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무법 세상, 반려견들에겐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개를 위한 개에 대한 이야기] 인간이 아닌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봐주세요

등록|2024.11.08 14:01 수정|2024.11.08 14:01
10년 차 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기자말]
"지금부터 12시간, 살인은 물론 어떤 범죄도 허용됩니다."

우연히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영화관 매대에 걸린 포스터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포 영화 <더 퍼지>의 문구였다.

보통 공포 영화는 사람을 공포스럽고 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와 시각을 자극하는 이미지들이 공포심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포스터에 있는 문구 하나를 보고 공포를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다. 미국의 미래 사회를 그린 영화로 매년 단 하루, 12시간 동안 살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범죄가 허용되는 일명 '퍼지 데이'의 공포를 그린 영화다.

여러분도 한번 상상해보라. 만약 단 하루 12시간 동안 법이 사라진다면, 누구나 아무나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당장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무섭고 불안하며, 내 주변 온갖 것들이 의심의 대상일 것이다.

공포 영화 한 장면상상해보면, 개들 관점에선 세상이 무서울 수 있다. 마치 법이 사라진 시대에 사는 것이나 다름 없을지 모른다.(자료사진) ⓒ pixabay


"개에 대한 글에 웬 공포 영화?"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개들이 사는 인간 세상'이 떠올랐다. 실제 보호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많은 강의에서, 나는 이것만큼 개를 이해하기 좋은 영화가 없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간단히 답부터 말하자면, 개들은 더 퍼지의 주제처럼 '법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개들은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이것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먼저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 주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에겐 '법과 질서' 있지만, 개들에게는?

얼마 전,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대형 복합 쇼핑센터가 생겼다.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가 돼서 다른 지역 사람들도 다 몰리는 명소가 됐다.

처음 가는 커다란 건물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가득한 현장에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간다. 심지어 스쳐도 그대로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자동차들이 다니는 도로에서 차를 타거나, 모르는 사람이 내 바로 옆에 앉는 지하철을 타고 그곳에 왔을 것이다.

그것뿐일까. 다양하게 생긴 맛집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도 맛있게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이 당연해 보이는 우리 일상은 법과 질서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에도 '퍼지 데이'가 있다면 어떨까?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법이 없던 인류의 아주 먼 어딘가로 올라가면 우리의 일상은 이상해 보일 것이다. 저명한 저서 <사피엔스>(유발 하라리)에서 저자는 이에 대해 흥미로운 얘기를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인지 혁명'이라는 것이다.

인지 혁명이란, 간단히 말해 '추상적 개념'을 인간끼리 약속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된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추상적 개념이란, 법, 질서, 윤리, 도덕과 같은 보이지 않는 개념을 말한다. 인류는 이런 개념들을 서로 지키기로 약속했고 이는 결속력을 크게 했으며, 그 결과로 생존에 있어 보다 안정성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평소에 우리가 대부분 의식하고 살진 않지만, 이런 추상적 개념은 인간의 생존과 안전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개는 어떨까?

물론 개들도 나름대로 무리를 만들면 자신들만의 규칙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개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다. 법이 없는 것이나 다름 없어서 개들은 다양한 것들이 이해할 수 없고, 불안정하며, 두려운 것들이 많은 경우가 많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처음 보는 개, 낯선 환경에 의심투성이인 개들이 많은 이유가 이것이기도 하다.

규칙이 주는 편안함2023년 10월, 일본에서 반려견 훈련 클럽에서 단체로 엎드려서 기다리기 훈련중에 찍은 사진. 반려견들 사이엔 매우 편안하고 안정된 공기가 흘렀다. ⓒ 최민혁


개들이 이해하기엔 인간의 세상은 너무 급속도로 바뀌었다. 불과 100년 전과 지금은 개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부터 달라졌다. 가령, 내가 가장 많이 의뢰를 받는 행동은 주로 개들의 '짖음'인데, 과거와 지금은 이 행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다르다.

