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왜 한국영화? 미국 '포브스'의 황당한 기사
[김성호의 씨네만세 867]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한국 문화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하며 문화부문에서 세계 최정상에 있는 상패를 한국인이 모두 휩쓸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은 영화 부문에선 최고의 자리, 그 역시 봉준호의 <기생충>이 2019년과 2020년 석권하며 한국영화의 존재감을 세계에 새겼다.
비단 <기생충>이 아니더라도 언제고 한국영화가 그와 같은 위치에 오르리란 분석이 많았다. 앞서 이창동 감독의 <버닝> 또한 황금종려상 수상에 미끄러지긴 했으나 영화제 기간 평론가 최고 평점을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던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작품과 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작자가 한국에도 여럿이란 자부심, 그것이 현실화된 오늘이다.
한때는 결코 당연하지 않았던 일이다. 1986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주연배우 강수연이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을 때, 한국영화의 오늘을 내다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해도 좋았다. 누군가 오늘을 떠올렸다면 망상증 환자의 헛된 기대라 했을 것이 분명하다.
동아시아 최초 3대영화제 여우주연상이며 한국 사상 첫 주요영화제 주요부문 수상의 영광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자리까지가 채 반세기가 걸리지 않았다. 네 마리 용 가운데 말석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것이 한강의 기적이라면 이는 충무로의 기적쯤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이 작품이 꼭 봐야 할 한국영화라고?
미국 격주간 경제매체 <포브스>가 지난 9월 꼭 봐야 할 한국영화 30선(30 Great Korean Movies Worth Watching)을 뽑아 소개했다. 공개된 서른 편의 영화 가운데 어느 것은 자연스럽고, 또 어떤 것은 낯설거나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한국인의 시선에선 별반 새로울 것 없는 영화가 높은 자리에 올라있다 여겨질 수도 있고, 해외 언론에 소개된 것뿐이지 한국에선 얼마 새롭게 조명 받지 못한 작품도 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건 그래서 새롭다. 그를 통해 우리의 것을 다시금 조명하는 기회가 되니 그대로 만족스러운 일이다.
서른 편의 영화 중 12위, 무척이나 높은 순위에 <패스트 라이브즈>가 들었다.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어릴 적 캐나다로 이민을 간 젊은 감독이 한국 사회의 단절과 미주에의 적응이 이뤄진 자신의 경험을 녹여 만들어낸 작품이다.
영화는 지난해 시카고비평가협회상, LA비평가협회상, 뉴욕비평가협회상에서 모두 수상하며 미주에서 발표된 작품 가운데 단연 기대작임을 알도록 했다. <넘버3>로 유명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란 사실, 또 그가 차기작 <세기말>이 작품 가운데 영화평론가를 비판했다가 호된 혹평을 마주한 뒤 흥행에 참패하고 곧 이민을 갔다는 이야기도 새삼 조명 받으며 화제가 됐다.
제목인 '패스트 라이브즈'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전생'이다. 지금의 생 이전에 먼저 산 삶이 있다는 동양적 윤회관을 바탕으로, 돌고 도는 영원의 삶 가운데 찰나가 바로 지금 이 순간임을 일깨운다. 때로 전생은 오늘의 관계를 특별하게 여기도록 한다. 현생에서 어딘지 신경 쓰이는 이를 만나면 '전생에 뭐가 있었나'하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을 마음 깊이 담아두곤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그저 우연한 일만이 아닌 어떤 예비, 또 관계성이 있다는 인식을 동양인들이 특별히 더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전적 세계의 느슨한 반영
셀린 송에겐 이민을 간 12살 이전의 관계들이 그랬던 것도 같다. 옷깃, 서로 끌어안지 않고서야 좀처럼 닿을 일 없는 깃을 마주 부빈 관계들이 한순간에 단절됐으니 말이다. 삶 가운데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저 너른 태평양 건너로 자리하니 12살 어린 마음에 그들과 자신의 세계가 이승과 저승만큼이나 멀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영화의 시작은 12살 평범한 소녀 나영의 일상이다. 그녀는 같은 반 친구인 해성을 좋아하고, 엄마는 나영에게 해성과 보낼 수 있는 하루를 허락한다. 엄마들이 보는 가운데 해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나영. 그것이 그들에게 생애 첫 데이트이며 또 마지막일 수도 있었던 시간이란 걸 부모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로부터 12년을 건너간다. 나영(그레타 리 분)은 그대로 이민을 가 뉴욕에 터를 잡고 사는 젊은이다. 작가를 꿈꾸는 그녀의 삶 가운데 어린 시절, 한국의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우연히 SNS에 접속하면서 '전생'이나 다름없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닥쳐오게 된다.
