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했던 '열탕' 제주, 그걸 제일 먼저 발견한 만화가
[제주바다에서 기후위기에 맞서는 사람들(5)] 고수온 포착한 정우열 웹툰 작가
올 여름 제주 바다의 고수온 현상이 이어지는 중에 서귀포 앞 바다의 산호가 녹아내리는 듯한 모습을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사무국으로 제보해 주신 웹툰 작가 '올드독'을 만나 인터뷰 했습니다.[기자말]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이하 파란)'은 산호탐사대와 함께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현장을 조사했다. 그리고 해양생태계 변화의 원인으로 이상 고수온과 더불어 보다 상세한 원인에 대한 조사의 필요를 모아 해수부 등에 '제주 바다 고수온 대응 해양생태민관특별조사단' 구성을 제안했다.
▲ '올드독' 정우열 님의 웹툰 ⓒ 정우열
필명 '올드독'으로 유명한 만화가이자 <노견일기>의 작가 정우열님을 지난 16일 제주 서귀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수영 뒤 자연스레 쓰레기 줍던 서양인의 모습... 닮고 싶었다"
-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올드독'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해 보니 엄청난 팔로워를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개 뒤집기와 화초 죽이기에 능한 만화가'로 소개한 것도 매우 재미있고 웹툰 작가이면서 동시에 프리다이빙 강사라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궁금한 게 많은데요. 우선 정우열 님의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우열 님에게 인상 깊은 바다는 어떤 모습인가요?
"얼핏 떠오르는 게 좋은 이미지였으면 좋겠는데 생각나는 건 그런 모습이 아니네요. 저렇게 투명하고 맑은 바다에 해류 따라서 쓰레기들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가 있어요. 3~4년 전에 월평 포구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플라스틱, 비닐, 지푸라기, 병뚜껑들이 가득 있고 그 안에서 물살이들이 헤엄치고 있더라고요. 근데 먹이를 먹는 건지, 비닐을 먹는 건지 그 장면이 너무도 충격적이었어요.
그중 한 물고기는 핼러윈 데이 때 쓰는 장난감 이빨, 뾰족뾰족한 뱀파이어 같은 이빨에 끼어 있는 거예요. 그런 채로 다니고 있더라고요. 작은 물고기이고 너무 빨라서 제가 잡아서 빼 줄 수는 없었지만 너무도 충격적이고 처참했습니다. 제주에 온 지 12년 되었는데 바다를 생각하면 그 장면이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그날따라 물이 엄청 투명하고 예뻐서 아마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 심각한 해양쓰레기 문제(자료사진) ⓒ angelacompagnone on Unsplash
- 아름다운 바다랑 너무 비교가 되는 장면이네요. 바다에 관련한 활동은 언제부터 하게 된 건가요? 그리고 우열 님은 프리다이빙 강사이기도 하던데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요?
"2010년쯤 제주도에 놀러 왔다가 함덕 해변에 갔는데 그때는 해변에 쓰레기가 그다지 많지 않았어요. 그때 다른 사람들은 쓰레기를 그냥 보고도 지나치는데, 한 서양 남자가 헤엄치고 나오다가 쓰레기를 보더니 너무 당연한 듯 주워서 가더라고요. 되게 신선해 보였어요. 나도 저렇게 해야 되겠다 생각했고 그때부터 하나씩 둘씩 보이는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죠.
프리다이빙 강사가 된 지는 6년 되었고요. 프리다이빙을 배운 것부터 하면 10년 되었어요. 수영을 좋아해서 수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수영장에서 프리다이빙 하는 분들을 마주쳤어요. 그분들 따라가 프리다이빙을 배웠고, 하다 보니까 또 강사가 됐습니다."
▲ 프리다이빙 하는 정우열 님 ⓒ 정우열
- 우열 님의 웹툰 작가로서의 본업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는 제 스스로가 만화가라고 생각하는데요. 요즘에는 매체가 온라인으로 바뀌다 보니까 만화가 대신 웹툰 작가라고 부르는 게 더 익숙한 것 같아요. 그림으로 이야기를 엮어 어딘가에 발표를 하고 있어요. 저희 개랑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려서 연재했었죠. '노견일기'라고, 처음에 그리기 시작한 게 2018년었어요. 그때도 저희 개가 16살이라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서 이별하는 과정을 그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요. 그 후로도 너무 쌩쌩하게 사는 거예요.
이러다가 영원히 살 건가 싶었는데 그럴 리는 없고. 작년 초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까지의 이야기를 쭉 그렸는데 워낙 반려동물 키우는 분들이 많다 보니 (웹툰을)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어쩌다 보니까 그게 대표작인 것처럼 됐네요. 지금은 다른 연재를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 시작하지 못하고 있고요."
- 우열 님의 웹툰에서 "개들은 인간이 왜 자기가 기껏 장소 골라서 싸놓은 똥을 열심히 줍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을까요?"라는 글을 봤는데 아주 신선했어요. 사람이 아니라 개들의 관점으로 보는 방식, 제게는 아주 참신한 관점이었거든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개랑 20년 넘게 살다 보니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좀 더 익숙한 경향이 있을 겁니다. 제가 워낙 개를 좋아하는 데다 생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집중하게 되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대상을 잘 관찰해서 깊이 생각하는 게 저의 일이니까요."
