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순간"... 함께 한국옵티칼행 버스를 타자
박정혜·소현숙, '고용승계' 요구하며 고공농성 ... 농성 300일째 되는 11월 2일, 그들을 만나러 가자
▲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 공장 옥상에 올라 농성 중인 여성노동자 박정혜·소현숙의 모습 ⓒ 노순택
두 장의 사진을 보고 있다. 올해 1월 8일부터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 공장 옥상에 올라 농성 중인 여성노동자 박정혜·소현숙의 사진이다.
지난 1월 10일에 촬영된 사진에는 눈 덮인 옥상 한켠에 한파를 견디려 비닐로 꽁꽁 감싼 작은 텐트 하나가 보인다. 다른 한 장은 농성 200여 일이 경과한 7월 26일에 찍혔다. 작열하는 태양광을 묵묵히 받아내는 까만 차양에서 오랜 피로가 묻어난다.
▲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 공장 옥상에 올라 농성 중인 여성노동자 박정혜·소현숙의 모습 ⓒ 노순택
눈에 띄는 것은 텐트 앞 풍경을 가로막고 있는 영문 간판 'Nitto'다. 사진 속 세월이 속절없이 흐르는데도 그 간판만큼은 전혀 녹슬지도 위태롭지도 않아 보인다. 그리고 11월 2일이면 2024년의 두 "체공녀" 박정혜와 소현숙이 그 절벽처럼 거대한 간판을 대면하며 하늘에 머문 지 300일이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국옵티칼은 일본기업 '니토덴코'가 지분의 100%를 가지고 있는 한국 자회사다. 니토덴코는 구미의 '한국옵티칼'과 평택의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을 운영하는데, 모두 노트북과 스마트폰 화면에 들어가는 LCD 부품을 생산한다. 구미 공장은 LG에, 평택 공장은 삼성에 납품한다는 차이가 있다(이 글을 쓰는 데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에도 박정혜·소현숙이 만든 부품이 들어 있을 테다).
모든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 구미 노동자들
▲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 공장 옥상에 올라 농성 중인 여성노동자 박정혜·소현숙의 모습 ⓒ 노순택
▲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 공장 옥상에 올라 농성 중인 여성노동자 박정혜·소현숙의 모습 ⓒ 노순택
니토덴코는 2003년에 토지 50년 무상임대와 법인세·취득세 감면 혜택을 받으며 구미공단에 입주했다. 2022년 10월 4일, 화재사고로 인해 구미 공장이 전소됐다. 사측은 노동자들과의 상의도 없이 구미 공장 폐업을 결정한 뒤 노동자 210명에게 희망퇴직을 통보, 이를 따르지 않은 17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했다.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생존을 위협당하게 됐다.
사측의 부당해고를 거부한 11명의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평택 공장으로의 고용승계다. 사측은 구미 공장에서 생산하던 물량을 평택 공장으로 이동시켰고 20여 명의 노동자를 새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측은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의 요구를 묵살한 채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공장철거 방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혹자는 회사가 폐업했으니 어쩔 수 없다 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업 운영에 투여되는 국가의 막대한 예산을 생각해보면, 폐업은 사업가 개인의 흥망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국가적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다. 니토덴코의 무책임한 폐업 조치가 외국 투자기업의 전형적인 '먹튀' 사례로 분석되는 이유다.
구미 공장 노동자들은 부당해고 철회를 위해 모든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 평택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했고, 일본 본사로 수차례 원정투쟁을 나갔다. 일본 정부에 기업과 인권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라는 내용의 서한도 전달했다. 그럼에도 니토덴코는 해고노동자들의 고용승계만큼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왜일까.
한국옵티칼로 가는 연대버스를 타자
▲ 경북 구미에 있는 한국옵티칼 공장 옥상에 올라 농성 중인 여성노동자 박정혜·소현숙의 모습 ⓒ 노순택
지난 10월 25일,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한국옵티칼의 메일은 그 이유를 짐작케 한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무대리인이 일본 닛토덴코 본사에 보낸 이메일에는 "신임 노조 대표자들이 배려를 감사하게 생각지 못하고 금속노조 구미 대표자들의 선동에 휘둘려 노사관계를 악화시킬 경우, 닛토그룹은 중국 법인 생산 물량을 이전해주지 않을 것이고, 결국 한국옵티칼은 초기에 폐업할 수밖에 없다"란 노조 협박 내용이 담겨 있다. 노조활동을 '빨갱이', '공산주의자', '귀족노조' 등으로 낙인찍어온 노조혐오의 유구한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조혐오의 강고한 관성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의 문제는 한국 노동운동 진영에 남겨진 오랜 숙제다. 다만 하나의 사례를 떠올릴 수 있다. 2011년, 85호 크레인에 올라 309일 동안 싸운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을 내려오게 한 것은 '희망버스'였다는 사실이다.
노조원만이 아닌, 다양한 구성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타고 영도 앞에 모였을 때, 그의 농성은 3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해온 그에게 "아주 새롭고 신비로운 운동"이 되었다. '각기 다른 깃발을 들고 한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은 노조혐오의 논리는 물론, 남성 정규직 위주의 노조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롭고도 분명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니 11월 2일, 한국옵티칼로 가는 연대버스를 함께 타자. 박정혜·소현숙이 땅을 밟게 하고, 이 세계를 지탱하는 다양한 노동의 존재를 분명히 확인하자. 그리고 노동자로서 말하는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새롭고 신비로운" 순간을,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선물하기로 하자.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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