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다듬으러 갔다가 숨진 경찰, 어떤 생각 드시나요
이태원 참사와 네일샵 사고를 떠올리며 드는 생각... 조롱 받아도 될 죽음은 없다
여성 경찰이 손톱 관리를 받으러 갔다가 갑자기 가게로 돌진해온 차량에 치여 숨졌다. 어떤 반응이 나올까? 언론과 여론, 고위직 관계자는 뭐라 말할까?
이 글을 읽을 독자의 반응도 궁금하다.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여경이 무슨 네일을 하러 가. 하필 거기서 봉변이나 당하고.'와 비슷한 생각이 얼핏 들지는 않는지.
애도의 대상과 처벌의 대상
지난 여름, 야근을 하는 아들을 데리러 '디어파크(Deerpark)'라는 동네에 갔었다. 내가 사는 롱아일랜드는 뉴욕 맨해튼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동네라 대중교통 망이 느슨하고 이용이 쉽지 않다.
디어파크에는 대형 아울렛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쇼핑단지가 조밀하게 모여 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야심한 시간임에도 뭔가 동네가 분위기가 달랐다. 아들의 근무처에 거의 도착해 신호등 두 개를 남겨 놓고 있는데 여러 대의 경찰차가 길을 막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혹시 총기 사고라도 있었나 걱정이 되었다. 알고보니 아들의 근무지에서 가까운, 길 건너 작은 쇼핑 단지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만취한 음주 운전자의 차량이 가게로 돌진한 결과로 네 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상을 입는 큰 사고였다.
사고를 당한 네일샵 주변에 샌드위치 등을 파는 델리 가게, 카페, 세탁소 등이 모여 있어 평소에도 이용객이 많았고, 그래서 사고 당시에 주변에 있던 십 여 명의 사람들도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고 한다.
한 주 쯤 지나 사고 지점을 통과하며 보니, 가게는 아직 복구가 되지 않은 채로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고, 수많은 꽃다발과 촛불이 놓여 있었다. 희생된 네 명 중 세 명은 직원이고 한 사람은 고객이었다고 한다.
여성 고객의 이름은 에밀리아 렌헥(Emilia Rennhack). 서른 살 신혼의 그녀는,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네일을 받으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에밀리아는 경찰이었다.
12세에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 가정'에서 성장한 그녀는 어릴 때부터 경찰이 꿈이었다고 한다. 경찰 학교를 졸업하면서 피지컬어워드(physical fitness award)를 수상할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했고, 가정 폭력 전담반에서 일하며 업무 실적도 우수했다.
작년에 형사였던 남편과 결혼한 그녀는 비번일에 네일샵에 들렀다가 사고를 당했다. 동료 경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평소에 보여준 헌신과 성실한 복무 경력, 다정다감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주변을 밝게 한 이야기들이 줄을 이었다. 순직 경찰의 예우를 받으며 수백 명 경찰 동료의 애도속에 장례식을 마쳤다.
그녀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해도, 속사정과 업무 실적을 몰라도, '경찰이 비번 휴일에 네일이나 받으러 다니고 말이야.'라고 비아냥대는 이는 없었다. 이주자 혐오나 여성 혐오 글도 없었다. 지난 봄, 불법 정차 차량 검문 중 순직한 남성 경찰과 비교하지도 않았다.
뉴욕 시장은 젊은 경관을 잃은 애도의 마음을 담아 추도사를 했고, 지역구 의원들과 지역사회는 가해자인 '음주 운전자'에게 자비 없는 강력한 처벌과 음주 운전에 대한 강력한 처벌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했다.
'네일 받으러 갔다가 죽은 여경'이란 감히 내뱉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가볍게 거론될 죽음은 없다
곧 할로윈이 다가온다. 비싸진 사탕 가격에 소비가 위축된다는 뉴스도 나오고, 가격 부담에 요란한 할로윈 의상을 따로 준비하지 않겠다는 이들도 많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할로윈 장식이 걸리고 아이들은 들떠 있다.
안전하게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기보다 따로 행사와 파티를 준비하는 곳도 늘었다. 이웃집에 걸린 할로윈 장식을 보며 나는 자동적으로 이태원이 떠올랐다. 봄마다 수학 여행 철이면 세월호가 떠오르듯이. 수백 명의 희생자 앞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할 말들도 같이 떠올랐다. 굳이 반복해서 옮기고 싶지 않은 거친 표현들이다.
사람은 살아가고, 그 삶 안에는 쉼과 여행, 즐거움과 어울림도 포함되어 있다. 어느 시간, 무엇을 하다가 운명을 다했건 가볍게 여겨질 죽음은 없다. 가볍게 여겨질 삶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막을 수 있는 희생을 막지 못했다는 공동의 채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사회적 참사 이후, 매년 돌아오는 기억의 날은 반성과 기회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 죽음을 바라보는 미숙했던 시선과 유가족을 대했던 어설픈 태도가 좀 더 성숙하게 되는 기간 말이다.
일각에서 나오는 혐오와 비아냥, 혹은 조롱을 단호히 꾸짖고, 끝없을 상실을 위로하며, 잊히고 묻히길 바라는 여론을 단도리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 진다면 좋겠다.
아직도 따가운 눈총을 견디고 있다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안타깝다.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할 이는 희생자나 유가족, 그들과 연대하려는 추모자가 아니라, 참사 당일 책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이 받아야 할 몫이다.
