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의원도 사실은 피해자다
[탈북, 환대와 냉대 사이⑤]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우리
▲ 태영호 의원 ⓒ YTN
지난 2020년 7월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한 장면이 인상 깊다. 당시 인사청문회 위원이었던 탈북 외교관 출신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이인영 후보자에게 사상전향을 했느냐는 질문을 했다. 이인영 후보자는 소위 운동권으로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 의장을 지낸 정치인이다. 그동안 보수정당 인사들에게 운동권은 소위 빨갱이로 취급돼 왔던 게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니다. 여전히 운동권 정치인들은 빨갱이 취급을 받고 있다.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우리, 이중성
태영호 의원은 자신의 '탈북' 정체성에 대해 한국 사회에 간첩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사상 전향을 했느냐고 공격하는 '가해자'로 앞장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다. 물론 보수당에서도 적극적인 정치인으로 활동하지 않았더라면 사상 검증의 가해자로 나설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탈북'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한국 사회에서 주목을 받는 정치를 하려면, 게다가 보수정당에서 정치를 하려면, 공천권자들과 사상 검증 공격을 환영하는 기독교 극우보수 집단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정치인 조명철, 지성호, 박충권 모두 민주당을 향해 "북한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쏟아내야 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공천을 준 보수당에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만 할 테니까. 좌파 공격 최전선에 앞장서야 하는 처지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 신분은 북한 체제를 목청 돋우며 공격하고 좌파를 공격할 때에만 진짜 대한민국 국민이 될 자격과 존재의 정당성을 증명 받게 되는 셈이다. 환대와 냉대의 갈림길에 선 존재들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나에게 '비전향 탈북자'라고 지칭한 사람도 이때의 사건이 아마 그를 '전향과 비전향'으로 북향민들을 구분하도록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북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공개적인 사상전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의심을 피하기 위한 반북 활동 강화
실제로 한국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향민들의 사상을 의심한다. 더 노골적으로는 간첩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북향민들은 이런 의심을 피하려고 공개적인 반북(反北) 활동을 하거나 독재 체제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입을 닫고 정치적 시민의 권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북향민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처지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대표적인 '좌파 탈북자'로 '빨갱이'로 낙인이 찍힌 지 오래다. 물론 나에겐 타격감이 제로다.
하지만 이 사안을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서 보면 태영호 의원도 사실은 피해자다. 그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전국을 돌아다니고 인사청문회에서 "나는 사상전향을 했는데, 당신도 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기까지 정치인 태영호가 내몰리는 심리적인 투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북향민들이 소신 발언을 하려면 이러한 관문에 기꺼이 부딪쳐야만 한다. 보수는 북향민을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지지하는 북향민들만 포용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진보는 북향민 정치인이 아직 나오질 않았으니 북향민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다소 억울한 비판을 당분간 받을 수밖에 없다.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덧붙이는 글
필자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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