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틀기 망설여질 때 이걸 먼저 사용하세요
뜨거운 물을 넣으면 핫팩이 되는 만능 물주머니
부쩍 차가워진 날씨에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린다. 추위를 많이 타지만 커피만은 유독 '얼죽아'를 외치던 나도 이제 슬슬 따뜻한 차에 손이 가는 시기다. 아직 보일러를 켜기에는 이른 것 같아 며칠 전부터 물주머니를 다시 꺼냈다. 물을 넣어 얼리면 아이스팩이 되고 뜨거운 물을 넣으면 핫팩이 되는 만능 물주머니다.
병실에서 위로가 되어준 물주머니
내가 처음 이 물주머니를 핫팩처럼 사용하게 된 건 병원에서였다. 주로 다인실에 머물렀던 나는 항암치료로 몸이 약해져서였는지 유독 한기를 많이 느꼈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나 같지는 않아서 창문을 열어 놓기 다반사였다. 참다못해 온도를 내려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카디건을 걸치고 이불을 두 겹으로 덮어도 한기가 가시지 않던 그때 남편이 물 주머니를 가져다주었다. 고작 한두 컵의 뜨거운 물을 채운 이 물주머니가 얼마나 따뜻할까 싶었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뜨거운 물을 받으러 배선실로 향했다. 물주머니 위에 까만 네임펜으로 삐뚤빼뚤 새겨진 내 이름 석자를 마주할 때마다 거기에 이름을 쓰고 병원으로 향했을 남편의 그림자가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
당시 병원에서 나는 잠들기 전 뜨거운 물이 담긴 물주머니를 두둑이 준비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몸이 춥기도 했지만 마치 애착인형처럼 내 마음에도 따끈한 위로가 되었다. 매일 물주머니를 안고 자다 보니 간호간병 통합 병동에서 환자들을 도와주시던 여사님들도 내 물주머니를 챙겨 주셨다. 나는 웬만해서는 뭐든 스스로 하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병원 여사님들은 밤이고 낮이고 할 일이 많아 고단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새벽 즈음엔 새벽 당번 여사님들이 물주머니를 갈아주러 들르시기도 했다. 문득 잠에서 깼는데 물은 식었고 몸은 으슬으슬하고 막상 몸을 일으키기 힘들어 고역인 내 모습이 선했다는 듯, 조용히 병실 커튼을 열고 물주머니를 가져가시던 여사님들이 계셨다.
뜨거운 물이 가득 들어찬 물주머니에 놀랄까 수건에 감싸주고 잘 자라고 속삭여 주던 여사님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순간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큰돈을 쥐어 주어도 어떤 사명감이나 소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병원에서 일하시던 여사님들도 그런 분들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서 길게 머물며 그분들과 사적인 대화도 많이 나눴는데 가족 중 암이나 큰 질병을 겪는 걸 보고 이 일에 뛰어들게 되셨다는 분도 계셨다.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목숨을 앞에 두고 고군분투하는 환자들을 겪으며 어느새 인간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몸에 배셨을 수도 있다. 문득 물주머니를 꺼내며 내가 이만큼 나아진 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노력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뜨거운 물주머니의 효능은 더 있다. 항암 치료 중에는 배가 아픈 날도 많았는데 따뜻한 물주머니를 배에 대면 복통도 조금씩 사그라드는 듯했다. "엄마 손은 약손~" 하며 아이의 배를 문지르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다. 목이 칼칼하다 싶은 날엔 목에, 눈이 침침하다 싶은 날엔 눈에 살짝 얹어주면 어느 정도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다.
동의보감에 매일 아침 양손을 비벼 열을 낸 후 눈을 감싸주면 눈이 밝아진다는 대목이 있는데 내가 따뜻한 물주머니로 눈이 편안해진 게 그저 느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염증과 눈물을 동반한 안구 숙주가 심했을 당시에도 안과 선생님은 안약 처방과 함께 온찜질을 추천해 주셨다. 그 당시 같은 병실에 입원해 복통을 자주 호소하던 환자들에게도 이 물주머니를 추천해주었다.
내 몸의 온도를 올리려는 노력
그렇게 내 병원 생활을 함께 하던 물주머니는 이렇게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면 다시 나와 함께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때 그 병원에서 쓰던 물주머니는 수명을 다해 새 물주머니가 왔다. 나와 함께 자는 둘째 딸아이와 나는 종종 물주머니 쟁탈전도 벌인다.
수시로 이불을 걷어내고 자는 둘째 딸은 유독 이 물주머니만은 탐낸다.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할 때 몇 번 얹어주었더니 정말 배가 다 낫는 것 같다고 신기해하며 물주머니를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는 물주머니에 '뜨거미'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요즘은 아이와 나 사이에 뜨거미를 놓고 사이좋게 잔다. 가끔은 아이와 뜨거미를 서로의 배나 볼에 갖다 대는 장난을 치며 깔깔거리기도 한다.
