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당일 뇌출혈로 쓰러진 아빠, 이 결혼 가능할까
[넘버링 무비 404] 영화 <결혼, 하겠나?>
▲ 영화 <결혼, 하겠나?> 스틸컷 ⓒ (주)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타이틀은 대체로 해당 작품이 갖고 있는 주요 소재가 직관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이름 지어져 붙여진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관객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까닭도 있다. 가령, 아무런 정보도 없는 관객이라고 해도 <베테랑 2>의 타이틀을 보면 이 작품이 <베테랑>의 후속작임을 알 수 있고, <보통의 가족>을 보면 가족의 서사가 담긴 내용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추측해 낼 수 있게 된다. 이 작품 <결혼, 하겠나?>의 타이틀 또한 상당히 직접적인 편에 속한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며, 그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쉽게 예측해 볼 수 있다.
02.
"이제 상견례만 하면 결혼만 남는다 아이가."
영화 <결혼, 하겠나?>는 마땅한 수입도 없이 사랑 하나로 결혼을 추진하는 두 사람을 따르며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결혼의 시작점에 이 시대가 가진 현실적인 문제와 어려움을 가져다 놓으며 그 바탕이 되는 사랑과 믿음의 가치를 조금씩 흔들기 시작하면서다. 심지어 그 문제의 원인이 당사자인 두 사람의 행동이나 과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족의 일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자신을 품어왔던 가족과 이제 자신이 품어야 할 가족, 양쪽 모두를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은 덤이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결혼을 결심한 두 사람 앞에 지금까지의 문제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큰 사고가 벌어지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나아간다. 상견례 당일, 아버지 철구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일이다. 이 사건은 그가 그 흔한 보험은 물론 건강보험까지 하나 없는 신용불량자라는 불편한 사실을 모두 앞에 떠오르게 한다. 아내인 미자(차미경 분)와는 이혼을 한 상황에서 이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건 아들인 선우뿐이다. 이제 상견례만 잘 마치고 나면 결혼만 남을 줄 알았던 미래에 예상하지 못한,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진 셈이다.
수술비만 3천5백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버지 철구를 기초수급자로 만드는 일이다. 기초수급자로 지정되기만 하면 병원비 전액을 국가에서 부담해 주는 것은 물론 이후 그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선우가 떠안아야 할 몫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기초수급자 등록을 위해서는 실거주지가 필요한데, 철구는 그동안 실거주지조차 하나 없이 살아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주소지조차 없이 선우의 할머니 집에서 살아왔는데 이 집을 사는데 많은 돈을 쓴 삼촌은 상속 문제를 이유로 앞을 가로막는다.
▲ 영화 <결혼, 하겠나?> 스틸컷 ⓒ (주)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03.
"뭘 알아서 하는데, 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영화가 나아가는 동안 이야기 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관계를 연결하고 분리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관계의 형태와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낸다는 점이 흥미롭다. 주어진 문제 앞에서 협력하고 함께 나아갈 것으로 기대되는 관계는 갈등을 일으키며 반목하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관계로부터 다음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 식의 구조다. 삼촌 철용(박성근 분)과 할머니(김미향 분)가 선우와 철구의 어려움을 대하는 모습이나 이미 이혼한 상태인 미자가 전남편 철구의 병간호를 하는 모습이 여기에 속한다. 어떤 관계의 이해는 우리 현실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극의 현실성을 일으키는 역할도 한다.
선우와 우정의 관계 변화도 그렇다. 아버지 철구의 일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선우가 동분서주하는 동안 우정은 철저히 혼자가 된다. 믿음과 사랑으로 결혼을 결심한 두 사람이지만 현재와 같은 어려움은 처음 겪는 상황이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선우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 카페 사장인 태용(허준석 분)과의 관계가 잠시 부각되는 것 역시 그래서다. 선우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이 될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결혼이 모든 것을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확실한 관계의 온점을 찍지 못했다는 게 두 사람 사이의 틈이랄까. 어느 쪽에서도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눈이 돌아간 선우는 우정이 홀로 붙들고 서 있던 그 틈마저 망가뜨리고 만다.
앞서 극에서 표현되고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해 '문제'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영화가 말하는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도의적으로 기대되는 책임과 의무의 영역에 놓인 관계와 자신의 현실과 안정을 고려한 관계 사이의 존재다. 극 중 어떤 인물은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한 명확한 행동을 – 심지어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선택이라고 해도 –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철구의 상황에 대해 똑바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난다며 아들을 깨우치던 엄마 미자도 마지막에는 남편의 곁을 온전히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고, 선우가 착하고 바른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아픈 사람을 데리고 사는 건 지옥이라던 엄마의 말에도 쉽게 그를 버리지 못하던 우정도 그렇다.
▲ 영화 <결혼, 하겠나?> 스틸컷 ⓒ (주)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04.
전체적으로 균형감 있게 잘 완성된 이 작품에도 아쉬움은 있다. 철구라는 인물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영화는 해당 인물을 특히 초, 중반부에서 지나치게 희화화한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인지는 알 것도 같다. 전체적으로 무거울 수밖에 없는 소재를 중심에 두고 있고, 후반부를 넘어서며 전체적으로 톤이 낮아질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배치되기 때문에 신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했을 것이다. 결혼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무겁게 그려내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의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인물이 가진 배경이나 영화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들을 고려하면, 지금 인물을 이용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직접 그려내지 않더라도 상황적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하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지점의 문제만 방식적으로 조금 더 세련되게 표현했다면 나는 이 작품을 오래 두고 꺼내봤을 것이다.
05.
이 작품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마지막 그림자마저 남기며 끝까지 현실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물론 후반부의 일부 신을 생각하면 감정으로 밀어붙이는 부분 또한 일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야기를 매듭짓기 위해 필요했던 감정의 갈무리가 그리 나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적한 현실의 문제 속에서 그동안 만들어온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만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일.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한 두 사람의 약속. 영화 <결혼, 하겠나?>의 가장 깊은 곳에는 그런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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