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과 달라 몰입 어려운 '정년이', 이 배역은 달랐다
[리뷰] tvN <정년이>, 배우 말고 연출자의 길을 택한 '도앵'
안타깝게도 이번 생에 당신을 기다리는 '무대' 같은 건 없다. 주어진 배역은 엑스트라, 솔직히 이조차 어려울 수 있다. 조명 끄트머리에서 관객들이 보내는 박수에 가슴이 저릿하지만, 당신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행복할 수 있겠는가. 행복하다 못해 기꺼워할 수 있는가. 누군가는 단숨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tvN <정년이>는 최고의 국극배우에 도전하는 '정년이(김태리 분)'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 찬란한 성장기를 담았다. 원작 웹툰 기반 작품이지만, 다른 점이 많다.
정년이의 1호 팬이자 주연 캐릭터 '권부용'은 사라졌고, 예리하게 사회를 꿰뚫던 '고사장'도 없다. 정년이와 중요한 관계를 맺던 이들이 사라지니 드라마 속 정년이는 다소 얄팍한 감이 있다. 사실 정년이가 겪는 수난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최고의 국극배우가 된다는 결과가 예견되는 탓일까. 게다가 주인공인 만큼 모든 재능을 갖췄다.
그래서 이 캐릭터가 눈에 걸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무대에 설 수 없는 사람, 그럼에도 행복한 사람. 모두 인생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며 헛바람 부는 사회에 '백도앵(이세영 분)'이 필요한 이유다.
너는 '주인공'이 될 운명이 아니야
도앵은 매란국극단 단원이다. 하지만 입지 있는 인물은 아니다. 문옥경처럼 성공한 국극 배우가 되어 '황태자'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윤정년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유망주도 아니다. 극단에서 도앵의 존재는 열심히 하지만, 잘한다고 할 수는 없는 보통내기다. 그래도 끝내주게 소리 낼 수 있는 건 남자 악역인 '가다끼' 역할이었다.
하지만 <자명고> 오디션에서 도앵은 '가다끼' 역할에 떨어진다. 새로운 도전자이자 유망주인 영서에 맥없이 밀렸다. 실의에 빠진 도앵에게 단장이 찾아갔다. 슬픔을 달래주기는커녕, 오히려 "잘된 일"이라 말한다. 단장은 그가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어도 또 다른 재능이 있다고 짚었다. 그 재능은 다름아닌 연출이었다. 자신이 맡지 않아도 다른 캐릭터의 대사와 행동을 분석하는 건 도앵만이 유일했다.
그렇게 도앵은 무대 위에서 내려와, 무대 뒤로 향했다. 연출자가 된 도앵은 한결 자연스럽다. 날카롭게 무대를 분석하고, 배우들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건넸다. 극의 흐름이 끊기는 순간을 파악해 그에 맞는 해결책도 제시했다. 또한 '군졸1'을 맡은 정년에게 "남자 역할을 연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조언을 하여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국극 배우들의 성장기를 담은 만큼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빛난다. 아름답게 짜인 무대의 일부가 되어 영웅담을 재현하는 모습은 심장을 쥐어 삼키지만, 뛰게 하진 않는다. 달나라 이야기처럼 화려한 캐릭터들의 삶은 찬란해서, 매일 같이 평범함과 사투하는 이들에게 맞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이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백도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주인공도 '촛대'는 못하니까
이름부터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년이도 잠시 주인공 역할에서 빗겨갔다. 그는 <자명고> 오디션에서 '군졸1'을 지원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캐릭터라서 마음에 들었다는 게 이유였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쳤다. '군졸1'은 주인공이 아니다. 엑스트라인 촛대다. 마음껏 소리를 부르거나 감정을 폭발해 관객을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정년이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옥경의 말에 따르면 "연기를 너무 잘한" 죄다. 역할에 몰입해서 지나친 연기를 펼쳤고 주변 배우들은 물론, 관객까지 심하게 동화시켰다. 결국 단장은 무대를 내려온 정년이에게 "착각하지 마라. 관객들은 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너무 튀어 버리면 전체 흐름이 깨진다"고 조언한다.
그럼에도 정년은 제 소리를 뽐냈고, 단장은 그런 그에게 "관객들이 극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촛대인 너에게만 집중했다"며 비수를 꽂았다. 드라마에서 정년은 완벽한 '먼치킨'이었다. 타고난 재능을 꽃피웠고, 센스는 갈고 닦으며 TV에서도, 무대에서도 사람들을 휘어잡은 그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촛대의 자질을 길러야 하는 시점이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지탱하고, 극의 흐름을 견인해야 하는 때 그는 넘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무엇을 맡든 태생이 주인공인 정년이의 운명을 암시하는 장면이지만, 동시에 주인공도 엑스트라 같은 순간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덧댔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무대를 빼앗긴다. 도앵처럼 재능이 없어서거나, 혹은 정년이처럼 자발적으로 헌납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주인공이 아닌 무대에서 촛대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출자가 되어 묵묵히 백스테이지를 지킨 도앵은 최선을 다했지만, '주인공' 기질을 저버리지 못한 정년이는 그러지 않았다. 세상에 주인공보다 엑스트라가 잘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 평범함을 착실히 수행하는 일이 아닐까.
