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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전 신해철의 말, '넥스트' 앨범 든 이태원 유족은 울먹였다

[참사 2주기 기획] 1992년 뉴키즈·2022년 이태원, '피해자 탓' 데칼코마니... "우리 잘못 아니란 것 밝히는 날 올 겁니다"

등록|2024.10.29 18:19 수정|2024.10.29 19:30
1992년, 그리고 2022년. 청년들이 압사했고 우리 사회는 피해자를 탓했다. 다행히 그 잔인한 편견을 뚫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32년 전 "우리 잘못이 아니"라며 "다시 춤출 날"을 꿈꿨던 가수 신해철. 10년 전 세상을 떠난 신해철에게 답을 들을 순 없지만, 그라면 꼭 답해줬을 것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 탓일까요?"[편집자말]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권수정씨 외삼촌 김진성씨가 지난 25일 유가족 일일카페 '계절의 목소리'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신해철이 속한 록밴드 그룹 넥스트(N.EX.T)의 앨범 CD를 들어보였다. ⓒ 권우성


32년 전 겨울이었다. 김진성(49)씨는 열일곱 고등학생이었다. 지금도 1992년 2월 17일 뉴스가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다.

"온갖 꼴불견 추태가 계속되더니 오늘밤 공연에는 드디어 사고까지 났습니다."
"10대 소녀관객들이 한꺼번에 무대 쪽으로 몰리는 바람에 수백명이 깔리면서 부상당하거나 실신해서 공연이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우리 딸들을 우리 여동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합니다만 과연 어디까지 이해를 해야할지."

"꼴불견 추태"와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이 대부분 언론에 도배됐다. 미국의 유명한 팝 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 공연 도중 발생한 압사 소식을 언론은 '피해자들 때문'이란 관점으로 전했다. 지난 25일 만난 진성씨는 그때를 생생히 떠올렸다.

"며칠 간 계속 TV에 뉴스가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집에 들아가면 부모님이 늘 뉴스를 틀어놨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피해자 탓만 하네요"

▲ 미국의 팝 가수 '뉴키즈 온 더 블럭' 내한 공연에서 일어난 압사 참사를 '10대 광란 불상사'라고 보도한 1992년 2월 17일 MBC 보도. ⓒ MBC


실제 사고의 이유는 관객들의 "꼴불견 추태"가 아니었다. 당시 공연 주최 측은 문화부에 관객 수를 1만 2000명으로 신고했으나 그보다 3000명 이상 많은 관객을 입장시켰다. 무대 앞쪽 마룻바닥까지 임시번호를 붙이고 입장권을 판매했다. 안전요원 또한 일당 1만 원에 동원된 학생들이었다. 이 공연에서 고등학생이 1명 압사하고, 50여 명이 다쳤다. 진성씨 역시 사망한 고등학생과 동갑이었다.

"당시에 '돌아가신 분이 되게 억울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저도 비슷한 나이였잖아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슬픔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사고의 원인은 따로 있었음에도, 언론은 꾸준히 "꼴불견 추태"의 관점을 유지했다. 저명인사들 또한 말로써 그러한 보도에 힘을 실었다.

▲ <조선일보>는 미국의 팝 가수 '뉴키즈 온 더 블럭' 내한 공연에서 일어난 압사 참사의 원인을 "버릇없는 청소년 우상", "난장판 벌이는 청중들도 문제" 등으로 1992년 2월 18일 보도했다. ⓒ 조선일보


진성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피해자 탓만 하네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32년이 지난 지금 진성씨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입는 보라색 조끼를 입고 있다. 그는 직접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빨면서 업어 키운" 조카 권수정씨를 2년 전 이태원 골목에서 잃었다. '뉴키즈 참사' 후 딱 30년 만이었다.

"뉴키즈 참사도, 이태원 참사도 청년들이 노래를 들으러, 길을 걸으러 간 것뿐이잖아요. 왜 놀러 갔냐고, 이태원에 왜 갔냐고, 뉴키즈 공연에 왜 갔냐고 묻는 게 잘못된 거죠."

뉴키즈 참사, 그리고 30년 후 이태원 참사에서도 피해자를 탓했던 대한민국. 진성씨는 눈물을 삼켰다.

신해철이 남긴 아직도 유효한 말

▲ 신해철은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 MBC


록밴드 넥스트(N.EX.T)의 신해철은 1992년 뉴키즈 참사 후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해외 문물에 타락한 소녀들' 탓을 이어가던 당시 우리 사회는 애먼 신해철까지 사고 원인으로 끌어들였다. 언론은 "(청소년들이) 외국에 대한 동경만이 아니고 신해철 등 국내 가수에게도 열광한다"라면서 신해철을 겨냥했다.

외국 가수들의 내한공연이 잇따라 취소됐다. 그럼에도 신해철은 공연을 취소하지 않고 그해 8월 무대에 섰다. 맘껏 뛸 수 없었던 관객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더 넓은 공연장에서 우리 모두 다 같이 일어나서 춤출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뉴키즈 사건의 원인이 우리가 아니었다는 걸 밝히는 날이 올 겁니다."

신해철은 2014년 10월 27일 숨졌다. 1992년 뉴키즈 참사를 경험한 그에게 2022년 이태원 참사를 묻고 싶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신해철 팬클럽 '철기군'의 운영자는 그의 기일을 이틀 앞둔, 이태원 참사를 나흘 앞둔 지난 25일 <오마이뉴스>에 이렇게 전했다.

