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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도로 오래 가겠다", 드라마 '파친코' 속 엄마 배우의 다짐

[액터 인사이드] 배우 정인지

등록|2024.10.26 16:59 수정|2024.11.06 17:20
작품 속 '주연'과 '조연', 그리고 '단역'의 구분은 있을지언정 연기와 인생의 주연, 조연은 따로 없습니다. 액터 인사이드는 연기를 해오며 온갖 희로애락을 겪었을 배우들을 응원하는 코너입니다.[기자말]

▲ 배우 정인지. ⓒ 사람엔터테인먼트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속 선자(김민하) 엄마, 그의 이름은 양진이다. 일제강점기 한복판을 아내이자 엄마라는 대명사로 살아내야 했던 그 인물은 주인공 선자의 삶에 각인돼 모종의 결단과 선택을 하게끔 음지에서 영향을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드라마가 시즌2까지 모두 공개된 이후인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양진을 연기한 배우 정인지를 만날 수 있었다.

"캐스팅 제안이 사기인 줄 알아"

TV 화면에선 다소 낯설어 보일 수 있으나 뮤지컬과 연극 팬들에겐 이미 탄탄한 실력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베르나르다 알바>, <난설>, <마리 퀴리>, <데미안> 등의 뮤지컬에서 팔색조의 모습을 보여온 그는 역시 해당 공연 덕에 이 글로벌 프로젝트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다만, 배우 본인은 촬영 예정일이 자신의 공연과 겹쳐서 한 차례 거절한 뒤였다고 한다.

"<파친코> 캐스팅 디렉터 분이 제 공연을 자주 봤다고 하더라. 수첩에 제 이름을 적어놓고 다녔다고. 당시 <난설>이란 작품을 하고 있었는데 제작사를 통해 연락이 왔다. 처음엔 사기인 줄 알았다. 연말 촬영이라는데 연초에 연락이 왔다. 공연 연습실에서 일단 5시간 동안 오디션 영상을 녹화에 보냈다. 그 뒤에 한 번 더 온라인 오디션을 봤는데 연말에 캐나다에서 촬영한다더라. 제가 공연이 예정돼 있어서 안 된다고 하니 캐스팅 디렉터가 너무 놀라시더라(웃음)."

다행히 제작사와 <파친코> 측의 원만한 합의로 정인지의 출연이 성사될 수 있었다. 캐나다 현지로 넘어간 정인지는 선자 엄마, 즉 양진의 삶을 이해하며 오롯이 그 시대를 살아내려 했다고 한다. 드라마에 전면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출연 배우들이 직접 모내기를 할 정도로 당시 시대상 고증에 철저했다는 사실이 방영 후 알려졌는데, 정인지는 "다들 어떤 묘한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다"며 당시 현장을 전했다.

"한국의 역사인 만큼 틀리면 안된다는 생각들을 다들 한 것 같다. 제작진이 철저하게 준비한 건 맞지만 한국인으로서 아는 사람은 보이는 게 있잖나. 모내기도 그래서 했던 것이고, 자세하게 안 보시겠지만 우리끼린 수저 놓는 위치까지도 철저하게 했다. 그리고 밥상을 놓고 앉는 위치도 배우들끼리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했었다. 요셉이나 모자수가 있는 자리에 누가 상석에 앉을지 논의하거나,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할 때는 일본 식사 전통은 어떤지 물어보기도 했다.

양진을 보면 항상 밥상 모서리에 앉아 있다. 나이든 할머니라 상석에 앉을 법한데 당시 시대는 남아선호가 지금보다 훨씬 심했기에 장손을 상석에 앉혔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건 현지 스태프나 감독님들은 자세히 알 수 없는 한국인만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신경을 더 썼던 것 같다."

