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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강동구를 기대하며

[이희동의 5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보는 기초의원의 시각

등록|2024.10.29 11:09 수정|2024.10.29 11:09
기초단체 의원은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지만, 기초지자체가 생각보다 많은 예산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만큼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본 시리즈에서는 서울시 강동구를 중심으로 구의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자치구의 정책들이 중앙정부와 광역시 정책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국정철학과 기조가 어떻게 지역에서 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구의원이 어떻게 견제하고 지지할 수 있는지 알리고자 합니다.[기자말]
새롭게 등장한 단골 멘트

가을은 행사의 계절입니다. 뜨거운 여름을 지내고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지역에서는 많은 단체들이 다양한 행사들을 개최하는데요, 요즘 그 행사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예전의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느니 하는 상투적인 언사 대신 새롭게 등장한 단골 멘트가 있습니다.

네. 바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입니다.

▲ 한강이 처절한 한국 현대사를 다룬 두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 표지. ⓒ 문학동네, 창비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서와 관련된 행사에서는 책을 많이 읽어 또 다른 노벨상을 타보자는 격려도 있고요, 한씨 성을 가진 분이 행사 주최 측에 있으면 청주 한씨 집안의 경사라며 숟가락을 보태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기에 앞서 묻고 싶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에 노벨상을 받게 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진짜 읽어보셨나요?

작가 한강은 노벨상을 받은 직후 기자회견을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로 세계 곳곳이 전쟁 중인 상황을 언급했다고 하는데요, 굳이 기자회견까지 거절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지만 뒤늦게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에 드러난 그 끔찍한 아픔의 역사를 공감하게 되면 그것을 계기로 축하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년이 온다>는 5.18에 관련된 소설입니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1인칭, 2인칭, 3인칭을 오가며 서술함으로써 독자를 역사의 현장 한가운데로 소환합니다. 역사 교과서에서 보던 광주민주화항쟁이라는 화석화된 단어에 피비린내를 첨가하고, 영화에서 보던 끔찍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기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한 방에 무너뜨립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5.18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의 아픔이며, 우리 모두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입니다. 무려 40년이 지난 역사적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 자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쯤 되면 보수언론들과 인사들이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축하하되, 왜 노벨상 수상작은 언급하지 않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지우고, 왜곡하고 싶어 했던 5.18의 진실이 노벨상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고 각인된다고 하니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단순히 대한민국 문학, 문화계의 쾌거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뿌리가 되었던 5.18 광주를 세계가 새롭게 인지한 것이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는 이들이 5.18을 매개로 우리에게 내미는 연대의 손짓이기도 합니다.

노벨상과 강동구

▲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이희동 의원 ⓒ 강동구의회


이런 맥락에서 본 의원은 우리 강동구의 현실을 바라보았습니다. 단순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만 할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자치구가 할 일은 무엇이며, 기초의원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록 시대의 아픔이지만 문화발전의 거름이 될 수 있는 사건들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림원이 노벨상 선정 이유에서 밝혔듯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는 행위는 공동체 유지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나 제주 4.3, 광주 5.18, 최근에는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등이 하나의 꼭지로서 우리는 이를 기억하고 소환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강동구는 이런 움직임에 소극적입니다. 지난 7월에 집행부가 거절했던 평화의 소녀상 5주년 행사가 대표적 예입니다.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231분을 추모하기 위해 구청 앞마당과 대형 스크린을 쓰자는 제안도 거절하는 강동구. 부디 앞으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강동구는 국가 유공자 지원과 관련하여 본예산 기준 2019년 약 20억 원에서 2024년 약 56억 원으로 매년 많은 예산을 증액했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위한 당연한 예의이지만 문제는 그 예산이 6.25 참전 용사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참전 용사들이 대한민국 수호에 이바지했다면, 5.18 유가족 등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분들입니다. 집행부는 국가 유공자의 개념을 확대하여 좀 더 다양한 지원을 고민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으로 인해 최근 활기를 띠고 있는 도서출판사업을 지적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강의 책을 구하기 위해 지역의 서점으로 향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현재 지역의 서점들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올해만 해도 3월 강동구의 한 서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닙니다. 지역 문화의 교류처이자 보루이며, 노벨상을 잉태하는 산실입니다. 집행부가 지역 서점을 활성화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앞으로 들어설 둔촌도서관이나 숲속도서관, 기존의 작은 도서관과 관련하여 협업도 가능할 것이며, 지역에서 덤핑 등을 통해 시장을 교란하는 이들에 대한 단속도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떠올린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한강 작가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이 발언을 듣는 분들에게 <소년이 온다>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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