해성(유태오 분)은 한국의 건실한 청년이다. 공부해 명문대에 입학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그의 기억 한 편에 저 옛날 초등학교 시절 만났던 아이 나영이 떠오른다. SNS 같은 도구가 있으니 찾아볼 수도 있는 노릇. 나영을 추적해 마침내 그녀를 알게 된다. 서울과 뉴욕, 좀처럼 닿을 길 없는 둘 사이가 12년의 시차를 두고 이어지게 된다.
한국판 '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는 저 먼 거리와 시차를 건너 12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감정을 품고 애타게 그리워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거듭된 영상통화, 설레는 시간들이 서로의 일상 가운데 둥지를 튼다. 그러나 성인이 된 뒤 제대로 만나본 적도 끌어안아 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그와 같은 애태우는 일상은 견뎌내기 어려운 일이다. 여느 장거리 커플처럼, 아니 그보다도 못하여 제대로 관계를 정립하지도 못한 이들은 마침내 연락을 포기하고 만다.
영화는 여러모로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원작을 영화화 한 <냉정과 열정사이>를 떠올리게 한다. 헤어진 연인이 먼 거리를 두고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점, 사내가 그 거리를 딛고 여자를 찾아 가지만 그녀에겐 이미 연인이 있다는 사실, 각자의 마음에 서로가 깊게 자리하고 있음에도 서로가 선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성까지가 모두 그러하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냉정과 열정사이>와 거의 동일한 착상과 전개를 가졌고, 그보다 풋풋한 감정선과 독자적인 배우의 매력을 바탕으로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을 이들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자극한다.
서로가 엇갈리는 시간 동안 나영에겐 가까이 볼 수 있는 편한 연인 아서(존 마가로 분)가 생겼고, 그들은 마침내 미래를 함께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그녀를 또 한 번 그대로는 보낼 수 없겠다는 해성의 마음이 그들 사이에 한 번의 관계를 더 허락하니, '패스트 라이브즈'가 마침내 현생과 뒤섞여 영화에 색다르고 낭만적인 긴장을 부여하는 것이다.
<포브스>는 이 영화를 한국영화 전체 가운데 12위로 꼽으며 이 작품이 최우수 오리지널 각본상과 최우수 작품상, 두 개의 오스카 후보에 올랐단 사실을 언급한다. 셀린 송은 데뷔작부터 남다른 만듦새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멜로영화를 찍어냈다. 아마도 20여년 전 나카에 이사무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이룬 것과 같은 성취를 그 데뷔작부터 이미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활용한 미국영화
태어난 곳만 한국일 뿐 제작부터 배급, 영화의 주된 촬영지며 정서까지가 한국과는 별 관련이 없지만 <포브스>는 이를 한국영화로 분류했다. 그 결정은 영화 속 나영이나 미국과 캐나다를 포괄한 미주의 시선에서 한국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다.
<포브스>는 한편으로 <패스트 라이브즈>를 '아름답고 조용한 로맨스'라 평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외국에서 유년기를 보내 한국어 연기조차 익숙지 않은 유태오를 평범한 한국 대학생으로 설정한 것부터 어색하다. 한국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했을 그의 배낭 멘 모습과 배바지 패션까지 모두 자연스럽지 않다.
평범한 한국인이라기엔 너무나 미국적 정서스러운 접근방식과 데이트, 명문대를 졸업한 해성이 간단한 영어 한 마디 알아듣지 못한다는 설정 역시 현실을 무시한 듯 일방적이기만 하다. 하물며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잔뜩 묻어나는 한국에서 평생 산 이도 자주 듣기 힘든 '전생'의 활용이야.
그렇기에 제작부터 감독까지 한국과의 연이라곤 이민 전 12년이 고작인 나영과 같은 수준인 이 작품을 한국영화 전체의 13위로 꼽아 세계인에게 소개한 것이 몹시 아쉽다. 통상 영화에 국적을 부여할 땐 제작 과정에 그 나라의 자본과 사람이 얼마나 참여했느냐를 고려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한국작품이라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포브스>의 선택은 한국영화 전반을 제대로 돌아보고 발굴한 것이 아니라, 서구인이 한국을 소재로 다룬 영화 30편을 검색해 개중 잘 알려진 작품군을 선발한 것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한국영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 적잖이 있다. 그중 다수는 해외 유수의 영화제까지 출품되지 못한 채로 한국에서 상영을 마친다. 나는 그와 같은 작품을 더욱 발굴해 알리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이와 같은 프로젝트가 반가우면서도 적잖이 실망스럽다고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단 <기생충>이 아니더라도 언제고 한국영화가 그와 같은 위치에 오르리란 분석이 많았다. 앞서 이창동 감독의 <버닝> 또한 황금종려상 수상에 미끄러지긴 했으나 영화제 기간 평론가 최고 평점을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던 것이다. 세계적 수준의 작품과 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작자가 한국에도 여럿이란 자부심, 그것이 현실화된 오늘이다.
