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권 지폐 그림 일월오봉도의 모티브가 된 곳
진안고원에서 이성계 장군의 설화를 찾는 역사 문화 여행
▲ 진안 마이산 은수사 수마이봉 아래 청실배나무 ⓒ 이완우
진안고원에서 1억 년 전 지질시대의 장구한 역사가 풍화 침식으로 현재도 진행 중이다. 진안 마이산은 신라시대부터 중요시하여 산신제를 지내던 산이다. 역사 문화적으로 가장 오랜 유래를 간직하여 이 지역의 중심지이다.
봄에 하얀 꽃으로 세상을 환하게 밝혔던 배나무가 황색 큼직한 열매로 익어 가는 지난 27일에 진안고원을 찾았다. 마이산 은수사와 임실 성수산 상이암을 탐방하며, 이 지역에 전해 오는 설화를 찾아 나섰다.
진안 마이산 은수사의 몽금척 설화(하늘에서 왕권의 상징인 금척을 받았다),
일월오봉도(해와 달, 다섯 산봉우리로 나라와 왕권을 상징)와 청실배나무 설화(이성계 장군이 씨를 심었다).
장수 신무산의 금강 발원지 뜬봉샘 설화(샘에서 봉황새가 날아오르고 서기가 비쳐 새로운 왕조를 예언했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의 성수만세 설화(하늘에서 새 왕조를 열라는 계시로 성수만세 소리가 세 번 들렸다),
구룡쟁주 설화(아홉 용이 여의주인 왕권을 다투는 명당에 이성계 장군이 기도했다)와 황룡바위(칼바위) 설화(이성계 장군이 하늘에서 내려온 불기둥 바위를 내리치고 신력을 얻었다).
남원 백두대간 여원재 마애불상 설화(이성계 장군에서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황산전투에서 왜구를 쳐부술 비책을 알려주었다).
진안, 장수, 임실과 남원 등은 이성계 장군이 지리산 운봉고원으로 왜구를 토벌하러 군대를 이끌고 오고 갔던 길목이다. 이 지역에 이성계와 관련한 지명 설화가 많이 남겨졌다. 힘겨운 고통의 시대에 백성들은 새로운 나라의 희망과 염원을 이러한 설화와 지명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진안 마이산 은수사의 청실배나무와 임실 성수산의 청실배나무는 거목이다. 이성계 장군이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하는 길에 이들 사찰에 들러 청실배 씨앗을 심었다는 공통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서 흥미롭다.
은수사 청실배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나무는 15m 높이로 자라서 마이산 수마이봉의 산신제단 앞에 수호신처럼 우뚝 서서 지키고 있다. 청실배나무 높은 가지에 열매가 매달려 햇빛에 밝게 빛나고 있었다.
▲ 진안 마이산 은수사 열매 열린 청실배나무 가지 ⓒ 이완우
▲ 진안 마이산 은수사 청실배나무 뿌리등걸에 떨어진 청실배 (청실배 크기 길이 7cm, 폭 6cm) ⓒ 이완우
마이산 역사 문화의 중심은 몽금척(夢金尺) 설화에 있다. 이곳 은수사 태극전에는 몽금척수수도(夢金尺授受)가 탱화가 눈길을 끈다. 금척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가지고 있었다는 신물(神物)로 왕권의 상징이다. 이 금척이 이성계 장군에게 새로운 나라를 열라는 계시의 상징이 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저녁 노을이 질 때 마이산이 금빛으로 물들며 찬란하게 빛나는 장면이 드물게 연출된다. 고금당 나옹암의 위치에서 기상 조건과 저녁 노을의 햇빛 각도가 알맞게 조화되면 나타나는 이 풍경은 황금빛 금산이라는 마이산의 옛 이름에 걸맞다.
