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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내장 진단에도 눈을 뗄 수 없던 책

자본주의의 악마성을 잘 보여준 위화 소설 <형제>

등록|2024.10.30 09:43 수정|2024.10.30 09:53
길냥이 집사를 자처하는 친구에게서 카톡을 받았다.

"어제 수성계곡물에 빠져 구조된 애 일박이일 치료 받고 고별 : 연구실 와서 보낼 준비. 명복을 빌어줘."

6년째 길냥이들을 돌봐온 친구는 고양이 사체를 흰색 대마천으로 감싸고 삼베 리본으로 묶어 마지막 길을 수습해주었다. 사진을 본 다른 친구가 답글을 보냈다.

"복 받을겨~."

▲ 친구가 보낸 길냥이 사진 ⓒ 홍윤정


마침 나는 위화의 소설 <형제>를 읽던 중이라 작중 인물 송범평의 비참한 죽음이 길냥이의 죽음과 묘하게 겹쳐지는 걸 느꼈다. 지주 송범평은 무산계급 홍위병들에게 맞아죽었다. 한여름 뙤약볕에 방치된 그의 시신에 파리떼가 엉겨붙었고 곁에는 어린 아들 둘이 맥없이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지구상에는 좋은 시절을 만나 별 고생없이 천수를 다하는 생명들이 있는가 하면, 잔혹한 시절에 태어나 죽도록 고생만 하다 단명하는 생명도 많다. 태어나고 죽는 일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이런 걸 '운명'이라 부르는 게지.

행인들이 큰 구경거리나 되는 양 송범평의 시신을 둘러싸고 쳐다볼 때 식당 아줌마가 수레를 빌려왔다. 아줌마는 구경꾼들을 지목하며 어서 빨리 시신을 수레에 실어주라고 소리쳤다. 지목된 네 명은 뜨악해하며 시신을 수레에 옮겼고, 아줌마가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당신들 복받을 거예요."

송범평의 시신은 입관 때에도 수난을 겪었다. 싸구려 나무관은 그의 큰 키에 비해 너무 작아서 결국 시신의 무릎뼈를 부러뜨려 욱여넣어졌다. 7년 뒤에 죽은 송범평의 아내 역시 싸구려 나무관에 들어갔다. 송범폄의 늙은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가난한 친척들은 그의 주검을 멍석에 말아 세 군데로 나누어 새끼줄로 묶었다. 이것이 늙은 지주의 관이었다.

광기로 점철된 문화대혁명 운동이 끝나자 중국은 경제적 개혁개방을 선언했다. 송범평의 두 아들, 송강과 이광두는 이 시절에 청년기를 거치며 성장해갔다. 시류가 바뀌자 사람들 사는 방식도 변했는데 송강은 극변하는 시류에 적응을 못해 가난뱅이가 되었고, 이광두는 세상 돌아가는 형세에 부합해 거부가 되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중국이 어떤 사회로 변해가는지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만 펼치면 눈이 아파 책 한 장 넘기기가 어려워 안과에 갔다. 의사가 백내장이라고 진단했다. 이제 독서는 포기하고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수술하면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말도 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책 한 권 읽는데 한 달이 걸리든 일 년이 걸리든 천천히 읽으며 살아야겠구나, 그렇게 사는 것도 한 방법이겠구나, 생각하고 포기 모드로 들어갔다.

그런데 위화의 소설 <형제>는 천천히 읽을래야 천천히 읽을 수가 없는 소설이지 뭔가. 너무 재밌어서 나는 눈이 아픈 것도 있고 총 900페이지에 달하는 두 권의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수시로 눈에 안약을 넣어가며 송강과 이광두, 두 인물이 대변하는 시대상을 울다가 웃으며 읽었다.

▲ <형제> 1, 2권 ⓒ 홍윤정


등소평 주석은 흰 고양이건 검은 고양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면 어떻고 자본주의면 어떤가 인민들이 배부르게 잘먹고 잘입고 잘살면 된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중국에 시장경제가 도입되었는데, 송강은 실패자가 되었고 이광두는 승리자가 되었다.

송강은 어떤 인물이었나. 책 읽기를 좋아하고 문학을 좋아하며 스무 살 때에는 짧은 소설을 쓴 적도 있다. 다니던 금속공장이 파산해 실업자가 되자 임시직을 전전하며 살았다. 1년 동안 일한 날이 고작 두 달도 채 안 될 정도였고 그나마 한시적인 일감이라도 얻으면 뼈가 부서져라 일했다. 그러나 몸을 다쳐 아무 일도 못하게 되자 마지못해 이광두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나, 편지나 신문 보내는 것 정도고, 다른 일은 능력이 없어서 못한다고. 이광두가 송강에게 부총재 자리를 제안했지만 자기는 능력이 안 된다며 그것도 거절했다. 송강의 아내는 남편 면전에서 참으로 아두(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의 아들)같은 인간이라며 섪게 울었다. 그는 돈을 벌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며 사기꾼을 따라나섰다가 심신이 피폐해져 고향으로 돌아온다. 개고생 뒤에 그가 깨달은 건 자기에게 돈버는 재주가 1도 없다는 점이었다.

