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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송이 국화 향, 놓치면 1년 더 기다려야 합니다

가을 익어가는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11월 3일까지... 국화향에 취해보세요

등록|2024.10.29 11:59 수정|2024.10.29 14:01

▲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 김종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왔던 가을이 익어갑니다. 살결을 스쳐 지나가는 청량한 마산 바닷바람에 국화 향이 은은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국화를 가장 먼저 상업 재배하고 일본 수출길도 열었던 마산에서 대한민국 최대 국화 축제가 보내는 초대 편지에 며칠 전부터 설렜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10월 26일~11월3일)가 열리는 마산3·15해양누리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축제가 열리는 마산3·15해양누리공원과 합포수변공원은 이어져 있습니다.

공원 중심 광장 축제 주무대에는 햇살이 듭니다. 서항보도교로 향합니다. 지난해 국화 축제 사진 공모전 입상작과 지역 사진가들의 사진전들이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습니다.

사진 속 풍광과 너머의 풍경들이 겹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개운하게 합니다. 걸음걸음 햇살이 따사롭게 따라오고 전시 사진이 저만치에서 앞장섭니다.

기분이 좋게 다리를 왕복했습니다. 주위 아늑하고 넉넉한 풍경을 휴대전화기에 꾹꾹 눌러 담습니다.

사진전을 뒤로 하고 축제장으로 향하는데 다시금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는 게 있습니다.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문장'이라는 주제로 창원시립마산문학관 제57회 특별 기획전의 글귀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네요. 가을아! 반가워 그리고, 고마워"

가던 걸음 멈추게 하는 은은한 국화 향

▲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 김종신


바다가 부르는 국화 연가 소리가 들려옵니다. 국화축제장으로 들어서자, 이순신 장군께서 거북선과 함께 우리를 반깁니다. 올해 국화 축제에는 작년보다 6만 5천 본 많은 16만 5,000본(1억 2,000만 송이)의 국화들로 채워졌다고 합니다.

황룡이 터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듯 힘차게 저만치에서 용트림합니다. 금빛의 기운이 밀려옵니다.

아직 전부 활짝 피지는 못했지만, 국화 향의 은은한 향은 걸음걸음마다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꽃꽃 숨어라~' 분홍 국화꽃을 찾는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각종 먹거리와 볼거리 덕분에 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합니다.

▲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 김종신


현동에서 발굴한 배 모양 가야 토기 형상의 국화 작품이 잠시 시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인기척이 나서 뒤를 돌아보면 바람입니다. 국화 향입니다. 가을입니다.

잠시 고개를 들자, 새 무리 떼가 푸른 하늘을 미끄러지듯 날아갑니다. 덩달아 일상 속의 번뇌도 날려버립니다.

다시 아래로 고개를 내리자, 수탉이 아침이 왔노라 알려주려는 듯 한껏 볏을 세웁니다. 그저 평화롭습니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옵니다.

▲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 김종신


'창원의 집'으로 걸음을 옮기자, 대륜 대작 '천향 여심'이 환하게 웃으며 반깁니다. 1가지에서 나와 1,535송이의 꽃을 피우는 그 놀라움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가을이 내려온 초가지붕 아래 마루에 앉아 국화를 구경합니다. 창원의 집을 나오자 나란히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는 조형물이 정겹습니다. 덩달아 곁에서 세월을 낚습니다.

▲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 김종신


이들 조형물 곁은 지나자, 하늘에 하늘하늘 분홍과 노랑의 도넛 모양의 빛가림이 있는 쉼터 포유카페가 나옵니다.

숨을 고릅니다. 카페 내 거울에 묻습니다. "거울아~거울아~" 안 물어봐도 당연하게 거울은 지금 국화 속의 저를 격려할 듯합니다.

카페를 나오자 긴 국화 터널이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이끕니다. 국화 터널을 지나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사랑이 샘솟습니다. 부부와 연인, 친구.

