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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부터 BTS까지... "신해철 10주기, 신나게 추모하자"

[현장] 가수 신해철 10주기 추모 공연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

등록|2024.10.27 18:02 수정|2024.10.27 18:02

▲ 신해철 트리뷰트 콘서트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 ⓒ 신나리


"그래서 오늘 누구 공연인데?"

십 대로 보이는 아이가 아빠를 향해 물었다. 아빠는 "보면 안다"고 대답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와 아이, 엄마는 좌석에 앉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들이 배경 삼은 무대 위에는 '마왕'을 상징하는 뿔이 장식되어 있었다.

27일로 10주기를 맞는 '마왕' 가수 신해철(1968~2014)의 트리뷰트 콘서트 '마왕 10th: 고스트 스테이지'에는 유난히 가족 단위의 관객이 눈에 띄었다. 어느새 40대를 훌쩍 넘은 것으로 보이는 마왕의 팬들은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이 된 자녀의 손을 잡고 '마왕'을 기렸다. 마왕은 2001년부터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 DJ로 활약한 신해철에게 붙여진 그만의 호칭이다.

26일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마왕 신해철의 음악이 울려 퍼졌다. 오후 5시에 시작한 공연은 오후 10시까지 이어졌다. 예정된 200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평소 신해철을 사랑하고 존경한, 후배와 동료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추모했다.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다며 미안함을 전하는 후배부터 그와 제대로 인사를 나눈 적 없지만 늘 마음으로 존경했다는 동료, 형·동생으로 오랜 세월 인연을 이어간 동료까지 신해철과의 추억을 품은 이들이 신해철의 노래를 불렀다.

26일과 27일 양일간 이어지는 트리뷰트(특정 아티스트를 기억하며 동료·후배가 하는 헌정 앨범 혹은 공연- 기자말)공연에서 밴드 N.EX.T(넥스트, 김영석·김세황·이수용)와 고유진·김동완·홍경민은 이틀 모두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진지하고 슬픈 분위기는 마왕 신해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그를 신나게 기억하자"고 말했다.

고인의 아내 윤원희씨가 대표로 있는 신해철 IP(지식재산권) 보유사인 (주)넥스트 유나이티드와 음원·음반 유통사 (주)드림어스컴퍼니가 기획한 공연을 찾은 이들은 양일간 1만 20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필요한 우리 형"

▲ 26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펼쳐진 신해철 트리뷰트 콘서트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 ⓒ ㈜넥스트유나이티드·㈜드림어스컴퍼니


26일 공연의 첫 무대를 연 홍경민은 검은 코트를 입고 1997년 넥스트 4집에 실린 '라젠카, 세이브 어스 (Lazenca, Save Us)'를 불렀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일어서 발을 쿵쿵 구르고 주먹을 쥔 한 손을 올리며 박자에 맞춰 열광했다. 고유진은 넥스트의 1995년 곡 '호프 (Hope)'를 부르며 "공연을 준비하면서, 명곡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 곡 (Hope)은 언제든 지친 우리에게 힘이 되는 노래"라고 말했다.

신화의 김동완은 넥스트의 하드록 '머니 (Money·1995)'와 '코메리칸 블루스 (Komerican Blues·1993)'를 부르고는 "먼 후배라 신해철 형님과 음악적인 교류는 없지만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풍자와 위트, 촌철살인을 담은 노래를 불러준 형님이 요즘에 더 자주 생각난다"면서 "우리 사회에 지금도 필요한 형"이라고 그리워했다.

신해철은 다양한 장르와 음악으로 한국대중음악사에 그었지만 동시에 사회를 향한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자신의 신념과 진보적인 철학을 노래와 발언으로 드러냈고, MBC < 100분 토론 >에 여러 차례 출연해 ▲간통죄 반대 ▲대마초 합법화 ▲체벌 금지 등을 주장했다. 사회를 뜻하는 소사이어티(society)와 연예인을 지칭하는 엔터테이너(entertainer)를 합친 신조어 소셜테이너의 원조 격이다. 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고, 추모 앨범을 제작했다.

밴드 넥스트의 기타리스트 김세황, 베이시스트 김영석, 드러머 이수용은 지난 2015년 추모 공연 이후 오랜만에 무대에서 합을 맞췄다. 이들은 모두 현재 연예인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신해철의 10주기 공연을 위해 다시 각자의 악기를 들었다. 김세황은 무대를 돌며 관객을 향해 큰 절을 했고, 이수용은 "코로나 때문에 오랜 시간 추모 공연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죄송했다"고 전했다. 김영석은 "신해철의 노래가 계속 불리고 기억되길 원한다. 여러분 모두 그의 노래 속에서 좋은 추억을 지니며 계속 살아달라"고 말했다.