이 글을 읽을 독자의 반응도 궁금하다.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여경이 무슨 네일을 하러 가. 하필 거기서 봉변이나 당하고.'와 비슷한 생각이 얼핏 들지는 않는지.
지난 여름, 야근을 하는 아들을 데리러 '디어파크(Deerpark)'라는 동네에 갔었다. 내가 사는 롱아일랜드는 뉴욕 맨해튼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동네라 대중교통 망이 느슨하고 이용이 쉽지 않다.
디어파크에는 대형 아울렛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쇼핑단지가 조밀하게 모여 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야심한 시간임에도 뭔가 동네가 분위기가 달랐다. 아들의 근무처에 거의 도착해 신호등 두 개를 남겨 놓고 있는데 여러 대의 경찰차가 길을 막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혹시 총기 사고라도 있었나 걱정이 되었다. 알고보니 아들의 근무지에서 가까운, 길 건너 작은 쇼핑 단지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만취한 음주 운전자의 차량이 가게로 돌진한 결과로 네 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상을 입는 큰 사고였다.
▲ 큰 사고였다(자료사진). ⓒ mynameisged on Unsplash
사고를 당한 네일샵 주변에 샌드위치 등을 파는 델리 가게, 카페, 세탁소 등이 모여 있어 평소에도 이용객이 많았고, 그래서 사고 당시에 주변에 있던 십 여 명의 사람들도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고 한다.
한 주 쯤 지나 사고 지점을 통과하며 보니, 가게는 아직 복구가 되지 않은 채로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고, 수많은 꽃다발과 촛불이 놓여 있었다. 희생된 네 명 중 세 명은 직원이고 한 사람은 고객이었다고 한다.
여성 고객의 이름은 에밀리아 렌헥(Emilia Rennhack). 서른 살 신혼의 그녀는,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네일을 받으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에밀리아는 경찰이었다.
12세에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 가정'에서 성장한 그녀는 어릴 때부터 경찰이 꿈이었다고 한다. 경찰 학교를 졸업하면서 피지컬어워드(physical fitness award)를 수상할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했고, 가정 폭력 전담반에서 일하며 업무 실적도 우수했다.
작년에 형사였던 남편과 결혼한 그녀는 비번일에 네일샵에 들렀다가 사고를 당했다. 동료 경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평소에 보여준 헌신과 성실한 복무 경력, 다정다감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주변을 밝게 한 이야기들이 줄을 이었다. 순직 경찰의 예우를 받으며 수백 명 경찰 동료의 애도속에 장례식을 마쳤다.
그녀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해도, 속사정과 업무 실적을 몰라도, '경찰이 비번 휴일에 네일이나 받으러 다니고 말이야.'라고 비아냥대는 이는 없었다. 이주자 혐오나 여성 혐오 글도 없었다. 지난 봄, 불법 정차 차량 검문 중 순직한 남성 경찰과 비교하지도 않았다.
뉴욕 시장은 젊은 경관을 잃은 애도의 마음을 담아 추도사를 했고, 지역구 의원들과 지역사회는 가해자인 '음주 운전자'에게 자비 없는 강력한 처벌과 음주 운전에 대한 강력한 처벌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했다.
'네일 받으러 갔다가 죽은 여경'이란 감히 내뱉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가볍게 거론될 죽음은 없다
▲ 이웃집 할로윈 장식할로윈을 맞아 집 앞마당에 할로윈 장식을 설치하는 이웃들을 보고 있으니 이태원 참사가 자동으로 떠올랐다. 개인적으로는 할로윈을 즐기지 않지만, 쉼과 즐거움도 삶의 중요 구성요소이다. 가벼이 말하거나 다루어질 죽음은 없다. 사회적 참사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 장소영
곧 할로윈이 다가온다. 비싸진 사탕 가격에 소비가 위축된다는 뉴스도 나오고, 가격 부담에 요란한 할로윈 의상을 따로 준비하지 않겠다는 이들도 많지만 그래도 집집마다 할로윈 장식이 걸리고 아이들은 들떠 있다.
안전하게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기보다 따로 행사와 파티를 준비하는 곳도 늘었다. 이웃집에 걸린 할로윈 장식을 보며 나는 자동적으로 이태원이 떠올랐다. 봄마다 수학 여행 철이면 세월호가 떠오르듯이. 수백 명의 희생자 앞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할 말들도 같이 떠올랐다. 굳이 반복해서 옮기고 싶지 않은 거친 표현들이다.
사람은 살아가고, 그 삶 안에는 쉼과 여행, 즐거움과 어울림도 포함되어 있다. 어느 시간, 무엇을 하다가 운명을 다했건 가볍게 여겨질 죽음은 없다. 가볍게 여겨질 삶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막을 수 있는 희생을 막지 못했다는 공동의 채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사회적 참사 이후, 매년 돌아오는 기억의 날은 반성과 기회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 죽음을 바라보는 미숙했던 시선과 유가족을 대했던 어설픈 태도가 좀 더 성숙하게 되는 기간 말이다.
일각에서 나오는 혐오와 비아냥, 혹은 조롱을 단호히 꾸짖고, 끝없을 상실을 위로하며, 잊히고 묻히길 바라는 여론을 단도리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 진다면 좋겠다.
아직도 따가운 눈총을 견디고 있다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안타깝다.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할 이는 희생자나 유가족, 그들과 연대하려는 추모자가 아니라, 참사 당일 책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이 받아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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