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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화계 좌파" 발언 평론가, 영화 투자 입김 출자전략위원 위촉

한국벤처투자 "관련 논란 인지 못해"... 김교흥 의원 "블랙리스트 망령 되살아나나"

등록|2024.10.25 11:41 수정|2024.10.25 13:04

▲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벤처투자로부터 제출받은 출자전략위원회 참석자 명단. 영화평론가 직위로 출자전략위원회에 참여한 김병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5월 사의 표명으로 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 김교흥 의원실


과거 영화계를 좌파로 규정하는 등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냈던 김병재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 위원장이 올해 상반기 영화평론가 자격으로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산하 한국벤처투자 출자전략위원회(출자전략위) 위원으로 참여했던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야당에서는 김 위원장을 출자전략위 위원으로 위촉한 것은 모태펀드를 이용해 친정권 영화 작품 투자에 영향을 끼치려는 목적이 아니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영등위원장 과거 발언 "영화계 좌파가 실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소속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벤처투자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종합하면, 김 위원장은 '문화·콘텐츠 전문가' 자격으로 출자전략위 위원으로 선발돼 1차 회의 참석자 명단 10명 가운데 7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김 위원장의 소속 및 직위는 '영화평론가'로, 벤처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일한 문화예술계 인사였다.

김 위원장은 과거 영화계에 대한 보수적 정치 성향을 드러내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지난 2013년 3월 문화미래포럼 등 보수단체들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제가 MB(이명박) 정부 때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에서 사무국장을 잠깐 한 적이 있는데 문화계 좌파로 상징되는 민주노총 산하 영진위 노조와 법적 소송까지 가고 결국은 임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그만뒀다"라며 "유독 문화계에서 영화계만큼 좌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실세인 곳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화예술계가 굉장히 가난한데 상대적으로 좀 넉넉한 데가 영화계다. 이 영화계가 가장 좌쪽으로 많이 경도돼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문화일보> 문화부 차장 출신으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지난 5월 22일 제9기 영등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김 위원장의 임기는 오는 2027년 4월 25일까지다.

▲ 지난 2013년 3월 문화미래포럼 등 보수단체들이 주최한 '한국 사회와 문화 현실' 세미나에서 김병재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참깨방송 유튜브


김 위원장은 또 과거 부산영화제 영화발전기금 지원액 삭감을 옹호하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6월 <서울신문>에 기고한 '부산국제영화제가 먼저 실천한 것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영진위가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발전기금 지원액을 전년도(14억 5000만 원) 절반 정도인 8억 원으로 삭감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정치적 보복 의혹을 제기하고, 정당한 심사 절차와 내용까지 불신하는 것은 억지"라고 썼다.

이 기고문은 영화제 예산 삭감을 정당화하기 위한 영진위의 '대필 기고'라는 의혹을 샀다(관련 기사: 부산영화제 여론 조작 대필 기고 사실로 드러나). 당시 영화계에서는 예산 삭감이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영화제가 상영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이 다큐멘터리를 두고 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필두로 청와대·문체부·부산시가 '상영 차단' 외압을 실행했다고 2019년 발간한 백서에서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과 그를 출자전략위 위원으로 위촉한 경위를 묻는 의원실 질의에 한국벤처투자는 "모태펀드의 주요 출자 분야 중 하나인 문화·콘텐츠 분야 위원을 위촉하기 위해 업계 추천을 받았다"라며 "해당 위원을 둘러싼 논란은 위촉 당시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 5월 사임 의사를 표명해 해촉됐으며 제2차 출자전략위부터 불참했다"라고 답했다.

김교흥 의원 "모태펀드로 영화계 좌지우지 못하도록 철저한 감시"

▲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 특허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출자전략위는 '한국벤처투자 및 벤처투자모태조합 관리규정'에 근거해 운영된다. 모태조합 출자전략 수립과 관련해 전문적이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한국벤처투자가 설치한 위원회다.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위원은 중기부 장관이 위촉한다. 한국벤처투자는 지난 1월 4일과 5월 24일 각각 제1·2차 출자전략위를 개최했다.

한국벤처투자는 박근혜 정부 시절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를 배제하는 역할을 했다고 의심받은 신상한 부대표(당시 상근전문위원)가 현재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관련 기사: 박근혜 블랙리스트 의혹 낙마자, 수백억 주무르는 자리로 컴백).

이에 따라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과거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운데 김 위원장을 출자전략위 위원으로 위촉한 것을 두고 모태펀드를 이용해 정권 입맛에 맞는 작품 투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 아니었느냐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영화 제작 투자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가 모태펀드에 출자하면 한국벤처투자가 대기업 투자·배급사 등 민간 투자금과 함께 다시 펀드를 조성해 특정 작품에 투자하는 형태다. 한국벤처투자 출자 계획과 투자 방향에 의견을 내는 출자전략위 위원 자리에 유일한 문화예술계 전문가로 김 위원장을 선발한 것은 향후 영화 작품 선별과 투자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한 인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김교흥 의원은 "블랙리스트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라며 "윤석열 정부가 모태펀드를 손에 쥐고 문화영화계를 입맛대로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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