민투 사건으로 2년 7개월 옥살이...한나라당 의원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이 향년 61세로 22일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2007년 7월 20일 오후 국회에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연합뉴스
한나라당에서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고진화 씨가 향년 61세로 22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성균관대 사회학과 재학 중인 1985년 8월 28일자 신문 사회면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삼민투 사건으로 2년 7개월 옥살이를 한 그는 1990년대 중반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3번째로 도전한 2004년, 서울 영등포갑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명박 대운하 공약도 반대
당선때마다 당적을 바꿨던 3선의 김명섭 열린우리당 후보를 1.6%p 차이로 누르고 거둔 승리였다. '노무현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총선은 열린우리당의 수도권 초강세가 두드러진 선거였지만, 영등포을 지역구의 김민석 의원(새천년민주당)이 영등포갑으로 옮겨오며 민주당 지지표가 갈라지는 '어부지리'를 입은 측면이 있다.
국회의원이 됐지만 정치적으로는 외톨이 신세였다. 그와 코드가 맞았던 김부겸 이부영 등 이른바 한나라당 개혁파 '독수리 5형제'는 열린우리당으로 떠난 뒤였다.
그러나 당적은 한나라당 소속이었지만, 마음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언저리에 있던 고진화였다. 그래서 등원하자마자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했고, 2007년에는 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해 당선이 유력했던 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비판했다.
2006년 12월 27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인터넷에 글 올리고 댓글 다는 것을 보고 '품위 없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유비쿼터스 정부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례적으로 인기 없는 대통령을 두둔했다.
이 때문에 보수성향이 강한, 같은 당 김용갑 의원으로부터 "원희룡, 고진화 두 사람은 우리 당을 떠나야 한다"는 질책을 끊임없이 들었다.
임기 말에는 같은 당 전여옥 의원에 밀려 영등포갑 공천에서 탈락하더니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유세 차량에 올라 "대운하를 강요하는 이재오를 심판해달라"고 지지 유세를 했다가 당으로부터 제명당했다.
고진화는 2012년 영등포갑 공천을 신청하며 새누리당의 문을 두드렸지만, 공천을 받지는 못했다. 정치권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유족은 형제로 고진학·진호씨, 남매로 진숙·진영·진란·진선씨 등이 있다. 빈소는 보람인천 장례식장 VIP실. 발인 25일 오전 6시 30분, 장지 화성함백산추모공원 (전화 032-568-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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