▲ '상실의 슬픔, 펫로스를 말하다' 강연자로 선 정우열 님 ⓒ 대전시 유성구 정신건강복지센터
- 만화는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한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만화는 좀 천박한 문화라고 여기는 어른들의 시선이 있어서 만화를 못 그리게 하셨어요. 집에서 만화 그리면 뒤통수 얻어맞고 그랬거든요. 그래도 만화를 좋아해서 계속 야금야금 그렸어요.
군대 가기 전에 (대학 다닐 때) 학보사에서 시사만화를 그렸고 제대하고 나서는 그동안 그린 시사만화를 모아 언론사로 보냈는데 그중 몇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신문사에 주 1-2회 출근하며 아르바이트하곤 했지요. 그러다가 시사만화 말고 정치와 관련 없는 좀 말랑말랑한 걸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같은 걸 그리기 시작한 건 2004년쯤인 것 같아요."
축 쳐져 녹아내리는 듯한 산호, 이상하다 싶었다
▲ '올드독' 정우열 님의 웹툰 ⓒ 정우열
- 앞으로 어떤 주제의 만화를 그리고 싶은 지 생각하신 게 있나요?
"제가 제주도에 살면서 바다에 많이 들어가고 있고 좀 아는 분야니까 바다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요. 바다의 환경을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표현해 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웃음) 상업적으로 혹할 만한 주제가 아니기도 하고 제 역량이 부족한 탓이기도 해서 아직은 잘 진행이 안되고 있어요."
- 사람들은 바닷속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요. 대한 관심이 늘긴 했지만 아직은 미지의 세계이지요. 우열 님의 만화를 통해 바다에 대해 쉽고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지난 8월, 우열 님이 제주 바다가 이상하다고 파란 사무국에 제보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 과정에 대해 설명 부탁 드립니다.
"바다에 들어간 저의 동료 강사가 영상을 찍어서 저희 단톡방에 올렸는데, 그 영상을 보니 산호가 축 처져 있는 채로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이건 뭔가 이상하다 싶었고 전문가에게 여쭤보고 싶어 파란 사무국에 연락했어요. 그 이후로 (제주바다의 변화)에 대한 보고서가 나오고 한 거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 올여름 바다의 수온이 계속 높았기 때문에 파란 사무국에서도 눈여겨보고 있었을 텐데 그래도 직접적으로 산호가 녹아내리는 듯한 모습의 영상을 보내주셔서 파란에서도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고 조사를 하게 된 거예요. 정말 큰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이상 고온으로 인한 바다의 급속한 변화 외에도 바다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데요. 우열 님이 보시기에 어업에 종사하거나 다이버들의 바다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요?
"제가 채식을 한 지 14년 정도 되었는데요. 저랑 친하게 지내는 동료들 중에는 채식을 해보려고 하거나 플라스틱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꽤 있어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소수죠. 다이빙하러 포구에 나가보면 다이버들, 낚시꾼들이 다 거기에 모여 있거든요. 그런데 포구 바닥에 담배꽁초가 가득이에요.
배를 모는 선장님들 중에도 일회용 종이컵에 커피 마시고는 구겨서 그냥 바다에 버리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담배꽁초가 바다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리고 인식을 개선시키는 것도 좋은 출발점인 것 같아요."
"냉소하는 이들 있지만..." 그럼에도 채식과 환경보호 실천하는 이유
- 바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려면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개인적인 실천도 있을 테고 제도적 장치 마련도 있을 텐데요.
"제가 프리다이빙 수업을 카페에서 할 때가 있는데요. (음료를 주문하면) 물어보지도 않고 일회용 컵에 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는 매장에서 먹을 건데 왜 일회용 컵에 주느냐 이야기하거든요. 나중에 한 학생이 경험담을 얘기하는데, 항의하는 제 모습을 보고 그 당시엔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생각했대요. 이후에 해양환경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사람인데 그때의 제 모습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냥 좋아서 하는 활동인데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구나 생각했죠. 작품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그런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환경단체의 일원이 되거나 서포터로 피켓 들고 캠페인에 나서는 활동도 그렇고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이빙 강사들은 매일 바다에 들어가니까 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는 걸 다 알고 있어요. 일부 강사들은 직접 자기가 단체를 만들어서 바다 쓰레기 줍는 활동을 하기도 해요. 쓰레기 좀 줍는다고 뭐가 달라지냐 냉소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포기하면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되겠어요. 저는 아이가 없긴 하지만 조카도 있고 친구의 아이들도 있으니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 다이버들과 산호초(자료사진). ⓒ _bubble_maker on Unsplash
- 제주 바다에 대해 어떤 바람이 있나요?
"지금 10월 중순인데도 너무 덥잖아요. 지금은 바다에 들어가 수영도 하고 다이빙도 하는데 한 세대쯤 지나고 나면 다이빙은 바다에서 하는 게 아니라 딥 탱크나 잠수 풀 같은 곳에서만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요. '옛날에는 바다에서 다이빙을 했다' 이런 말을 하는 때가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그러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보는 수밖에요. 정책이 인식을 바꾸는 부분도 있기에 그 부분을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 제주 바다를 원래의 바다로 회복시키기 위한 개인의 실천도 필요하고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려면 정치가 바뀌어야 하겠죠.
"정치를 바꾸려면 개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해서 돌고 돌며 맞물려 있는 것 같아요."
-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이게 오늘의 결론인 것 같네요.(웃음)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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