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힌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주민들이 나선 핵심 이유
[인터뷰] '남해군 해안도로 고압신설대책위' 조병래 위원장..."소통 부재 과정·절차, 잘못"
▲ 지난 18일 남해읍~이동면 해안도로에 심어졌던 전봇대가 철거돼 적재된 모습이다. ⓒ 남해시대
한국전력공사 경남본부(아래 한전)가 경남 남해군 남해읍~이동면 해안도로 구간(7개 마을)에 심었던 전봇대 150대가 지난 9월 26~29일 사이 모두 철거됐다. 해당 구역 주민들은 '남해군 해안도로 고압신설대책위원회(위원장 조병래, 아래 대책위)'를 구성하고 "주민들 몰래 해안도로의 경관을 해치면서 대형 리조트를 위해 선로를 신설한다"라는 내용 등의 이유로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한전은 전봇대를 자진 철거했고, 대책위는 10월 25일 해단식을 치렀다. 지난 여름 남해의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전봇대 사태'가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남해시대>는 지난 18일 남해읍의 한 카페에서 조병래 위원장을 만나 전봇대 사태에 대한 과정과 의미를 되짚어봤다.
▲ 조병래 위원장이 지난 18일 본지와 인터뷰했다. ⓒ 남해시대
조병래 위원장은 "이번 일은 한전과 남해군이 주민들과 소통을 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며 기관과 군민들 사이의 '소통'을 강조했다.
"7개 마을 주민은 전봇대 설치 자체를 반대한 게 아니다. 우리도 전력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히 사용하고 있다. 다만, 과정과 절차가 잘못됐으니 이를 바로 잡고 전봇대를 설치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접하고 주민들은 "뒤늦은 주민설명회는 의미가 없으니 전봇대를 철거하고 나서 주민설명회를 열어라"라고 주장했다.
이 사안을 <남해시대>가 보도하자 일각에선 "전봇대를 뽑고 난 뒤 주민설명회를 열었을 때 주민들이 동의를 해준다고 가정을 한다면, 시간적으로나 비용적으로나 손해이니 한전과 남해군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전봇대 공사를 계속 진행하도록 하는 게 낫지 않았냐"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같은 의견에 대해 조 위원장은 "한전이 집행하는 사업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알지만, 사전에 어떤 안내나 설명회 한번 없이 밀어붙였다는 것은 주민들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였다"면서 "그리고 주민들에게 공사 관련 관계자들의 말과 자료가 달라 큰 혼란을 야기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관행이 큰 문제라고 인식했다. 이번에 바로잡지 않으면 이런 일은 반복될 것으로 예측했다"라며 "그래서 주민들은 대책위를 구성했다. 우리는 과정과 절차가 그리고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주민설명회에서 한전 측은 '해안도로는 공공도로이기 때문에 주민설명회는 법적으로 의무가 아니니 집행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 조 위원장은 "입장을 바꿔서 자신들의 집에, 생활권에 원래 높이 보다 높은 전봇대가 심어지고, 고압 전선이 지나가는데 당사자들은 전혀 몰랐다면 법만 내세울 수는 있을지 의문이 든다"라고 되물었다.
남해군 향한 서운함, 왜냐면
▲ 기존 전봇대보다 높이가 높고, 전선이 없는 전봇대들이 이번 공사를 통해 심어진 모습이다. ⓒ 남해시대
주민들은 한전에 대한 분노를 주로 표출했지만, 남해군에 대한 서운함도 컸던 것으로 보였다. 조병래 위원장의 말이다.
"사실이다. 6월 17일 한전이 전봇대를 심고 난 후 15일 만에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남해군은 해안도로 점사용을 허가해 준 기관인데 관계자들은 '몰랐다'는 입장을 보였다. 당시 적극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자신들의 업무만 늘어놓는 답변에 책임을 피하려는 느낌이 컸다. 그래서 남해군에 대해 서운했다. 그래도 <남해시대>가 남해군이 주민들의 입장을 반영하고 또 관리 기관으로서 해야 할 역할의 부재를 지적해줬다."
조 위원장은 "첫 주민설명회 이후 한전보다 남해군 경제과가 저를 비롯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현장에도 수시로 나와서 확인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며 "서운함도 있었지만 같이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에 해소됐다"라고 덧붙였다.
이후 남해군의회가 현장을 나와서 설명회 자리가 만들어졌을 때도 주민들은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조 위원장은 "먼저, 남해군이 관련 내용을 몰랐다고 얘기한 바와 같이 남해군의회도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는 입장을 여러 의원이 밝혔다"며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행정기관과 의회가 소통이 부족했다는 게 아쉬웠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앞서 설명한 바와 한전이나 공사 관계자들이 남해군의회, 남해군에 제공한 정보나 자료가 주민들과 공유한 내용이 달랐다"며 "당시 자리는 주민들이 대동된 것 같아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대책위가 구성됐고 8월 12일, 7개 마을 주민의 뜻을 담은 진정서를 남해군에 제출했다. 주민들의 입장을 공식 문서로 남기기 위함이었다. 추석 직전 한전 관계자는 조 위원장에게 '추석 연휴를 쇤 뒤 전봇대 철거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연락했고, 이쑤시개처럼 서 있던 전봇대는 마침내 사라졌다.
"보상금 목적으로 전봇대 반대? 처음부터 지금까지 바라지 않아"
언론보도 뒤 일부 누리꾼은 '전봇대 신설 반대의 이유가 보상금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라면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 위원장은 "주민들은 이번 일이 발생하고 처음부터 '보상금은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언급했다"며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주민들은 지금도 보상금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올해 말까지는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지만 4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 전봇대 철거공사까지 마친 데에는 주민들의 단합된 입장과 명백한 이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석했다. 이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역신문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했다.
조 위원장은 "이번 사태는 지역신문이 주민들의 여론을 정리해 주고 대변하지 않았다면 장기전이 됐을 것"이라며 "<남해시대>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다른 지역신문들도 주민들의 입장을 잘 보도해준 점에 대해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역신문을 시작으로 지역방송, 전국 뉴스 등 내용이 확산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강진만에 들어선 해안도로의 가치
▲ 신설 전봇대(오른쪽)는 기존 전봇대(왼쪽) 보다 길이가 높고 색깔도 하얀색이며 전선이 연결돼 있지 않은 모습이다. ⓒ 남해시대
조병래 위원장이 이번 일에 몰두했던 이유는 '주민들이 무시당하면 안 된다'는 이장·위원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도 있었지만, 해안도로가 가진 역사와 가치 때문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해안도로를 좀 깊이 여기고 있다. 해안도로를 만들 때 강진만을 희생했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됐다. 생활의 편리는 누리게 됐지만 자원의 보고는 잃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만든 지금의 해안도로다. 강진만을 희생해 만든 해안도로인데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해안도로 만큼은 사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군민들과 향우들이 이번 사태가 발생하고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 덕에 힘을 얻어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번 사태를 풀어가면서 주민들은 성숙한 의식 수준을 보였다. 앞으로 한전에서도 남해군에서도 어떠한 공사나 사업을 할 때에는 군민들을 염두하고 더 소통하면서 추진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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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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