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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가로수에 묶인 보라색 목도리 보고 울컥"

[이태원 참사 2주년] 국회 주최 첫 추모제에 한국·일본·호주 유족들 참석... 여야 "특조위 활동 협조"

등록|2024.10.29 14:17 수정|2024.10.29 15:42

▲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참석자가 희생자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참석자가 희생자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29일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두 번째 맞은 '그날'의 문을 두드린 건 국회의원들만이 아니었다.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는 전국 각지와 세계 각국에서 가족을 잃은 참사 유가족들이 모여들었다. 국회 일대 가로수에는 보라색 목도리가 둘러졌고, 의원회관 벽면에는 보라색 리본들이 매달렸다. 2년 전 이태원 참사로 딸 이주영씨를 묻은 아버지 이정민씨와 살아남은 생존 피해자 이주현씨가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들어섰다. 일본인 희생자 도미카와 메이와 호주인 희생자 그레이스 라쉐드 유족들도 이들 옆자리를 지켰다. 23년 전 일본 아카시시 육교 참사로 둘째 아들을 잃은 시모무라 세이지씨도 이날 의원회관을 찾았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부터 2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유족들의 싸움이 두 번의 해를 바꾸었다. 폭염과 한파 속 단식과 오체투지와 삭발 끝에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도 첫발을 뗐다. 유족들은 흩어져 고립되지 않고 사회적 참사를 우리 사회의 공적 서사로 만들고자 했다. 이날 국회 추모제도 단순한 위로의 주고받음이 아니라, 희생자 한 명 한 명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존재였는지 함께 기억하는 자리이길 바랐다.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추모하고 헌화한 2시간. 참사 이후를 살아내는 유족들은 서로 연결돼 있었다. 연결될수록 참사의 아픔과 기억의 틈들이 메워질 것이란 믿음으로 희생자들에게 국화를 올리며 함께 울었다.

이날 국회가 처음으로 주최한 이태원 참사 2주년 추모제에는 이태원·세월호 등 재난 참사 유가족 100여 명과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 원내지도부가 빠짐없이 참석했다. 연결되어 달라는 유족들의 요청에 국회가 응답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공적 추모제였다.

여야 지도부에 "공감의 정치" 부탁한 유족들

▲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 여야 지도부에 “공감의 정치” 부탁한 유족들 ⓒ 유성호


유가족과 생존자는 국회가 소통과 공감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국회에 도착했을 때 가로수에 묶여있는 보라색 목도리를 보면서 울컥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고달팠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이제야 비로소 피해자와 유가족으로서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여야 정치인들이 한마음으로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이야기하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희망을 줄 수 있다"라며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감의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 10·29 이태원 참사 생존피해자 이주현씨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증언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태원 참사 생존자 이주현씨는 "(참사 현장에) 함께 있었으나 같이 돌아오지 못했던 분들"을 추모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씨는 "숨겨진 피해자가 너무 많다. 수동적인 피해자 조사가 아니라 한 명 한 명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라며 "피해자 스스로 피해 사실을 삼키도록 종용하는 상황에서 160번째 희생자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누락된 피해자 중 160번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설령 희생자가 있었더라도 160번째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우원식 국회의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국회 추모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지도부는 한목소리로 이태원 참사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회 차원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추모사를 낭독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오늘 추모제는 위로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위로로 끝나선 안 된다. 재발 방지를 위한 진상규명을 다지는 자리여야 한다"라며 "국가의 책임이 부재했던 시간을 온몸으로 겪어낸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대한민국 국회를 대표해 사과드린다. 피해자 권리보호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라는 당연한 요구는 이전과는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한 것이므로 국회가 앞에 서서 그 어떤 은폐와 왜곡과 방해 없이 특조위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도록 역할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국회 추모제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정치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우리 아들 딸들을 지켜주지 못해 너무나 미안하고 큰 책임을 느낀다"라며 "지난 5월 여야 합의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돼 특조위가 출범했고 피해구제심의위와 추모위도 조만간 출범하게 된다. 관련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라고 약속했다.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국회 추모제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야당은 특조위 활동을 통한 참사의 진상규명을 거듭 강조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정부의 무대책과 무능력과 무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라며 "지난 국회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특별법이 어렵게 통과됐지만 특조위원 임명은 지체됐고 예산과 인력 지원은 요원하다. 참사의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고 책임져야 할 자들이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것이 국회의 소명이자 살아남은 우리의 책임이다"라고 강조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참사 이후 2년간 국가가 국민을 지킬 것이라는 상식은 바닥까지 무너졌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기각,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한 무죄 선고로 우리 사회가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조차 사라져 버린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라며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의 골목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가족이 앞으로 보낼 계절이 조금 더 따뜻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이들의 곁을 지키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을 언급하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질을 촉구하자 유가족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께 다시 한번 촉구드린다. 지금이라도 이상민 장관을 경질하고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제때 묻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가족 앞에 겸허하게 사과하길 바란다. 다음번엔 이상민 장관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전을 담당하는 주무 부처 장관이 와서 제대로 된 추모행사를 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 송기춘 이태원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국회 추모제에서 특조위 경과 보고를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송기춘 특조위 위원장은 "특조위가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정책을 시행할 과업을 부여받았다. 국회를 비롯해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의 협조를 기대한다"라며 "특조위는 그날 밤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왜 제대로 대비되지 않았는지, 참사의 징후를 알고도 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이 있었는지 등 모든 의문점을 밝혀내고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외국인 희생자와 유족이 겪은 어려움도 항상 염두에 두겠다"라고 밝혔다.

추모제에선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뜻을 잇는 이소선합창단이 첫 무대에 올라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직접 만든 노래 '고백'을 첼리스트 김영환과 함께 연주했다. 가수 장필순은 기타리스트 배영경의 연주에 맞춰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그대로 있어주면 돼'를 부른 뒤 희생자들의 영정에 추모를 올렸다. 여야 의원들과 유족들은 추모 행렬 속에서 헌화한 뒤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최유진씨 아버지 최정주씨가 만들고 가수 하림이 부른 추모곡 '별에게'가 의원회관에 낮은 음성으로 깔렸다.

▲ 29일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 이태원참사

▲ 29일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과 참석자가 희생자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별에게

나는 아직 너를 보내지 못한다
너는 아직 너는 내 안에 숨쉰다
나는 아직 너를 보낼 수가 없다
너만 오직 너만 내 안에 있단다

수많은 날들이 있었고
빛나던 너가 있었고
아름다웠던 우리가 있었다
이렇게 덧없이 떠날 줄
난 미처 알지 못했고
눈을 감아도 선명한 네 얼굴

나는 네가 있어 웃을 수 있었다
우린 아직 못한 말들이 많잖아
나는 다시 너를 만나야 한다
너는 오직 너는 내 심장이기에

▲ 29일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에 헌화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태원, 그 골목에서 다시

▲ 29일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 29일 국회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날 저녁에는 이태원 참사 2주년을 기억하는 자리들이 서울 곳곳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기억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목소리를 보태고 유가족과 생존자 곁에서 함께할 수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7시부터 1시간 동안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사거리 광장에서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를 함께 읽고 기억하는 낭독문화제를 진행한다.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은 이날 오후 6시 34분부터 30분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서 참사 2주년 구술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독서회를 진행한다.

참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시민이라면 누구든 함께할 수 있다.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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