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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중국 변방 역사"... 시진핑은 무엇을 꿈꾸는가

[김종성의 히,스토리] 중국 대학 교재 <중화민족공동체 개론>에 담겨 있는 동북공정 야욕

등록|2024.10.29 13:41 수정|2024.10.29 13:41
중국도 일본처럼 한국 역사를 끊임없이 공격한다. 동북공정 이슈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돌출한다. 이번에는 지난 3월 발간된 중국 대학 교재 <중화민족공동체 개론>이 고구려 역사를 중국 변방 역사로 왜곡되게 서술한 일이 논란이 되고 있다.

▲ <중화민족공동체 개론> 표지. ⓒ 고등교육출판사·민족출판사


<중화민족공동체 개론>은 중국 정부의 야심 찬 의욕이 담긴 교재다. 신화통신사가 운영하는 <신화망>의 지난 4월 5일 자 기사 '<중화민족공동체 개론>: 중화민족공동체학의 기초적 작품'은 이 교재가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비전을 반영했다고 평가한다.

기사는 "<중화민족공동체 개론>의 편찬은 중화민족공동체 이론체계의 구축에 대한 시진핑 총서기의 지시에 담긴 정신을 충분히 구현하고 있으며, 중화민족공동체의 기초적 문제와 이론체계·사료체계·언어체계 등에 대해 전면적 연구를 하고, 중화민족공동체학의 기본개념 및 기본이론에 대해 과학적 해석을 한다"라고 한 뒤 "중화민족공동체에 대한 최초의 통일적 교재"라고 평가했다.

중화민족공동체 구축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지향하는 이 책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지방 역사로 평가절하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 책은 '중국왕조는 중앙왕조이고 고구려는 변방정권'이라는 도식에 따라 고구려는 한자와 한문을 쓰고 중국의 책봉을 받은 변방 정권이라고 주장한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계략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고대 한국인들이 한자뿐 아니라 이두도 함께 사용한 일을 설명한다. 그는 "이두문은 조선 고대의 국문"이라며 "고대에는 국서(國書)·향서(鄕書)·가명(假名)이라 불리다가 고려시대부터 이두라고 불렀다"라고 말한다. 한자라는 알파벳의 음과 뜻을 빌린 이두는 고대 한국 특유의 문자다. 일본 가나문자가 한자와 비슷하다고 중국 문자로 분류되지 않는 것과 같다.

오늘날에는 국가들이 형식상 대등하게 교류하지만, 평등관념이 없었던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국력이 국제관계에 그대로 반영됐다. 국가 간의 관계는 약소국 군주가 강대국 군주의 승인을 받는 책봉 형식으로 체결됐다. 이것은 국내관계가 아닌 국제관계였다. 책봉이 있었다고 해서 국가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었다.

책봉을 중국만 해준 것도 아니었다. 중국 송나라(남송) 황제는 여진족 금나라에 사대하고 금나라 황제의 책봉을 받았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의 여진족 정치집단 상당수는 고려 및 조선 주상의 책봉을 받았다. 대마도주 역시 마찬가지다.

고구려가 이런 책봉을 받았다고 해서 중국의 변방정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조선의 책봉을 받은 여진족이 거주했던 오늘날의 만주 지방은 한국 변방정권의 역사 무대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또 고려의 책봉을 받던 여진족이 강성해진 뒤에 남송 황제를 책봉한 사실은 중국 내륙에 대한 한국의 역사적 연고권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책봉을 근거로 이웃나라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는 중국 역사공정은 이처럼 도리어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중국이 탐내는 고구려는 고려로도 많이 불렸다. 둘은 동일한 의미였다. 당나라 때 발행된 북중국 역사서인 <북사>는 고구려 역사를 '고구려 열전'이 아닌 '고려 열전'에서 다뤘다. 당나라 때 편찬된 수나라 역사서인 <수서> 역시 동일하다.

고려라는 표현은 중국인들이 조선왕조를 지칭할 때도 쓰였다. 일례로, 조선시대 시인인 허난설헌의 문집에 딸린 <허부인 난설헌집 부경란집>에 서평 형식의 발문을 1912년에 써준 중국인 오자혜는 "둘째 아들이 고려로부터 돌아와 <허씨양란집>을 꺼내 보여주며 발문을 지어달라고 말했다"라고 썼다. 일제에 의해 멸망한 조선왕조 혹은 대한제국을 고려로 지칭했던 것이다.

