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다 등록한 영어교실, 행복했던 6개월
[열 개의 우물] 십정동 해님방 영어교실과 한글교실
김미례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열 개의 우물>이 2024년 10월3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70-80년대 여성노동과 인천 빈민지역의 탁아운동을 함께 했던 여성들을 조명했다. 그녀들은 어떻게 서로에게 기대어 그 시대를 살았는지, 그 이후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한 여성들과 아이들을 따뜻하게 함께 품어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서 열 편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편집자말]
그때 나는 집에서 조그마하게 옷수선실을 하고 있었는데, 손님들은 하필이면 왜 내가 볼일이 있어서 문을 닫아야 할 때마다 오시는지……. "아까 왔었는데 안 계시더라고요, 어디 갔다 왔어요?"라고 하실 때가 있다.
영어가 적힌 간판을 비롯해서 영어가 생활 속에 너무 많이 쓰이는데, 지금처럼 모르는 채로 그냥 살아도 되기는 하겠지만, 한글은 아니까 행여나 먼 훗날 손주들과의 사이에도 내가 너무 몰라서 애들에게 소외 당할까 망설이다 등록을 했다.
망설이다 등록한 영어교실
▲ 여성교실해님방 여성교실 ⓒ 해님공부방
나중에 그 이유를 우리 옆집에 사시는 아주머니 이야기를 통해 가늠할 수 있었다. 그분은 한글을 모르시는데, 해님방에 한글 배우러 가시라 말씀드렸더니, 너무 가까운 곳에 한글을 배우러 가면 본인이 까막눈인 것이 동네에 다 알려져서 창피하니까 좀 떨어진 다른 마을에서 한글 공부하면 갈 수 있겠다는 이야기였다. 아마 그런 이유로 먼 동네까지 와서 한글을 배우게 된 것일터.
나는 항상 낯선 모임에 처음 갈 때면 종종 주눅이 든다. 내가 제일 못 할 것 같고, 내가 제일 바보짓 할 것 같고. 나는 나의 이런 면을 열등감이라 불렀다. 처음부터 영어를 빡세게 배우지는 않았다. 선생님이 우리들의 살아온 이야기와 현재 살고 있는 생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잘 이끌어내 주셨기에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소중하고 행복했던 6개월
▲ 박순분해님방 여성교실을 다녔던 박순분과 십정동 ⓒ 해님공부방
그래도 6개월 간의 시간이 완전 허투루 흐르지는 않았는지 어디 길거리 영어 간판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때려 맞춰서라도 읽어 보려고 했다. 유명한 브랜드 이름을 쓰라면 못써도 읽을 줄은 알게 되었다.
6개월이 지나서 졸업을 하게 됐다. 좀 더 열심히 배우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매주 두 번씩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부추기며 네가 더 잘한다고 하면서 지내온 영어반 엄마들. 영어를 엄청 잘 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배우는 과정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행복했다. 같이 깔깔대며 웃기도 많이 웃었다.
그때 그 시절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나이 들어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박순분은 해님여성회 회원이었다. 현재 해님여성회는 자수정(자매들 수다 재밌다)모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