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최고봉을 '백두봉'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
[중국 동북 3성 여행기 5] 백두산에 올라 통일을 꿈꾸다
▲ 백두산 천지 모습 ⓒ 안동립
중국 동북 3성 여행 4일째 목적지는 백두산이다. 백두산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들이 한 번쯤 방문해보길 원하는 산이다. 백두산은 복합 화산체로서 거대한 순상 화산체 위에 성층 화산체 3개와 측화산 수백 개가 발달한 아주 복잡한 구조이다.
봉우리는 총 16개이고 최고봉은 해발 2,744m인 백두봉이다. 백두봉을 북한에서는 장군봉으로 부른다. 각 봉우리 정상 사이에는 칼데라 호수인 천지를 품었다. 백두산의 천지와 주변 수계는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일행이 백두산 정상에 오르기 전 하룻밤 머문 곳은 '이도백하'에 있는 호텔이다. '이도백하'는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물줄기'(白河)' '두 줄기'가 합류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곳이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일어나 창문 커튼을 여니 마을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아침밥을 짓느라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모양이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도로변에 있는 인도를 따라 걷다가 길바닥을 보니 민들레꽃이 피어있었다. 겨울철이 가까워졌기 때문에 거의 모든 민들레꽃이 시들었지만 한 송이 민들레꽃이 바람에 떨고 있었다.
씨앗들은 거의 다 날아가고 한쪽 끝에만 간신히 몇개 남아 있는 민들레꽃 봉오리. 백두산 천지에서 심하게 불어오는 민들레꽃을 보다가 갑자기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 노랫가락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 '이도백하' 호텔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도로변으로 갔더니 때아닌 민들레꽃과 바람에 날려가고 몇개만 남은 민들레꽃 봉오리가 백두산 바람에 떨고 있었다. 나는 저 민들레꽃씨가 대한민국까지 날아가 통일의 씨앗이 되기를 빌었다 ⓒ 오문수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있네
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 음
가슴을 에이며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
우리는 들길에 홀로 핀 이름 모를 꽃을 보면서
외로운 맘을 나누며 손에 손을 잡고 걸었지
산등성이의 해질녘은 너무나 아름다웠었지
그님의 두 눈속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3일 동안 우리 동포들이 사는 연변을 돌아보는 동안 길거리 상가에 걸린 한글 간판 때문에 국내 여행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도백하 길거리에서는 한글 간판이 별로 안 보이고 중국 간판이 많아 낯설었다. 그런 낯설움을 익숙함으로 바꿔준 게 민들레꽃이다.
내 어릴적 봄이면 들과 산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민들레꽃. 때 되면 하얀 솜털을 달고 하늘로 날아올라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 씨를 뿌려 번식하곤 했다. 나는 저 민들레꽃씨가 남쪽 대한민국까지 날아가 통일의 씨가 되어 주기를 빌었다.
▲ 장백폭포로 가는 중간에 있는 온천모습 ⓒ 오문수
▲ 백두산 온천수로 삶은 옥수수와 계란을 팔고있는 상인들 ⓒ 오문수
아침 8시, 이도백하 매표소에 가니 백두산 천지를 보려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천문봉 갈림길 주차장까지 거리는 약 50㎞다. 이곳에서 다시 미니버스로 갈아타고 북파 천문봉 오르는 길을 굽이굽이 도는 길이 72 구비라고 한다.
도로 주변에는 쭉뻗은 자작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고 곳곳에 쓰러진 고목도 보였다. 미니버스가 조금 더 달려 수목한계선(해발 2400m)을 지나자 하늘로 쭉 뻗어 자라던 자작나무가 작은 키로 변하며 구불구불 휘어져 자라고 있었다. 자연의 힘을 거슬리지 않으려는 자작나무의 지혜다.
▲ 백두산 정상으로 가는 길 주변에는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 오문수
드디어 천문봉 아래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천문봉까지 가는 길에는 싸락눈이 내려 직원들이 등산로를 폐쇄하고 눈을 치우고 있었다. 백두산 천지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날씨가 기막히게 좋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맑은 하늘엔 구름 한 점이 없다. 두 번째 방문 때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안개가 가득해 천지를 볼 수 없었다.
천지를 보기 위해 모여든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중국측에서 백두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인원을 하루에 2만 8천명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천문봉 인근 바위와 암석을 보니 화산쇄설암과 응회암 등이 보인다.