동아시아 최초 3대영화제 여우주연상이며 한국 사상 첫 주요영화제 주요부문 수상의 영광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자리까지가 채 반세기가 걸리지 않았다. 네 마리 용 가운데 말석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것이 한강의 기적이라면 이는 충무로의 기적쯤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이 작품이 꼭 봐야 할 한국영화라고?
▲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 CJ ENM
미국 격주간 경제매체 <포브스>가 지난 9월 꼭 봐야 할 한국영화 30선(30 Great Korean Movies Worth Watching)을 뽑아 소개했다. 공개된 서른 편의 영화 가운데 어느 것은 자연스럽고, 또 어떤 것은 낯설거나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한국인의 시선에선 별반 새로울 것 없는 영화가 높은 자리에 올라있다 여겨질 수도 있고, 해외 언론에 소개된 것뿐이지 한국에선 얼마 새롭게 조명 받지 못한 작품도 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건 그래서 새롭다. 그를 통해 우리의 것을 다시금 조명하는 기회가 되니 그대로 만족스러운 일이다.
서른 편의 영화 중 12위, 무척이나 높은 순위에 <패스트 라이브즈>가 들었다.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어릴 적 캐나다로 이민을 간 젊은 감독이 한국 사회의 단절과 미주에의 적응이 이뤄진 자신의 경험을 녹여 만들어낸 작품이다.
영화는 지난해 시카고비평가협회상, LA비평가협회상, 뉴욕비평가협회상에서 모두 수상하며 미주에서 발표된 작품 가운데 단연 기대작임을 알도록 했다. <넘버3>로 유명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란 사실, 또 그가 차기작 <세기말>이 작품 가운데 영화평론가를 비판했다가 호된 혹평을 마주한 뒤 흥행에 참패하고 곧 이민을 갔다는 이야기도 새삼 조명 받으며 화제가 됐다.
제목인 '패스트 라이브즈'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전생'이다. 지금의 생 이전에 먼저 산 삶이 있다는 동양적 윤회관을 바탕으로, 돌고 도는 영원의 삶 가운데 찰나가 바로 지금 이 순간임을 일깨운다. 때로 전생은 오늘의 관계를 특별하게 여기도록 한다. 현생에서 어딘지 신경 쓰이는 이를 만나면 '전생에 뭐가 있었나'하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을 마음 깊이 담아두곤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그저 우연한 일만이 아닌 어떤 예비, 또 관계성이 있다는 인식을 동양인들이 특별히 더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전적 세계의 느슨한 반영
▲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 CJ ENM
셀린 송에겐 이민을 간 12살 이전의 관계들이 그랬던 것도 같다. 옷깃, 서로 끌어안지 않고서야 좀처럼 닿을 일 없는 깃을 마주 부빈 관계들이 한순간에 단절됐으니 말이다. 삶 가운데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이 저 너른 태평양 건너로 자리하니 12살 어린 마음에 그들과 자신의 세계가 이승과 저승만큼이나 멀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영화의 시작은 12살 평범한 소녀 나영의 일상이다. 그녀는 같은 반 친구인 해성을 좋아하고, 엄마는 나영에게 해성과 보낼 수 있는 하루를 허락한다. 엄마들이 보는 가운데 해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나영. 그것이 그들에게 생애 첫 데이트이며 또 마지막일 수도 있었던 시간이란 걸 부모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로부터 12년을 건너간다. 나영(그레타 리 분)은 그대로 이민을 가 뉴욕에 터를 잡고 사는 젊은이다. 작가를 꿈꾸는 그녀의 삶 가운데 어린 시절, 한국의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우연히 SNS에 접속하면서 '전생'이나 다름없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닥쳐오게 된다.
해성(유태오 분)은 한국의 건실한 청년이다. 공부해 명문대에 입학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그의 기억 한 편에 저 옛날 초등학교 시절 만났던 아이 나영이 떠오른다. SNS 같은 도구가 있으니 찾아볼 수도 있는 노릇. 나영을 추적해 마침내 그녀를 알게 된다. 서울과 뉴욕, 좀처럼 닿을 길 없는 둘 사이가 12년의 시차를 두고 이어지게 된다.