착실하게 평범함을 해내는 건 화려하게 비범함을 수행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도앵과 정년이 소리가 아닌 삶으로서 증명했다. 촛대 배역에서 실패한 정년이는 다시 주인공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새로운 곳으로 향할까. 아직 <정년이>의 몸짓은 끝나지 않았다.
tvN <정년이>는 최고의 국극배우에 도전하는 '정년이(김태리 분)'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 찬란한 성장기를 담았다. 원작 웹툰 기반 작품이지만, 다른 점이 많다.
그래서 이 캐릭터가 눈에 걸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무대에 설 수 없는 사람, 그럼에도 행복한 사람. 모두 인생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며 헛바람 부는 사회에 '백도앵(이세영 분)'이 필요한 이유다.
너는 '주인공'이 될 운명이 아니야
▲ <정년이> 속 '도앵'의 모습 ⓒ tvN
도앵은 매란국극단 단원이다. 하지만 입지 있는 인물은 아니다. 문옥경처럼 성공한 국극 배우가 되어 '황태자'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고, 윤정년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유망주도 아니다. 극단에서 도앵의 존재는 열심히 하지만, 잘한다고 할 수는 없는 보통내기다. 그래도 끝내주게 소리 낼 수 있는 건 남자 악역인 '가다끼' 역할이었다.
하지만 <자명고> 오디션에서 도앵은 '가다끼' 역할에 떨어진다. 새로운 도전자이자 유망주인 영서에 맥없이 밀렸다. 실의에 빠진 도앵에게 단장이 찾아갔다. 슬픔을 달래주기는커녕, 오히려 "잘된 일"이라 말한다. 단장은 그가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어도 또 다른 재능이 있다고 짚었다. 그 재능은 다름아닌 연출이었다. 자신이 맡지 않아도 다른 캐릭터의 대사와 행동을 분석하는 건 도앵만이 유일했다.
그렇게 도앵은 무대 위에서 내려와, 무대 뒤로 향했다. 연출자가 된 도앵은 한결 자연스럽다. 날카롭게 무대를 분석하고, 배우들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건넸다. 극의 흐름이 끊기는 순간을 파악해 그에 맞는 해결책도 제시했다. 또한 '군졸1'을 맡은 정년에게 "남자 역할을 연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조언을 하여 그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국극 배우들의 성장기를 담은 만큼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빛난다. 아름답게 짜인 무대의 일부가 되어 영웅담을 재현하는 모습은 심장을 쥐어 삼키지만, 뛰게 하진 않는다. 달나라 이야기처럼 화려한 캐릭터들의 삶은 찬란해서, 매일 같이 평범함과 사투하는 이들에게 맞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이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백도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주인공도 '촛대'는 못하니까
▲ '군졸1'을 연기하는 '정년' ⓒ tvN
이름부터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년이도 잠시 주인공 역할에서 빗겨갔다. 그는 <자명고> 오디션에서 '군졸1'을 지원했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캐릭터라서 마음에 들었다는 게 이유였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쳤다. '군졸1'은 주인공이 아니다. 엑스트라인 촛대다. 마음껏 소리를 부르거나 감정을 폭발해 관객을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정년이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옥경의 말에 따르면 "연기를 너무 잘한" 죄다. 역할에 몰입해서 지나친 연기를 펼쳤고 주변 배우들은 물론, 관객까지 심하게 동화시켰다. 결국 단장은 무대를 내려온 정년이에게 "착각하지 마라. 관객들은 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너무 튀어 버리면 전체 흐름이 깨진다"고 조언한다.
그럼에도 정년은 제 소리를 뽐냈고, 단장은 그런 그에게 "관객들이 극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촛대인 너에게만 집중했다"며 비수를 꽂았다. 드라마에서 정년은 완벽한 '먼치킨'이었다. 타고난 재능을 꽃피웠고, 센스는 갈고 닦으며 TV에서도, 무대에서도 사람들을 휘어잡은 그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촛대의 자질을 길러야 하는 시점이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지탱하고, 극의 흐름을 견인해야 하는 때 그는 넘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무엇을 맡든 태생이 주인공인 정년이의 운명을 암시하는 장면이지만, 동시에 주인공도 엑스트라 같은 순간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덧댔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무대를 빼앗긴다. 도앵처럼 재능이 없어서거나, 혹은 정년이처럼 자발적으로 헌납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주인공이 아닌 무대에서 촛대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연출자가 되어 묵묵히 백스테이지를 지킨 도앵은 최선을 다했지만, '주인공' 기질을 저버리지 못한 정년이는 그러지 않았다. 세상에 주인공보다 엑스트라가 잘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 평범함을 착실히 수행하는 일이 아닐까.
착실하게 평범함을 해내는 건 화려하게 비범함을 수행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도앵과 정년이 소리가 아닌 삶으로서 증명했다. 촛대 배역에서 실패한 정년이는 다시 주인공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새로운 곳으로 향할까. 아직 <정년이>의 몸짓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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