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위기 벤츠, 배터리 재활용까지 직접 뛰어든 이유
[현장] 유럽 최초, 벤츠가 만든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가다
▲ 메르세데스 벤츠가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쿠펜하임에 조성한 '배터리 재활용 공장'의 내부 ⓒ 김종철
'왜, 굳이 직접 하려고 할까'.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를 이끌었던 150년 역사의 메르세데스- 벤츠(아래 벤츠) 아닌가. 그 벤츠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직접 나서게 한 걸까.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친환경과 전동화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맞춰 전기차는 유럽을 중심으로 대중화를 향해 가고 있다. 노르웨이와 같은 일부 국가에선 신차 판매량에서 전기차가 이미 기존 가솔린 차량을 앞질렀다.
벤츠 역시 전기차 이큐(EQ)시리즈를 통해, 자체 전기차를 내놓고 있다. 여기에 벤츠는 한발 더 나아간다. 전기차의 핵심 '배터리 사업'이 그것이다. 배터리 셀(cell) 연구와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모든 과정을 벤츠가 직접 하겠다는 것. 이른바 '배터리 내재화'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가운데에서 이러한 시도는 벤츠가 유일하다. 물론 아직 최종 완성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라는 질문은 여전하다. 그리고 '어떻게?'라는 질문이 따라 붙는다.
차체 만들던 공장 개조, 배터리 재활용 전용 공장을 짓다
▲ 메르세데스 벤츠가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쿠펜하임에 조성한 '배터리 재활용 공장' 입구. ⓒ 김종철
▲ 21일(현지시간) 메르세데스-벤츠 배터리 재활용 공장 개소식에 참석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운데)가 현장에서 직원 설명을 듣고 있다. 맨 오른쪽은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CEO. ⓒ 메르세데스벤츠
지난 21일(현지시간)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쿠펜하임. 프랑스 국경과 맞닿은 이곳은 인구 8000여 명의 조그마한 도시다. 이날 하루 내내 도시가 술렁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비롯해 주요 부처 장관,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최고경영자 등 독일 정관계 인사와 벤츠 임직원이 총출동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각지에서 기자들도 몰려들었다.
이날 정식으로 문을 연 벤츠의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전용 공장을 보기 위해서다. 작년 3월 공사를 시작한 지 1년 7개월 만의 개관이다. 기존 가솔린 차량의 차체를 만들던 곳을 개조했다고 한다. 6800㎡ 대형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벽과 천장을 따라 커다란 둥근 파이프가 복잡하게 얽힌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 메르세데스 벤츠가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쿠펜하임에 조성한 '배터리 재활용 공장' 내부 풍경이다.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등 배터리를 제조하는 희소 원료를 추출해내는 원형 탱크들에 조명이 비추고 있다 ⓒ 김종철
파랑과 주황색 등의 조명이 대형 원통 탱크를 비추고 있었다. 겉에는 영문자로 황산니켈, 황산리튬, 황산코발트, 황산망간 등의 원소기호가 적혀 있었다. 롭 할리웨어 벤츠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총괄이 직접 폐배터리 모듈 1개를 컨베이어벨트에 올려 놓으며, 재활용 첫 단계를 선보였다.
컨베이어벨트에 오른 폐배터리 모듈은 파쇄기로 들어가 잘게 부숴진다. 이어 '블랙매스(Black mass)'와 플라스틱·구리·알루미늄·철 등 입자가 굵은 물질들이 분리된다. 블랙매스는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희금속이 담긴 활성 물질이다. 이들 금속은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의 주 원료들이다. 이렇게 분리된 블랙매스에 황산 등 용매를 넣고, 다시 결정화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벤츠는 이 같은 공정을 '기계식·습식야금'이라고 했다. 기존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에서 사용하는 방식과 다르다고 했다. 이미누엘 미헬 벤츠 배터리 재활용 총괄은 "이 같은 방식으로 코발트, 망간, 니켈 등 양극재 원료가 되는 물질을 96%까지 추출해 낼 수 있다"면서 "자원 회수율을 높이고 에너지 사용량은 낮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시대, 벤츠의 위기 의식이 배터리 투자 불렀다
▲ 메르세데스 벤츠가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쿠펜하임에 조성한 '배터리 재활용 공장'의 내부 벽면에 각종 원료 이름이 쓰인 포대들이 걸려있다. ⓒ 김종철
쿠펜하임의 벤츠 재활용 공장은 연간 2500톤 규모의 폐배터리를 처리할 수 있다. 100개의 원형 탱크에서 5만개 이상의 배터리 모듈을 만들 수 있는 원료를 뽑을 수 있다. 이를 전기차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5000대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또 이곳에선 플라스틱, 알루미늄, 구리, 철 등 무거운 금속도 뽑아 재활용된다.
물론 당장 공장이 풀 가동되지는 않는다. 이곳에 활용되는 폐배터리 역시 벤츠의 배터리 연구개발센터에 사용되고 넘어온 것들이다. 미헬 총괄은 "벤츠 전기차에서 사용된 배터리를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로는 연구 개발 과정에서 사용된 것들"이라며 "향후 10년, 20년 후 폐배터리가 늘어나면, 이 공장만으로는 (재활용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곳은 벤츠의 배터리 재활용의 연구시설이나 다름없었다. 벤츠쪽에서도 이 공장을 '파일럿(실험) 공장'이라고 불렀다. 벤츠는 이미 슈투트가르트에 별도의 배터리 셀 전용 개발센터인 이(E)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고,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팩 생산 공장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배터리 재활용 공장까지, 한마디로 배터리 순환체계(밸류체인)를 완성한 것이다.
▲ 메르세데스 벤츠 쿠펜하임 배터리 재활용 공장에서 직원이 배터리 재활용에 필요한 작업을 하고 있다 ⓒ 메르세데스벤츠
특히 폐배터리 재활용은 핵심 원료의 안정적인 확보와 함께 비용절감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CEO는 "배터리 재활용 공장은 원자재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벤츠가 지난해 내놓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오늘의 배터리가 내일의 배터리 원료 광산"이라고 적혀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자동차의 미래는 전기차이고, 배터리는 매우 중요한 핵심 부품"이라며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배터리를 만드는 순환 경제는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함 디딤돌이고 경제의 성장동력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 시대에 맞춰,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배터리 셀 구조의 고도화와 안전성,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변화와 발전에 따른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완성차 가운데 처음으로 배터리 재활용 전용공장까지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 메르세데스 벤츠가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쿠펜하임에 조성한 '배터리 재활용 공장' 전경 ⓒ 메르세데스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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