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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가 왜 '완도'인지 아십니까

[내가 사랑한 책] <완도군지> <완도읍지> 숭고한 완도의 역사, 잘 보존되었으면

등록|2024.10.25 10:24 수정|2024.10.25 10:24
올해 8월 완도경찰서장으로 부임했다. 완도에 오기 전부터 '완도(莞島)'라는 지명의 유래가 궁금했었다. 한자사전에서 '莞' 자를 찾아 보면 음(音)은 '왕골 완' 또는 '땅이름 관'이며, 뜻은 왕골(돗자리나 방석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한해살이풀), 빙그레 웃다 등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지명의 정확한 유래를 알지 못했다.

▲ ⓒ 완도신문


▲ ⓒ 완도신문


또한, 한국전쟁 때의 한강철교 잔해를 가져다 만들었다는 최초의 완도대교가 철거된 이후 철거물이 어디 보존돼 있는지도 궁금했었다. 인터넷을 뒤져 보아도 명확히 찾을 수 없었는데, 부임 이후 완도군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완도군지(郡誌)와 완도읍지(邑誌), 군외면지(面誌) 등의 책을 보고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참고로 완도군지는 1925년 12월 28일 최초 발간된 이래 50여 년이 지난 1977년에 두 번째, 1992년에 세 번째, 2010년 네 번째 군지가 각각 발간됐다. 완도군립도서관에서는 1992년판과 2010년판 군지를 열람할 수 있었다. 2010년판 군지는 분량이 1270여 쪽에 이르며, 완도의 역사와 민속, 행정, 사회, 교육, 문화, 산업과 경제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먼저 완도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3가지 정도의 설(說)이 있었다. 첫째 이 지역이 초목이 무성하여 왕골같다 하여 '왕골 완(莞)'을 지명에 사용하였다는 설, 둘째 산림이 울창하므로 궁궐재목 생산을 위한 국원(國苑)으로 지정함으로써 원도(苑島)가 완도(莞島)로 와전되었다는 설, 셋째 851년 벽골군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의 타향살이에 시달린 청해진 유민들이 고향생각을 하며 빙그레 웃었다 하여 '빙그레 웃을 완(莞)'이 지명에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다는 설 등이다.

군지에서는 셋째 설이 맞는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유래는 다음과 같다. 완도는 원래 신라 이전까지는 '좋은섬(助音島)'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823년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국한 장보고 장군이 동북아 바다를 호령하는 해상왕으로 등극하였는데, 국제 해양 무역기지이자 신라를 약탈하는 해적 소탕을 위한 군사기지로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참고로 청해(淸海)는 '바다를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이며 당풍(唐風)의 명명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신라 흥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왕위쟁탈전이 발생하였고, 그 과정에서 846년 장보고 장군은 염장이라는 사람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후 청해진은 염장에 의해 관리되다가 851년 철폐되었으며, 청해진 주민들은 벽골군(碧骨郡, 전북 김제)으로 강제로 집단이주되었다.

이때 집단이주되어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청해진 주민들이 고향 생각을 하면서 빙그레 웃었다고 하여 완도가 지명으로 자연스럽게 쓰이기 시작하였고, 이들이 40여 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지명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즉 실향민의 아픔을 달래는 그리움에서 자생된 섬이름이 완도로 변했고, 고려시대에 들어서 지방제도의 변화에 편승되어 정착된 것으로 본다.

이후 조선 고종 33년(1896년) 완도군 군내리에 완도군청을 짓고 영암, 강진, 해남, 장흥 등에 속해 있던 섬들을 통합하여 완도군을 행정구역으로 설치한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완도의 군목(郡木)은 동백나무, 군화(郡花)는 동백꽃, 군조(郡鳥)는 갈매기이다.

▲ ⓒ 완도신문


다음은 구 완도대교에 관한 것이다. 최초의 완도대교는 1968년 12월에 준공되어 1969년 1월에 개통되었다. 한강철교 잔해물을 가져다가 사용했다는 설과 임진각 철교를 가져다가 사용했다는 설이 있는데, 익산국토관리청으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은 결과 한강 북쪽 양수리의 한강철교를 사용했던 것으로 군외면지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유튜브에서 완도대교 건설 당시의 모습을 담은 짤막한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의 윗세대들이 무겁디 무거운 돌덩어리들을 맨몸으로 옮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2012년 현재의 신 완도대교가 건설되면서 최초의 완도대교는 철거되었는데,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완도대교 철거물이 어디엔가 보관 또는 전시되어 있을 줄 알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주민 몇 분에게 물어본 바에 따르면 당시에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자는 군민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철거되었고, 철거된 구조물을 원동리 어딘가 들판에 갖다 놨는데, 이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매우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작은 것 하나라도 완도의 역사가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전복 등의 가격하락으로 완도의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어서 빨리 완도 경기가 좋아지고, 이를 바탕으로 완도가 힘차게 발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울러 완도경찰도 치안 분야에서 완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완도군에서 열린 제36회 전라남도 생활체육 대축전 개막식에서 가장 늦게 대회장을 빠져 나온 이가 이성일 완도경찰서장이라는 주민들의 제보가 있었다. 항일의 섬 소안도 출신인 이 서장은 경기장을 찾은 방문객들의 안전을 위해 마지막까지 경찰 병력 등을 진두지휘하며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인상 깊었다는 것.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성일씨는 완도경찰서장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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