"힘든 학창 시절 버티게 한 넥스트"

▲ 26일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건 신해철의 ‘친한 동생’ 가수 싸이(박재상)이었다. ⓒ ㈜넥스트유나이티드·㈜드림어스컴퍼니


연이어 여러 후배 가수가 신해철의 곡을 재해석하며 무대를 이어갔다. 밴드 해리빅버튼은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1999)를 부르며 "(개인적으로) 마왕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고 믿지 않는다"면서 "마왕은 지금 여러분 사이에서 흐뭇하게 지켜볼 거다. 마왕을 마음속에 간직하면 그는 영원히 우리 곁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슈퍼주니어 예성은 '일상으로의 초대'(1998)를 불렀고 마마무 솔라는 '내 마음 깊은 곳의 너'(1991)를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했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넥스트의 앨범으로 어려움을 견뎠다"는 밴드 넬은 '날아라 병아리'(1994)를 불렀다.

"십 년 전 가을에 들은 지독한 거짓말이 하나 있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십 년 전 들은 거짓말은 얼마나 황당하고 독했는지, 지금도 가슴에 멍으로 남아 있습니다."

공연 중간 라디오 DJ 배철수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MBC FM4U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코너 '철수생각' 형식으로 내레이션을 녹음해 주최 측에 전달했다. 신해철을 '푼수'로 지칭한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푼수고, 스스로 행복하려는 사람도 푼수다. 그렇기에 그(신해철)는 푼수"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멤버 제이홉 역시 영상을 통해 "마왕은 나를 포함한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줬다"고 전했다.

"신해철의 생전에 제대로 인사할 기회가 없었다"는 김범수는 "내 유년 시절의 사춘기를 함께해준 특별한 뮤지션이자 음악적 영감을 준 가수가 신해철"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신해철이 밴드 무한궤도로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하기 전, 강변가요제 본선 3차에 탈락했을 때 부른 노래가 있다. 이후 신해철 1집에 이 곡이 편곡돼 실렸는데 감히 불러보겠다"면서 '슬픈 표정하지 하지 말아요'(1990)를 소화했다.

이날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건 신해철의 '친한 동생' 가수 싸이(박재상)이었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제가 아는 (해철이)형은 추모도 유쾌하길 바라는 사람"이라며 댄스곡 '챔피언'과 '연예인'을 연달아 불렀다. 신인 시절 신해철에게 음악을 배운 싸이는 2014년 10월 27일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신해철을 위해 2015년 헌정곡 '드림(DREAM)'을 발표했다. 이후 자신의 대표 브랜드 콘서트인 '흠뻑쇼' 등에서 이 곡을 꾸준히 부르고 있다. 싸이는 자신의 곡 '아버지'를 부르며 "오늘만큼은 형(신해철)의 두 자녀를 위해 이 노래를 바친다"고 말했다. 또 '예술이야'를 부르고서는 "제가 만든 곡 중에서 형이 가장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 준 곡"이라고 소개했다.

"저는 댄스가수이지만 무작정 댄스만 하지 않습니다. 모든 공연에서 늘 밴드와 협연을 합니다. 제가 공연을 시작하게 된 명분, 당위성이기도 한데, 밴드와의 협연을 알려준 게 형(신해철)입니다. 그렇기에 이 무대는 성덕(성공한 덕후)의 무대입니다."

싸이는 자신에게 공연의 의미를 전해준 인물이 신해철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해에게서 소년에게(1997)', '나에게 쓰는 편지(1991)', '그대에게(1988)'를 잇따라 불렀다. 관객들은 마지막 곡 '그대에게'의 가사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 느낄 수 있어요'를 열창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는 두 손을 포개며 다짐하는 듯 노래를 따라 불렀다.

▲ 성남에 위치한 실제 신해철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 ⓒ 신나리


이들은 공연이 끝나고도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를 예상한 듯 주최 측은 공연장 내부에 신해철이 세상에 남긴 것들을 함께 볼 수 있는 특별 전시회 '마왕의 아지트'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성남에 위치한 실제 신해철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과 그가 사용한 작곡노트·선글라스·벨트·시계·목걸이 등 그가 즐겨 썼던 소품, 그가 받은 상과 트로피가 전시돼 있다.

한편, '마왕 10th : 고스트 스테이지'는 신해철 10주기 당일인 27일에도 열린다. 이 공연에는 밴드 넥스트 멤버와 고유진·김동완·홍경민이 그대로 나오고 이승환, 전인권밴드, 국카스텐, 에피톤 프로젝트,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엑디즈)가 고인을 기억하며 무대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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