▲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 속 양진 역을 맡은 배우 정인지. ⓒ APPLE TV+


▲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 속 양진 역을 맡은 배우 정인지. ⓒ APPLE TV+


연기할 때 캐릭터를 접하는 첫 느낌, 그리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고 생각하던 그에게 양진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멀리서 보면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초입을 살아내야 했던 엄마의 표상이자 세대가 바뀌는 한복판에 선 인물을 두고 정인지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양진의 삶은 역사와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는 그 흐름에 있지만,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은 그걸 모를 수도 있잖나. 2024년을 사는 정인지가 보면 양진의 삶에 풍파가 얼마나 깊었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를 살아간 양진은 하루하루 살기가 급급했을 것이다. 그 부분에 집중하며 연기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파친코>는 제 속도를 갈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넘어뜨려도, 넘어진 채로 가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시대 사람들이 그 모진 풍파를 다 넘으며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넘어진 채로, 부러진 채로 살지 않았을까. 지나고 나면 아, 풍파를 겪었구나 할 순 있겠지만. 제가 이제 딱 마흔이다. 조급할 수도 있는데 <파친코>를 하고 나서 뭔가 그 이후를 기대하게 되더라. 급하지 않게 내 속도로 멈춰가며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지치지 않고 오래오래

2003년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첫 영화 출연을, 2007년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로 첫 뮤지컬 무대를 경험한 정인지는 2010년 무렵부터 약 4년간 공백기가 있었다. 한 회사의 사무직으로 취직한 이후 나름 직장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때였다. "생활고가 있던 때였다"며 정인지는 당시 소회를 곱씹었다.

"공연 출연료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조기종영한 상황이었다. 사실 20대 때 생활고는 나름 견딜 수는 있잖나. 다만 이 일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 생각이 들더라. 지금 기준으론 20대 중반이 엄청 어린 나이인데 그땐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혜롭게 조언해주는 선배도 주변에 없었고. 막상 취업은 했는데 워드 프로그램이든 뭐든 할 줄 아는 게 없더라. 시키는 잡일은 정말 다했다. 혼나면 혼나는가보다 싶었지.

정규직으로 취업한 건 다시는 연기자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그렇게 4년을 일했는데, 내가 연기를 좋아하는 건 부정할 수 없겠더라. 아르바이트로 애니메이션 더빙을 하곤했다. 급여가 시간 대비 좋기도 했고, 회사일을 잊을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면서도 내가 연기를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 잘하고 싶어지고, 어느 순간 이것만 하고 싶더라.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스스로 되게 못났다고 생각했는데, 어쩌겠나.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움직여야지."

▲ "어쩌겠나.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움직여야지." ⓒ 사람엔터테인먼트


거부할 수 없는 연기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후 말대로 정인지는 다시금 하나씩 작품을 쌓아갔다. 동요대회서 상을 받아오던 어린 시절부터 예술중학교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기까지 무대는 정인지에겐 떼어놓을 수 없는 공간이었던 셈.

"중1 땐가 '님이 오시는지'라는 가곡이 필수였는데 가사에 물망초가 나온다. 그 노래를 부른데 아버지가 듣고선 '물망초를 봤나? 본 적도 없으면서'라고 지나가는 말씀을 하셨는데 순간 너무 부끄럽더라. 보지 못했으면서 노래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당시 담임 선생님이 그러면 연기학원엘 가보라고 하셨다. 부산 서면에 있는 학원이었는데 연기가 너무 재밌더라. 성악은 무대에서 혼자 하지만 연기는 같이 하는 거잖나.

기자님처럼 배우도 누군가의 삶을 잘 전달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업할 때 많이 물어보곤 한다. 제가 설득당해야 타인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료 조사를 하거나 캐릭터의 직업을 가진 실제 사람을 인터뷰하거나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양진도 처음엔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어서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여성으로 바라보고 다가갔다. 그러고 나니 딸의 임신, 한국전쟁의 현실이 따라온 것이다. 1910년대 여성을 어떻게 제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나, 나의 성격으로 접근한 다음 시대를 붙여가는 식이었다."

최근 들어 그는 동네 지인들과 제 속도를 지키며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이불부터 정리하고 환기를 시킨다. 이 사소한 습관 만큼은 지키려 한다"며 "달리기도 빨리 멀리 갈 생각은 없다. 내게 맞는 속도를 내가 아니까 멈추기 않고 잘 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멈추지 않고 제 속도로 오래 뛰기. 어쩌면 배우 정인지가 현재 품고 있는 배우의 자세가 아닐까. 오래도록 이 배우를 기억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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