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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에 몸도장 찍으며" 자벌레처럼 장군봉 기어오른 까닭

[환경새뜸] 27일, '세상과함께' 제5회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 시상식 열려... 200여명 참가해 오체투지

등록|2024.10.29 14:24 수정|2024.10.29 14:31

▲ 제5회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 시상식을 앞두고 오체투지하는 참가자들 ⓒ 이경호


가파른 언덕길을 자벌레처럼 기어오를 때에는 경건한 의식 같았다. 두 손을 합장한 채 삼보 걷고 한 번 엎드려 이마를 땅에 대고 절을 했다. 하얀 구절초가 깨알같이 박힌 산사 주변, 장군봉 중턱에 울려퍼진 대금과 가야금 가락... 발달장애 예술단의 율동이 이어졌다. 전날(26일) 밤 늦게까지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1박2일에 걸쳐 진행된 제5회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오체투지환경상) 시상식은 전국에서 고군분투해 온 환경운동가들에겐 위로였고, 응원이었다.

지난 27일 사단법인 '세상과함께'는 세종시 장군면 영평사 인근 금선대(세상과함께 센터)에서 오체투지환경상 시상식을 열었다. 올해 수상 단체를 비롯해 전국의 환경운동가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오마이TV 시상식 생중계 영상 보기 https://omn.kr/2aql1).

[삼보일배·오체투지] 200여명 참가자 "온 몸 던져 땅바닥에 몸도장을 찍습니다"

"우리가 슬프니 당신이 먼저 울었습니다/우리가 아프니 당신께서 먼저 목숨을 걸고 길을 나섰습니다/그 시작은 24년 전 낙동강 1300리 도보순례였지요/(중략)/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내려놓고/온 몸을 던져 땅바닥에 몸도장을 찍고/마음 도장을 찍습니다"

'지리산 시인'으로 불리는 이원규 시인은 27일 영평사 대웅보전 앞에서 '삼보일배오체투지 기원 낭송시'를 읊었다. 2003년 3월 28일부터 65일 동안 진행된 새만금 삼보일배 순례, 2008년 9월부터 124일간 진행된 4대강 오체투지 순례 때 길잡이를 하면서 마음속에 재어놨던 시인의 감성과 생명·평화·사람의 길을 찾아 나섰던 순례의 의미를 담은 시였다.

▲ 이원규 시인은 27일 영평사 대웅보전 앞에서 ‘삼보일배오체투지 기원 낭송시’를 읊은 뒤 불에 태우는 장면 ⓒ 이경호

▲ 27일 세종 영평사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출발하는 삼보일배오체투지 행렬 ⓒ 이경호


그 뒤, 징소리가 한 번 울리자 80여명의 참가자들이 일제히 세 걸음을 걷고 두 무릎과 팔꿈치, 이마를 땅에 댄 채 엎드린 뒤 합장한 손을 하늘로 향했다. 불교의 수행법인 오체투지였다. 80여명의 또 다른 참가자들이 허리를 숙여 삼보일배 반배를 하면서 뒤를 이었다. 어린이들은 맨 뒤에서 피켓을 들었다.

100m 이어진 행렬... 500m 거리 1시간 동안 삼보일배·오체투지

금선대로 향한 순례 행렬은 100여m이상 이어졌다.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지만, 20년 전, 불교·천주교·원불교·기독교 성직자인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가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시작한 삼보일배 행렬을 재현한 순례이다. 당시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삼보일배의 행렬은 서울 광화문까지 322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졌다.

또 오체투지는 1차·2차로 나뉘어져 2008년 9월부터 2009년 6월까지 124일간 진행됐다. 지리산 상악단에서 시작해 계룡산을 거쳐 임진각까지 355킬로미터를 자벌레처럼 기어갔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진행됐고 광우병파동, 용산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등의 문제가 대두됐는데, 남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반성하자는 취지의 순례 행렬이었다.

이날 산사 주변인 순례길 곳곳에 하얀 구절초가 만발했다. 삼보일배·오체투지 참가자들은 장군봉 중턱에 있는 금선대까지 500여 미터의 순례길을 1시간여에 걸쳐 자벌레처럼 올라갔다. 삼보일배·오체투지는 종교적 수행법이지만, 지금은 비폭력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정착됐다. 참가자들은 배를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명상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환경상 시상식]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사람의 길에 나서겠다"

▲ 지난 27일 세종 영평사 인근 금선대의 세상과함께센터에서 제5회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이 열리고 있다. ⓒ 김병기

▲ 세상과함께 이사장인 유연 스님이 시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경호


오체투지환경상 시상식은 이날 오후에 열렸다. 이 상을 주관한 사단법인 세상과함께(홈페이지 http://www.twtw.or.kr/)는 2015년에 창립해서 국내외의 빈곤층 지원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활동해왔다. 이들은 지난 2020년 '삼보일배오체투지 환경상'을 제정해 매년 전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환경운동가와 단체들을 대상으로 시상을 해왔고 올해로 5회 째를 맞았다.