특히 대한민국 도시처럼 다세대가 모여 사는 환경에서는 집에서도 '짖음'이 문제고, 밖에서도 문제다. 개들의 이 짖음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많은 이유가 불안, 두려움, 알림에 있다. "저 소리나 저 대상은 내 안전과 생존에 위협이 되는 거 같아"라고 판단하면, 개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변에 알리거나 자신이 쫓아내기 위해 짖음을 수단으로 쓰기 시작한다. 즉 크게 짖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짖음은 과거엔 문제 행동이 아닌 이로운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12를 누르면 바로 출동할 수 있는 경찰도 없고, 나를 위협할 사람을 처벌할 법도 없으며, 굳게 걸어 잠글 수 있는 안전문 도어락도 없던 시절에 개들은 어땠을까. 사실 짖어서 위험을 알릴 수 있었기에 개가 인간과 함께 한 부분도 있다.

그 정도로, 물론 도시 생활에서 개들의 심리가 안정되면 잘 짖지 않기에 반려견을 위해서도 교육을 하는 것이 좋지만, 개들이 느끼기엔 인간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보호자들은 그런 개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아래는 내가 자주 듣는 보호자님들의 멘트들이다.

"야, 버스 저게 뭐가 무섭다고 그래?"
"어휴, 손님한테 개가 버르장머리가 없어."
"너, 형 강아지한테 버릇없게 그 태도가 뭐야."

인간이 보기엔 아닐지라도, 개들이 보기엔 버스가 무서울 수 있다. 버스가 여러 명을 태우는 편리한 교통 수단이며, 도로 교통법을 준수하는 자동차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만, 개들 눈에는 언제 자신을 공격할지 모르는 거대한 UFO 같을 수도 있다.

더구나 개들에게는 '손님'의 개념이 없다. 손님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음료와 다과를 내주지 않는다. 개들이 보기엔 타인은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침입자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처음 보는 개들 사이에 '형, 누나, 오빠, 언니' 관계는 없다. 이것까지 강요한다면, 반려견에게 한국의 유교사상까지 주입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사람들이 흔히 개들이 법, 질서, 윤리, 도덕과 같은 추상개념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 하는 실수들이다. 흔히들 개를 교육 시키는 법을 몰라서 문제 행동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작은 개들을 '의인화(擬人化)'하는 생각이다.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개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본인의 생각대로 개들을 대하는 것이다.

반려견 교육, 개들에게 법과 질서를 알려주는 것

그럼 이런 개들이 추상개념을 모른다면 개들은 영영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보호자가 곧 '법'이 되어주어, 개들에게 생존에 대한 안정감을 주면 된다. 그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단순히 반려견이 뭔가를 못하게 하고, 안 된다고만 하고, 개들을 편하게 두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서 보호자가 반려견을 리드해주며 같이 있어도 괜찮다고, 세상은 안전하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든든한 보호자반려견 교육이란, 법과 질서를 모르는 개들에게 보호자가 법이 되어주는 것이며, 반려견들이 세상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 최민혁


예를 들어, 오토바이를 두려워하는 개가 있다고 가정 해보자. 오토바이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보호자가 차분하고 당당하게 '기다려'라고 말을 한 뒤, 잘 기다리면 반려견에게 좋아하는 간식 보상을 준다.

개들은 "보호자 말을 들었더니 내 안전에 별 문제가 없네"라고 점점 인식하게 된다. 반대로, 보호자가 잘 책임지지 못하고 리드하지 못한 개들은 매 일상에서 훨씬 불안하고 두려움이 많아진다.

우리는 인간이 느끼기에도 변화가 빠른 세상에 살고 있다. 만약 당신의 개가 사회적인 상황에서 문제행동이 있고, 무언가에 특히 불안하고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개들이 '생존'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 가능성이 크다. 당신이 이 세상에 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타인이 막무가내로 나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장의 생존에 대해 두려워지며 덜덜 떨리는 것처럼 말이다.

반려견에 있어 보호자는 그저 맛있는 걸 주고, 예뻐만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들에게도 법과 질서가 있기에 다들 안심하고 조금이나마 안전하게 지내는 것처럼, 반려견에게 든든한 법과 질서가 되어주고 그들을 '보호'해주는 사람이 보호자라는 것을 명심하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