▲ 진안 마이산 은수사 태극전의 몽금척 설화 탱화 ⓒ 이완우
▲ 진안 마이산의 금빛 찬란한 신비로운 장면. 2018년 10월 마이산 고금당 나옹암에서 촬영함 ⓒ 성호 스님
해와 달이 떠 있고, 다섯 산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일월오봉도는 조선 왕조의 중심 건물이었던 경복궁 옥좌 뒤쪽에 있는 병풍 그림으로 지엄한 왕권을 상징하였다. 이 일월오봉도가 현행 한국은행권 화폐인 만원 지폐 앞면에 도안으로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
진안 마이산의 암마이봉 수마이봉 중심으로 일월오봉도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 마이산 은수사 태극전에 일월오봉도 그림이 보관되어 있다. 매년 '진안 군민의 날'(10월 12일) 전날에 수마이봉 아래 제단에서 산신제를 지내는데, 이때에만 일월오봉도가 공개된다.
마이산 산신제는 신라 시대부터 조선 후기 18세기까지 이어져 오다가 중단되었고, 1984년 진안 군민의 날에 마이산 산신제가 부활했다. 조선 태종이 1413년 10월 12일에 마이산 산신제를 모신 것을 기념하여 10월 12일을 진안 군민의 날로 삼았다.
▲ 진안 마이산 은수사 태극전의 벽면 일월오봉도 탱화 ⓒ 이완우
신라 말에 팔공산 도선암이 조선시대에 임실 성수산 상이암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진안 마이산 은수사가 조선 초기에 상원사(上院寺)였다. 현재 은수사와 상이암에 수령 600년 된 청실배나무가 나란히 무성하다. 이성계 장군 설화의 중심인 이 두 사찰이 조선 시대 초기에 임금(주상)을 의미하는 상(上)자로 사찰 이름이 일치했다니 신기하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의 청실배나무도 진안 마이산 은수사의 청실배나무처럼 수령이 600년이 넘고 이성계 장군이 기도를 드리며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 청실배나무는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고도 오랜 세월과 계절의 풍상을 이기고 성장하여 울창한 수형을 이루고 있다. 봄이면 배꽃이 온 나무에 활짝 피어서 암자를 화사하게 밝혀준다.
▲ 임실 성수산 상이암 청실배나무 ⓒ 이완우
임실 성수산 상이암의 산신각은 예로부터 영험하다 하여 기도객이 많이 찾는다. 이곳 산신각의 산신 탱화에서 산신이 푸른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조선 창업의 뿌리인 풍패지관의 고향 전주 경기전의 태조 어진이 연상된다.
상이암 산신각 탱화의 오른쪽 위에 마이산 형상의 봉우리 두 개가 뚜렷하다. 산신의 위로 기품 있게 휘어지면서도 전체로는 수평을 유지한 소나무 가지가 묘하게 세 개의 산봉우리 형상을 만들어 일월오봉도를 구성하였다.
마이산 은수사의 일월오봉도에는 해와 달이 하늘에 떠 있는데, 성수산 상이암 산신각의 탱화에는 머리에 쓴 익선관에 해와 달의 문양이 선명하다.
어느 시인은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다. 진안고원의 가을은 청실배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청실배에는 과거의 역사와 설화가 담겨 있고, 백성들이 꿈꾸는 평화로운 미래가 알알이 박혀 있었다.
민간에 전승되는 구비 설화에는 백성들의 민심을 바탕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내포되어 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구비 설화의 진솔한 가치와 생명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구비 설화가 내포한 풀뿌리 같은 끈질기고 진실한 백성들의 생명력을 진안 고원의 역사 문화 탐방 여행에서 찾아 보았다.
▲ 임실 성수산 상이암 산신각 탱화, 일월오봉도 의미 내포 ⓒ 이완우
덧붙이는 글
'금빛으로 신비로운 마이산의 재발견'(오마이뉴스, 2023.07.07), '숨겨진 왕의 기도터에 황룡 한 마리가 누워 있었네'(2023.12.29), '이름 석자 똑같은 산, 가까운 데 셋이나 있다니요'(오마이뉴스, 2024.10.29)의 기사와 관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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