이광두는 어떤 인물인가. 공중변소에서 여자들 엉덩이를 훔쳐보다 들켰을 때 그의 나이 열네 살. 동네 남정네들에게 엉덩이 비밀을 까발리고 일 년에 한 두 번 먹을까 말까 한 값비싼 삼선탕면을 단 몇 달 동안 서른 여섯 그릇이나 얻어먹었다. 개혁개방정책이 전 인민의 경제생활에 스며들기 시작했을 때 복지공장에서 절름발이 둘과 바보 셋, 장님 넷과 귀머거리 다섯을 데리고 기적의 이윤을 창조했으며, 그 후 정계 우두머리들과 손잡고 인민들이 정경유착이라 수근대는 사업들을 벌여 초거대부자가 되었다.

"우리 류진 사람들이 사는 집은 이광두가 지었고, 먹는 채소나 과일도 이광두가 유통시켰다. 이광두는 또 화장장과 묘지를 사들였으니, 류진의 죽은 사람들도 이광두에게 돈을 내야 했다. 이광두는 류진 사람들에게 먹는 것에서 입는 것까지, 주거에서 사용하는 것까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독점 논스톱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가 벌이는 사업이 도대체 몇 가지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가 1년에 도대체 얼마를 버는지도 아무도 몰랐다. 얼마 전 그가 자신의 가슴을 두들기며, 망할 놈의 현 정부가 자신이 내는 망할 놈의 세금에 기대 굴러간다고 했다. 이광두가 전 현 인민의 총생산을 혼자서 책임진다고 아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가 실패자로 돌아온 송강은 아내와 동생 이광두 사이에 일어난 일을 짐작하고 조용히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일찍이 맹자님이 말씀하신 인간의 네 가지 본성(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에 따라 행동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 누구도 원망하는 마음없이 기차 철로에 누워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기차에 뭉개질까 아까워 안경을 벗어서 옆에 안전하게 놔두는 바보같은 인간.

"다가오는 기차에 철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의 몸도 따라 흔들렸다. 그는 또다시 하늘빛이 그리웠다. 고개를 들어 멀리 하늘을 바라보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눈앞에 펼쳐진 붉은 장미 꽃밭 같은 논을 보았다. 정말 아름다웠다.

바로 그때 갑자기 놀랍게도 갈매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갈매기는 울고 있었는데, 날갯짓을 하며 멀리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열차의 덜컹대는 소리가 그의 허리를 지나쳤을 때 임종을 맞은 송강의 눈길에 남은 마지막 정경은, 고독한 한 마리 갈매기가 광활한 꽃밭 위로 날고 있는 모습이었다."

송강이 죽은 뒤 이광두는 우주여행을 꿈꾸며 우주에 무엇을 가지고 갈까 고민한다. 송강이 어린 시절 해주었던 맛있는 쌀밥은 이제 '송강밥'이라는 상품이 되었고 송강이 쓰던 헤진 보따리, 송강과 관련있는 노란색 운동화는 비싼 값에 팔렸다. 이광두는 송강의 유골함을 가져가 우주 궤도상에 올려놓기로 마음먹는다. 자본주의는 상품화할 수 없는 것들을, 또는 상품화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상품화한다. 이광두는 송강을 상품화해 더 큰 관심을 얻으려는 게 아닐까.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 눈이 아파 책은 읽지 못하고 대신 유튜브를 보거나 듣는다. 음악도 듣고, 요가 동영상도 보고, 뉴스도 보고,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관심있게 듣는다.

얼마 전부터 '민중의 소리' 이완배 기자가 해설하는 <경제의 속살>을 듣기 시작했다. 6년 전에 올린 방송들인데 한 개 분량이 20분 내외라 나같은 문외한이 듣기엔 딱이다. 주로 잠들기 전에 듣다가 5분 정도 지나면 잠들어버린다. 어젯밤에는 이완배 기자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를 일러 인간성을 다글다글 갈아버리는 악마의 맷돌이라고 표현했어요. 하지만 7천 년을 이어온 연대와 협동의 정신,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인간성이 쉽게 사라지진 않습니다. 악마의 맷돌이 인간성을 갈아버릴수록 거기에 저항하는(반발하는) 힘 또한 커질 수 밖에 없어요….."

잠결에 앞부분만 듣고 뒷부분은 자느라고 듣지 못했다. 꿈에서 내가 이렇게 웅얼거린 것도 같다. '악마의 맷돌을 제대로 보여주는 소설책을 오늘 다 읽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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