터널을 나오자, 북극 에스키모 이들의 전통 얼음집은 이글루를 닮은 국화조형물이 나옵니다. 국화 이글루에 들어가자, 국화 향이 온몸의 묵은내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합니다.

▲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 김종신


걸음은 어느새 합포수변공원 끝자락에 이릅니다. 김주열 열사의 동상이 우리의 걸음을 세웁니다. 당시 열여섯 살의 김주열 열사는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숨졌습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이승만 정권을 몰아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6월 민주항쟁 당시의 사진전들이 청사초롱 아래에서 그때 그날로 향하게 합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지가 여기라고 일러주는 듯합니다.

축제 이름 두고 논란 있지만... 그럼에도 가봐야 할 이유

▲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 김종신


하지만 '마산 가고파 국화 축제'라는 이름은 김주열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는 않는지 곱씹어보게 합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가고파'는 마산 출신 시조시인 이은상(1903~1982)이 1932년 고향 마산을 그리며 지은 시입니다.

3·15의거기념사업회, 10·16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마산을 독재 부역 도시로 만들 것인가"라며 축제 이름에 '가고파'를 넣은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이은상은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전국 유세를 다니며 독재자 이승만을 찬양했고, 박정희 때는 유신 선포 지지 성명을 냈으며, 전두환 때는 전두환에게 찬사를 보내고 국정자문위원을 지냈다"며 '가고파 명칭 사용 불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란 때문에 마산국화축제 명칭은 축제 시작된 2000년부터 2004년까지는 '마산국화축제'라는 이름을 쓰다가, 2005년부터 2018년까지는 '마산가고파국화축제'라는 이름을 썼고, 2019년부터 2023년까지는 다시 '마산국화축제'라는 이름을 사용하다 올해부터 다시 마산가고파국화축제로 부르고 있습니다.

마산3·15해양누리공원 제1 주차장에서 여기까지는 15분 내외 정도의 거리입니다. 건강을 위해 평상시에는 시민들이 한달음에 운동 삼아 뛰거나 걷기도 합니다. 축제가 이 걸음을 늦춥니다.

김주열 열사 동상을 반환점 삼아 다시금 국화 속으로 향합니다. 지나왔던 길이지만 더욱 국화향은 진하게 다가옵니다.

▲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 김종신


거울 연못에서 숨을 골랐습니다. 한때 대한민국 7대 도시 중 하나였던 옛 마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는 '달의 창(月窓)'이 시선을 끕니다. 쌍용양회가 1977년 마산 중앙부도에 세운 높이 55m 규모의 시멘트 저장 사일로가 마산만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줍니다.

▲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 김종신


달의 창 너머로 바다가 품은 국화의 사랑 노래가 들려옵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넉넉하고 아늑한 풍광에 국화의 아름다운 자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국화의 바다에 번져오는 형형색색의 빛이 곱습니다. 뜨겁고 치열했던 여름의 결실을 국화와 함께 느긋하게 구경합니다. 국화들이 우리에게 '모든 게 잘될 거예요.'라고 위로를 건넵니다.

해를 닮은 아름다운 노란 물결.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한 국화의 바다입니다. 여기 국화를 보고 어찌어찌 인생을, 사랑을, 노래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요?

▲ 창원 마산가고파국화축제 ⓒ 김종신


국화 향은 가을 바다의 바람을 타고 우리 코끝으로 스며와 가슴 속에 파고듭니다. 향에 취해 결국 지역민들이 유기농으로 재배한 국화 꽃송이를 말려 만든 국화차를 시음했습니다.

혼자 마시기에 아쉬워 한 병을 샀습니다. 오늘 취한 국화 향을 우리 가족과 함께할 생각에 벌써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갑니다.

이번 마산가고파국화축제를 놓친다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돌아오는 내년 가을, 여기에 발자국 또 찍으러 와야겠습니다. 벌써 내년 마산가고파국화축제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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