만주를 지배한 고구려가 고려로도 불렸고 이것이 한국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됐으며 918년에 왕건이 세운 고려왕조가 조선과 남북한으로 계승됐다는 점은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에 부담이 된다. 고구려와 왕건 고려 및 현대 한국의 관련성을 끊지 못하면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중국 역사학계는 고구려와 고려가 무관하다는 점을 입증하려 애쓰고 있다. 왕건 고려가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고 고구려 후예인 발해 유민들을 수용한 엄연한 역사가 있는데도 중국 역사학계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중화민족공동체 개론>은 "918년 왕건이 조선반도에 신라인을 주체로 고려왕조를 세웠는데, 약칭이 마찬가지로 고려이지만 이전의 고구려 정권 및 당나라 번속이던 발해국과는 전혀 계승관계가 없다"라고 거짓 주장을 한다. 고구려와 고려의 관계를 싹둑 잘라내는 방법으로 고구려와 고려의 연속성, 고구려와 현대 한국의 연속성을 단절시키려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동북공정이 상당히 식상한 주제가 됐지만,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는 이것이 국가통합에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위 <신화망> 기사는 <중화민족공동체 개론>의 특징 중 하나가 "정치성과 학문성의 통합"이라고 소개한다. 과거를 규명하는 학문적 필요성뿐 아니라 미래를 기획하는 정치적 목적에도 부합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공정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진핑의 '중국몽'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3년 8월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2023 브릭스 정상회의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동북공정의 '정치성'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야심 찬 비전과 맞닿는다. 그는 2022년 10월 16일 개막된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통해 '중국식 현대화'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식 현대화에 맞서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지향하겠다는 웅대한 포부의 표현이다.

지난해 <현대중국연구> 제24집 제4호에 실린 이민자 서울디지털대 교수의 논문 '중국식 현대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 방안'은 "중국식 현대화는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미국식 현대화에서 이탈하여 공산당의 영도에 따라 중국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라고 설명한다. 중국식 현대화는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의 꿈, 중국몽(中國夢)과도 맞닿는 비전이다.

이 중국식 현대화를 위한 수단 중 하나가 중화민족공동체다. 중화민족공동체를 튼실히 구축하고 이를 지렛대로 미국에 맞서 중국식 현대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중화민족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동원되는 것이 역사교육이다.

지난해 <국제정치연구> 제26집 제3호에 수록된 공봉진 동아대 강사의 논문 '중국식 현대화가 한국에 주는 함의'는 "중국 정부는 중국식 현대화를 완성하기 위해 애국주의교육과 중화민족 공동체의식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 정부는 중국식 현대화를 위한 수단인 중화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해 현재의 중국 거주자는 물론이고 중국 땅의 예전 거주자인 고구려인들까지 중화민족의 범주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식 현대화에 맞서 중국을 세계 최강으로 끌어올리는 일에 고구려인들까지 동원하는 셈이다.

역사교육 등을 통해 중화민족공동체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는 점은 2017년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추진된 데서도 확인된다. 2019년에 <역사교육연구> 제33호에 실린 권소연 한신대 강사의 논문 '중국 의무교육 교과서 <중국 역사> 근대사 서술 분석'은 "중국은 당의 18대 전국대표대회 이래 교재 편찬이 국가의 직권임을 명확히" 했다며 "이는 국가가 역사교육을 통제하고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통합·심사·실행하겠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화민족공동체 개론>이 대학 교재로 선택되고 '고구려 역사는 중국 역사'라는 주장이 재차 강조됐다. 미국식 현대화에 맞서는 중국식 현대화를 위해 고구려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고 있으므로, 한중관계 마찰 따위에는 개의치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강대국이 특정 국가를 상대로 역사전쟁을 벌이는 것은 대개는 그 나라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뜻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당서>의 개정판인 <신당서>에 따르면, 당태종은 수도 장안성의 원로들을 모아놓고 "요동(만주)은 옛날에 중국 땅이었다"고 연설했다. 그런 뒤 고구려 침공을 단행했다. 1980년대에 이라크에서는 '오스만제국(튀르키예) 시절에 쿠웨이트는 우리와 같은 행정구역이었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이 흐름은 1990년에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걸프전쟁으로 이어졌다.

한국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중국의 역사공정은 그것이 꼭 한반도 침공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행사의 명분으로 활용될 소지가 농후하다. 이와 더불어 미·중 패권경쟁의 차원에서도 고구려 역사가 활용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중국몽'이 동북공정에 담겨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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