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노농당 창당... 대표에 선출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단주 유림평전 14] 해방정국은 단독선거 방향으로 치달았다
▲ 1945년 8월 16일 오전 9시 마포형무소 앞에서 해방을 기뻐하는 사람들 ⓒ 위키미디어 공용
해방정국은 단독선거 방향으로 치달았다.
미국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은 이승만 주도의 단선노선으로 굳혀져갔다. 유림은 아나키스트들의 뜻을 모아 1946년 7월 7일 서울의 역경원에서 독립노농당 창당대회를 열었다. 인구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와 농민을 대변하겠다는 포부로 당명을 '독립노농당'으로 지었다.
<창당선언문>은 이어 "이제 우리 근로대중은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새나라 건설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이라는 자각에 바탕하여 새나라 건설을 하루 속히 우리 손으로 성취하고, 우리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철저히 지켜 나가기 위하여" 독립노농당을 창당한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날 전당대회는 유림을 위원장에, 이을규·양일동·이시우·신재모·방한상 등 쟁쟁한 항일아나키스트 지도자들을 집행위원으로 선출했다. 또한 3개항으로 된 <당의 강령>을 채택했다.
-. 본당은 국가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하여 투쟁한다.
-. 본당은 농민·노동자·일반근로대중의 최대 복리를 위하여 투쟁한다.
-. 본당은 일체 독재를 배격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국내외 세력과 평등 호조의 원칙에 의하여 합작한다.
창당대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된 유림은 지방당 조직에 나섰다.
유림은 서울을 비롯 대구·부산·광주·전주·대전 등의 대도시와 각 시·군에 지방당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한편 창당 약 한달 뒤인 8월 3일에는 당기관저 <노농신문>을 순간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노농당은 대중적인 조직과 자금을 갖춘 해방정국의 여타 정당에 견주어 볼 때 오늘날과 같은 조직체계를 갖춘 '정당'이라기보다는 아나키즘을 중심으로 한 소속의 '이념집단'이란 인상이 짙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주석 1)
독립노농당을 창당하여 지방당 조직에 열중하고 있을 때,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나고 곧 도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유림은 중앙당과 대구지구당 합동으로 조사단을 구성하고, 미군정사령관 하지를 만나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해방작업'이 잘못되었다. 8.15 직후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격화되는 바람에 그만 친일세력에게 철퇴를 내릴 겨를이 없었다. 오히려 이제는 그 친일세력들이 애국적이고 양심적인 민족세력을 위협하는 판이다. 이 민족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주석 2)
해방정국은 미군정이 오로지하면서 친일파 거두들이 활개치고 일제 경찰·헌병·밀정들이 군정청에 눌러앉아 국민보다 새 주인에게 충성하면서 민심이 흉흉했다. 대구사건은 이같은 상황에서 벌어졌다. 미군정의 보좌기관으로 1946년 12월 12일 남조선과도입법의원(입법의원)이 개원되고, 하지는 그동안 결렬상태이던 미·소공위의 재개를 언급했다. 독립노농당 대표 유림은 이와 관련 신랄한 비판을 언론을 통해 쏟았다.
나는 처음부터 모스크바 외상 결정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미군정의 입법의원도 반대해 왔다. 조선의 자주독립은 대서양헌장을 비롯하여 현대사의 조류에 따른 자명한 이치이므로 신탁통치는 연합국의 자기모순적인 처사이다. 항간에는 미소공동위원회가 우리나라 독립의 유일한 길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 것 같으나 가소로운 일이다. 애당초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므로 공동위원회가 성공할 리 없다. 어째서 우리나라 일을 밖에서 남들이 결정하고 나선단 말인가. 그렇게 하니까 내부에서 추종자가 생겨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닌가.
미 군정의 입법의원이란 것도 마찬가지의 과오를 범하고 있다. 어제 하지 중장도 나와 면담했을 때, 지금까지의 미국의 점령정책이 실패였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말하고 앞으로 이를 시정하겠다고 다짐했다. 요컨대 근본부터 고쳐 생각해야 할 것이다. 조선인의 문제는 조선인에게 자주적으로 처리하도록 맡겨야 하는 것이다. 비상국민회의와 민주의원 때에도 그런 식으로 하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조선의 독립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니, 차라리 완전한 독립에 방해가 될 고식책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주석 3)
주석
1> 최갑용, 앞의 책, 123쪽.
2> 앞의 책, 124쪽.
3> <경향신문>, 1947년 1월 15일.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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