한국판 '냉정과 열정 사이'
▲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포스터 ⓒ CJ ENM
영화는 저 먼 거리와 시차를 건너 12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감정을 품고 애타게 그리워하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거듭된 영상통화, 설레는 시간들이 서로의 일상 가운데 둥지를 튼다. 그러나 성인이 된 뒤 제대로 만나본 적도 끌어안아 본 적도 없는 이들에게 그와 같은 애태우는 일상은 견뎌내기 어려운 일이다. 여느 장거리 커플처럼, 아니 그보다도 못하여 제대로 관계를 정립하지도 못한 이들은 마침내 연락을 포기하고 만다.
영화는 여러모로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원작을 영화화 한 <냉정과 열정사이>를 떠올리게 한다. 헤어진 연인이 먼 거리를 두고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점, 사내가 그 거리를 딛고 여자를 찾아 가지만 그녀에겐 이미 연인이 있다는 사실, 각자의 마음에 서로가 깊게 자리하고 있음에도 서로가 선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성까지가 모두 그러하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냉정과 열정사이>와 거의 동일한 착상과 전개를 가졌고, 그보다 풋풋한 감정선과 독자적인 배우의 매력을 바탕으로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껴봤을 이들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자극한다.
서로가 엇갈리는 시간 동안 나영에겐 가까이 볼 수 있는 편한 연인 아서(존 마가로 분)가 생겼고, 그들은 마침내 미래를 함께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그녀를 또 한 번 그대로는 보낼 수 없겠다는 해성의 마음이 그들 사이에 한 번의 관계를 더 허락하니, '패스트 라이브즈'가 마침내 현생과 뒤섞여 영화에 색다르고 낭만적인 긴장을 부여하는 것이다.
<포브스>는 이 영화를 한국영화 전체 가운데 12위로 꼽으며 이 작품이 최우수 오리지널 각본상과 최우수 작품상, 두 개의 오스카 후보에 올랐단 사실을 언급한다. 셀린 송은 데뷔작부터 남다른 만듦새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멜로영화를 찍어냈다. 아마도 20여년 전 나카에 이사무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이룬 것과 같은 성취를 그 데뷔작부터 이미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활용한 미국영화
▲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 CJ ENM
태어난 곳만 한국일 뿐 제작부터 배급, 영화의 주된 촬영지며 정서까지가 한국과는 별 관련이 없지만 <포브스>는 이를 한국영화로 분류했다. 그 결정은 영화 속 나영이나 미국과 캐나다를 포괄한 미주의 시선에서 한국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다.
<포브스>는 한편으로 <패스트 라이브즈>를 '아름답고 조용한 로맨스'라 평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외국에서 유년기를 보내 한국어 연기조차 익숙지 않은 유태오를 평범한 한국 대학생으로 설정한 것부터 어색하다. 한국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했을 그의 배낭 멘 모습과 배바지 패션까지 모두 자연스럽지 않다.
평범한 한국인이라기엔 너무나 미국적 정서스러운 접근방식과 데이트, 명문대를 졸업한 해성이 간단한 영어 한 마디 알아듣지 못한다는 설정 역시 현실을 무시한 듯 일방적이기만 하다. 하물며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 잔뜩 묻어나는 한국에서 평생 산 이도 자주 듣기 힘든 '전생'의 활용이야.
그렇기에 제작부터 감독까지 한국과의 연이라곤 이민 전 12년이 고작인 나영과 같은 수준인 이 작품을 한국영화 전체의 13위로 꼽아 세계인에게 소개한 것이 몹시 아쉽다. 통상 영화에 국적을 부여할 땐 제작 과정에 그 나라의 자본과 사람이 얼마나 참여했느냐를 고려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한국작품이라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포브스>의 선택은 한국영화 전반을 제대로 돌아보고 발굴한 것이 아니라, 서구인이 한국을 소재로 다룬 영화 30편을 검색해 개중 잘 알려진 작품군을 선발한 것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한국영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 적잖이 있다. 그중 다수는 해외 유수의 영화제까지 출품되지 못한 채로 한국에서 상영을 마친다. 나는 그와 같은 작품을 더욱 발굴해 알리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나는 이와 같은 프로젝트가 반가우면서도 적잖이 실망스럽다고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a href="https://brunch.co.kr/@goldstarsky" target="_blank" class=autolink>https://brunch.co.kr/@goldstarsky</a>)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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