▲ 2018년 9월 20일에 열린 평양남북정상회담 당시 두 정상이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가 천지까지 내려갔던 건물이 보이는 북한쪽 천지 모습 ⓒ 안동립
▲ 2018년 9월 20일부터 열렸던 평양남북정상회담 행사 마지막날 공동취재단이 보낸 사진과 자막 모습으로 북한이 우상화의 일환으로 사용하는 '장군봉'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 MBC자료화면캡춰
백두산은 1702년 6월 3일 화산 폭발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해발 2194m에 위치한 백두산 천지는 칼데라 호수로 최대수심 384m, 둘레 14.4㎞이다. 천문봉 정상에서 건너편에 보이는 북한쪽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평양남북정상회담(2018.9.20.)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천지까지 내려갔던 초소가 보인다. 속상하다. 통일이 되었더라면 우리도 저곳까지 마음대로 갈 수 있었을텐데…
천문봉 안내 간판을 보던 안동립씨가 백두산을 소개하는 간판을 가리키면서 "보세요. 중국 측에서도 백두산 최고봉을 백두봉이라고 하잖아요". 그의 말이 궁금해 그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묻자 안동립씨가 설명을 시작했다.
▲ 백두산 중국측 정상인 천문봉에 세워진 안내 간판으로 왼쪽 맨위에 '백두봉 2749m'란 글자가 보인다. 일부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는 중국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장군봉'이 백두산 최고봉으로 알고 있다. '장군봉'은 북한이 우상화의 일환으로 지은 이름이다. ⓒ 안동립
일행을 안내하는 리더는 고조선유적답사단 안동립 단장이다. 동아지도 대표이기도 한 안동립 단장은 우리 조상의 뿌리를 찾아서 중국과 몽골,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20여년 동안 고조선유적답사단을 리드한 실적이 올해로 47회에 이른다. 역사에 해박할 뿐만 아니라 지도 제작 전문가 답게 많은 지리적 지식도 제공한다. 다음은 안동립씨가 백두산 명칭에 대해 문제 제기한 내용이다.
▲ 백두산 지도 모습 ⓒ 안동립
"대한민국 사람 중 일부가 백두산 정상을 '장군봉'으로 표기하였는데 백두산의 명칭은 백두봉이 맞아요. 한대(漢代)에는 백두산을 단단대령(單單大嶺), 남북조의 위(魏)나라 시대에는 개마대산(蓋馬大山) 또는 도태산(徒太山) 태백산(太白山)이라 불렀어요. 북사(北史)에 종태산(從太山), 위서(魏書)와 수서(隋書)에 모두 도태산(徒太山)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나라 때는 태백산이라 불렀고, 요(遼) 금(金)나라 때에 이르러서야 장백산(長白山) 또는 백산(白山)이라 불렀습니다. 단군조선에서는 태백산(太伯山)이라 하였고, 고려(高麗)는 백두산(白頭山)이라고도 했습니다.
즉 불함산, 장백산, 태백산, 백산, 단산(붉은 산), 한밝산, 함박산, 대박산(크게 밝은 산), 조백산, 환산, 백두산 등 여러 가지로 불렀으나. 크게 밝은 산이니 백산 즉 '백두산'입니다.
▲ 장백폭포 모습. 안동립씨는 "옛고지도에는 비룡폭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설명해줬다. ⓒ 안동립
일제강점기에는 우리 민족을 졸병으로 여기는 '병사봉'으로, 일본의 연호 대정을 사용하여 '대정봉'으로, 북한 정권은 김일성 장군을 지칭하는 '장군봉'으로 부릅니다. 백두산 아래에 있는 소백산에 정일봉이 있는데 우상화된 백두산 지명을 그대로 사용 한다는 것이 문제죠. 우리나라에서는 장백산을 인정하지 않아요.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는 장백폭포까지 그려야 하고 그 이름을 비룡폭포라고 써야 합니다. 고지도에는 비룡폭포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평양남북정상회담 3일째 일정에는 두 정상이 백두산 정상과 천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평양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이 보도한 자막에 보면 '백두산 장군봉'이란 문자가 보인다. 공동취재단의 보도로 많은 언론에서도 '백두산 장군봉'이란 표현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표기가 요구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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