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울 때 '이비야', 어디서 온 말인지 아십니까
류영남 박사의 우리말 이야기
남해시대인문학센터와 남해문학회는 지난 10일 서면 대정 출신 한글학자 류영남 박사를 초청해 '우리말, 그 어제와 오늘'이란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다. 이날 강연회 내용 중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내용을 별도로 다시 한 번 싣는다.
[관련 기사] "아름답고 바르고 가멸찬 우리말, 제대로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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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영남 전. 부산한글학회장 ⓒ 남해시대
"아득한 세월의 저쪽, 신라 지증왕은 '밀양(密陽)'의 옛 이름인 '미리벌'을 이두식의 '추화(推火: 밀 추 불 화의 밀불^미리벌)'라 했다. 그리고 경덕왕은 관직 이름인 '발거뉘(밝은누리)'를 '혁거세(赫居世)'로 바꾸었다.
이때 시도된 한자화 정책은 땅이름의 기초가 되어 '한밭'이 '대전(大田)'으로 바뀌는 등 우리말 이름들이 사라져 갔다. 땅이름만이 아니다. 오늘에도 '날림먼지'를 '비산(飛散) 먼지'라고 하고, 선거 때는 '뜬표'를 '부동표(浮動票)'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인 1593년 10월 2일, 선조 임금은 '왜어(倭語) 사용 금지령'을 내렸다. 이로 보아 당시 우리말 속의 일본어 실태가 어떠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일본 교토시에는 조선인 12만6000여 명의 귀와 코를 묻어 놓은 '귀무덤(耳塚: 이총)'이 있다. '코무덤(鼻塚: 비총)'이라고도 한다.
어린애가 울 때 '이비야가 왔다'며 행동을 금하거나 멈추게 한 이 공포의 언어가, 귀와코를 베어 간 사람이란 '이비야(耳鼻爺)'에서 왔다고 한다. '이비야'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온 일본의 승려 게이넨(慶念)의 <조선일일기(朝鮮日日記)>에 나온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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