"해철님은 공연을 '노는 것'이 아닌 '문화의 향유'라고 생각했어요. 관객들, 그러니까 문화를 향유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료로 생각했죠. (때문에 뉴키즈 참사 때와 같은) 그런 (문화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뚫고 나가려고 했어요. 뉴키즈 온 더 블록을 보러 갔던 사람도, 이태원에 핼러윈을 즐기러 갔던 사람도, 신해철에게는 다 관객이고 동료죠. 그 동료들이 안전 관리 미비로 인해 참사를 당했는데, '놀다가 죽은 게 자랑이냐'는 식의 말이 나오면 많이 슬퍼했을 것 같아요."

고 신해철 떠나 보내는 마지막 미사신해철의 영결식이 2014년 10월 31일 오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나마 이런 글이 1992년 뉴키즈 참사 8일 후 신문에 실렸다.

"모든 신문들이 이번 사태를 규정하는 데 공통적으로 동원한 용어는 '광란'이었다. 광란, 괴성, 통곡, 광기, 울부짖음, 심지어 '발광'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한 10대들의 행위에 대한 또 다른 사회집단들의 극도로 흥분한 반응을 지켜볼 수 있었으나 그 어디에서도 어린 세대에 대한 진지한 관심, 따뜻한 애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 1992년 2월 25일 <한겨레>

이 글을 쓴 이광호 당시 언론노련 정책기획실장(현 레디앙 공동대표)은 지난 25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 가부장적 '꼰대 문화'가 견고하다. '놀러 가서 죽은 것일 뿐'이라는 시각은 어른 모두가 거쳐 온 청년 시절을 이해하지 않는 꼰대들의 잔인하고 폐쇄적인 사고"라고 탄식했다.

유족은 다시 '민물장어의 꿈' 들었다

▲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권수정씨 외삼촌 김진성씨를 지난 25일 유가족 일일카페 '계절의 목소리'에서 만났다. 고등학생 때부터 신해철을 좋아했다는 진성씨는 그가 속한 록밴드 그룹 넥스트(N.EX.T)의 앨범을 내보였다. ⓒ 권우성


이태원 참사 유족 진성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신해철을 좋아했다. 민감한 주제에도 당당히 의견을 펼치던 논객으로서의 모습도 진성씨에겐 선명하다.

그는 신해철의 노래 중 <민물장어의 꿈>과 <날아라 병아리>를 좋아한다. 두 곡 모두에서 "힘이 들 때 위로를 전하는 느낌"을 받는다. 진성씨는 신해철이 리더로 있던 그룹 넥스트(N.EX.T)의 앨범을 아직도 갖고 있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 하늘을 날고 있을까 /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 올해도 꽃은 피는지 - <날아라 병아리> 중
성난 파도 아래 깊이 /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 흐느껴 울고 웃다가 /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 <민물장어의 꿈> 중

청년 시절의 진성씨를 여러 번 위로했을 노래지만, 그는 "스스로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태원 참사 이후 노래를 즐겨 듣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던 진성씨는 신해철 10주기와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앞두고 "두 노래를 다시 들었다"고 했다. 그는 "만약 신해철씨가 이태원 참사와 마주했다면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청년들을 욕하지 말라'는 말을 했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신해철씨는 저에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노랫말로 해준 사람'이에요. <민물장어의 꿈>이라는 노래에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느껴지거든요. 조카도 그렇고 이태원 참사로 떠난 아이들 모두 최선을 다해 정말 열심히 살았던 친구들이잖아요."

▲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권수정씨 외삼촌 김진성씨가 지난 25일 유가족 일일카페 '계절의 목소리'에서 시민들이 붙인 추모글을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진성씨는 "가족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 애쓴 아이"였던 조카 수정씨를 떠올렸다. 수정씨는 특수교육학과를 나와 임용고시를 한 번에 붙고 2022년부터 교사 일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학 시절 얼굴에 열꽃을 피우며 공부만 했던 조카의 모습이 삼촌에겐 아직 선하다. 삼촌은 "수정이가 임용고시에서 한 번만 떨어졌다면 계속 공부하느라 그날 이태원에 안 갔을까"라는 상상도 몇 번이나 했다.

교사 일을 시작한 수정씨는 "나도 이제 다 컸어. 돈도 벌어"라며 삼촌에게 용돈을 건네기도 했다. 삼촌이 야근하는 날이면 "힘내"라며 커피 기프티콘도 보냈다. 진성씨는 아직 조카가 보낸 기프티콘을 사용하지 못했다.

"계속 기프티콘 유효기간을 연장하고 있어요. 수정이에게 '(이태원 진상규명) 결과가 이렇게 나왔어!'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나 사 먹지 않을까요? 저는 정말 이 험한 세상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 아이들이 존중받고, 존경받으면 좋겠어요."

진성씨는 다시 신해철을 떠올렸다.

"신해철씨는 이태원 참사로 아이들 잃은 부모님들과 또래이기도 해요. 아마 이태원 참사 부모님들의 마음으로 이 참사를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가 생전에 말했듯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청년들을 욕하지 말라'고요. '미래는 어른들이 만들어줘야 한다'고요."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천주교 추모미사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관으로 2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프란치스코 회관 대성당에서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미사가 열리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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