시상식에서 유연 스님(세상과함께 이사장)은 "올 여름 지구는 온난화를 넘어서 가열시기에 도달했고, 우리는 모두 체감하지만 이를 책임지고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면서 "오늘 전국에서 애쓰시는 환경운동가분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조촐하게 장을 펼치지만 고맙기도 하고 미래의 후학들에게는 부끄럽게 여겨진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어 환성 스님(영평사 주지)은 "오늘 장군산 기상에 걸맞게 최고봉인 환경운동 장군들을 모신 자리는 복되고 거룩하다"면서 "지구가 혹독하게 몸살을 앓고 있는 시대인데, '일심청정(一心淸淨)하면 국토청정(國土淸淨)하고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고 하는 성현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고 축사를 했다.

5회 오체투지환경상, 12건의 개인·단체에 총 상금 1억8500만원 수여

▲ 제5회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 수상자들의 기념촬영 ⓒ 이경호

▲ 제5회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보철거시민행동의 기념촬영 ⓒ 이경호


제5회 오체투지환경상 심사위원회는 재심사 대상 33건을 포함해 총 90건의 개인과 단체를 심사했다. 세종보에서 200여일 가깝게 농성을 하면서 세종보 담수 계획 백지화와 물정책 정상화를 촉구해 온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고, 총 12건의 개인과 단체를 올해 환경상과 기금 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들에게 총 1억 8500만 원의 상금과 기금이 전달됐다.

관련 기사 : 세종보 장기농성 '보철거시민행동', 오체투지환경상 '대상' https://omn.kr/2a9wq

심사위원장인 판화가 이철수 화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공모에 참가한 대부분의 개인과 단체가 상을 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헌신적이고 열정적이었는데, 부득이하게 이번 시상 대상에서 제외된 개인과 단체들에 대해서도 척박한 환경운동의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한 데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세상과함께는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사람의 길을 걷는 '삼보일배 오체투지인'을 적극 지지하고 응원하며 함께 그 길에 나설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대상 수상 단체인 보철거시민행동을 대표해서 무대에 오른 문성호 공동대표(대전충남녹색연합 상임대표)는 "4월 29일 봄날에 천막을 치고, 열탕 같은 여름이 지나자마자 가을이 뚝 떨어진 오늘까지 182일째 금강에서 지내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금강을 마주보며 강을 굽이쳐 흐르게 하고, 강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는데 하루하루 강과 강의 생명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그들을 지키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지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욕심 많고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모질게 모욕당하고 약탈당하고도 묵묵히 흐르는 금강이 피워내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우리들은 보았습니다. 오늘의 수상 소식을 금강과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 그리고 한반도의 모든 강과 금강에서 만난 생명의 이름을 부르며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알락할미새야, 박새야, 수달아, 미호종개야, 흰수마자야, 미꾸라지야, 흰목물떼새야..."

시속 100km의 시대, 시속 500m로 기어간 시상식장

▲ 산돌 발달장애인 예술단인 <그랑>은 ‘독도는 우리땅’ ‘바위처럼’ 등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했다. ⓒ 이경호

▲ 세상과함께 센터에 전시된 삼보일배오체투지 당시에 사용됐던 옷들 ⓒ 이경호


이날 시상식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산돌 발달장애인 예술단인 <그랑>은 '독도는 우리땅' '바위처럼' 등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율동을 했다. 32살 자폐성장애인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를 불렀다. '자연의 시인'으로 불리는 박남준 시인은 시낭송을 했다. 대금 연주자인 오수아씨와 가온병창단의 연주가 단풍이 물든 금선대 주변에 울려퍼졌다. 보철거시민행동의 임도훈 상황실장도 기타를 들고 경과보고를 한 뒤 노래를 불렀다.

한편, 전날인 26일에도 영평사 삼명선원에서 '길_위의 삼보일배·오체투지' 출판기념회를 겸한 시상식 전야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20년 전 삼보일배·오체투지 묵언 순례를 했던 수경 수님도 참석했다. 삼보일배오체투지의 후유증으로 최근 양쪽 무릎을 수술해서 지팡이를 든 상태였다. 지난 2010년에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면서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을 한 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수경 스님은 이날도 대중 앞에 나서지 않고 묵언을 했다.

▲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 시상식에 참가한 수경 스님 ⓒ 이경호


수경 스님은 2008년 9월 '오체투지의 길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이 땅의 품에 안기고자 합니다.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온 숨을 땅에 바치고, 땅이 베풀어주는 기운으로만 기어서 가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오체투지가 온전히 생명과 평화의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속 100km로 치닫는 시대, 이날 시상식에 참가한 환경운동가와 시민들은 잠시나마 시속 500m로 기면서 삼보일배·오체투지했다.

출판 관련 기사 : "차 안에서 들려온 '내 다리 잘라 줘'... 눈물이 벌컥 솟았다" https://omn.kr/2ap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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