조금 더 강한 찬바람이 불면 전에 쓰던 전기장판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기장판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은 나뿐 아니라 성장하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몰라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찬바람이 강해질수록 나는 내 몸의 온도를 올리려는 노력을 더 꾸준히 하려 한다. 따끈한 물을 자주 마시고 틈나는 대로 걷고 뛰며 뜨거미와 함께 따끈한 잠자리를 만들면서. 혹시 나처럼 유난히 추위에 약한 사람이 있다면 올 겨울엔 보일러를 올리기 전 작지만 효과 만점 물주머니를 먼저 사용해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병실에서 위로가 되어준 물주머니
▲ 내가 사용중인 물주머니따뜻해요 ⓒ 정슬기
내가 처음 이 물주머니를 핫팩처럼 사용하게 된 건 병원에서였다. 주로 다인실에 머물렀던 나는 항암치료로 몸이 약해져서였는지 유독 한기를 많이 느꼈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나 같지는 않아서 창문을 열어 놓기 다반사였다. 참다못해 온도를 내려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카디건을 걸치고 이불을 두 겹으로 덮어도 한기가 가시지 않던 그때 남편이 물 주머니를 가져다주었다. 고작 한두 컵의 뜨거운 물을 채운 이 물주머니가 얼마나 따뜻할까 싶었지만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뜨거운 물을 받으러 배선실로 향했다. 물주머니 위에 까만 네임펜으로 삐뚤빼뚤 새겨진 내 이름 석자를 마주할 때마다 거기에 이름을 쓰고 병원으로 향했을 남편의 그림자가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
당시 병원에서 나는 잠들기 전 뜨거운 물이 담긴 물주머니를 두둑이 준비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몸이 춥기도 했지만 마치 애착인형처럼 내 마음에도 따끈한 위로가 되었다. 매일 물주머니를 안고 자다 보니 간호간병 통합 병동에서 환자들을 도와주시던 여사님들도 내 물주머니를 챙겨 주셨다. 나는 웬만해서는 뭐든 스스로 하려고 애쓰는 편이었다. 병원 여사님들은 밤이고 낮이고 할 일이 많아 고단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새벽 즈음엔 새벽 당번 여사님들이 물주머니를 갈아주러 들르시기도 했다. 문득 잠에서 깼는데 물은 식었고 몸은 으슬으슬하고 막상 몸을 일으키기 힘들어 고역인 내 모습이 선했다는 듯, 조용히 병실 커튼을 열고 물주머니를 가져가시던 여사님들이 계셨다.
뜨거운 물이 가득 들어찬 물주머니에 놀랄까 수건에 감싸주고 잘 자라고 속삭여 주던 여사님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순간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큰돈을 쥐어 주어도 어떤 사명감이나 소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병원에서 일하시던 여사님들도 그런 분들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서 길게 머물며 그분들과 사적인 대화도 많이 나눴는데 가족 중 암이나 큰 질병을 겪는 걸 보고 이 일에 뛰어들게 되셨다는 분도 계셨다.
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목숨을 앞에 두고 고군분투하는 환자들을 겪으며 어느새 인간에 대한 연민과 배려가 몸에 배셨을 수도 있다. 문득 물주머니를 꺼내며 내가 이만큼 나아진 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노력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뜨거운 물주머니의 효능은 더 있다. 항암 치료 중에는 배가 아픈 날도 많았는데 따뜻한 물주머니를 배에 대면 복통도 조금씩 사그라드는 듯했다. "엄마 손은 약손~" 하며 아이의 배를 문지르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겹쳐지기도 했다. 목이 칼칼하다 싶은 날엔 목에, 눈이 침침하다 싶은 날엔 눈에 살짝 얹어주면 어느 정도 이완되는 느낌이 들었다.
동의보감에 매일 아침 양손을 비벼 열을 낸 후 눈을 감싸주면 눈이 밝아진다는 대목이 있는데 내가 따뜻한 물주머니로 눈이 편안해진 게 그저 느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염증과 눈물을 동반한 안구 숙주가 심했을 당시에도 안과 선생님은 안약 처방과 함께 온찜질을 추천해 주셨다. 그 당시 같은 병실에 입원해 복통을 자주 호소하던 환자들에게도 이 물주머니를 추천해주었다.
내 몸의 온도를 올리려는 노력
▲ 뜨거운 물을 넣어서 그 열기로 잠자리나 발 등을 따뜻하게 하는 유단포도 유용하다. ⓒ 오마이뉴스
그렇게 내 병원 생활을 함께 하던 물주머니는 이렇게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면 다시 나와 함께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때 그 병원에서 쓰던 물주머니는 수명을 다해 새 물주머니가 왔다. 나와 함께 자는 둘째 딸아이와 나는 종종 물주머니 쟁탈전도 벌인다.
수시로 이불을 걷어내고 자는 둘째 딸은 유독 이 물주머니만은 탐낸다.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할 때 몇 번 얹어주었더니 정말 배가 다 낫는 것 같다고 신기해하며 물주머니를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는 물주머니에 '뜨거미'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다. 요즘은 아이와 나 사이에 뜨거미를 놓고 사이좋게 잔다. 가끔은 아이와 뜨거미를 서로의 배나 볼에 갖다 대는 장난을 치며 깔깔거리기도 한다.
조금 더 강한 찬바람이 불면 전에 쓰던 전기장판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기장판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은 나뿐 아니라 성장하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몰라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찬바람이 강해질수록 나는 내 몸의 온도를 올리려는 노력을 더 꾸준히 하려 한다. 따끈한 물을 자주 마시고 틈나는 대로 걷고 뛰며 뜨거미와 함께 따끈한 잠자리를 만들면서. 혹시 나처럼 유난히 추위에 약한 사람이 있다면 올 겨울엔 보일러를 올리기 전 작지만 효과 만점 물주머니를 먼저 사용해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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