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 오면 달달한 막걸리 한 잔 어때요?
[인터뷰] 귀향해 막걸리도 빚고 지역문화도 알리는 엄경환 '어부의 낮술' 대표
강원도 고성 화진포 해수욕장에서 조금만 위쪽으로 올라가면 작고 소박한 항구가 나온다. 빨간 등대와 거북섬이 보이고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새벽녘부터 아침나절까지 어부들의 하루 일과가 끝나면 밤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고성의 작은 미항, 초도항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엄경환씨는 어부의 아들이다. 해 뜨기 전 어두컴컴한 바다로 나서는 아버지는 대낮에야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고된 노동 끝에 마시는 술 한 잔으로 기분 좋은 미소가 번지는 아버지의 얼굴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힘든 바다 일 마치고 돌아와서 마시는 술이 고된 술이 아니라 유쾌한 술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술이 쓰면 내가 힘들었던 게 강조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단 술 마시고 오늘 하루를 유쾌하게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 마음으로 만든 막걸리가 '어부의 낮술'이다. 막걸리 병에 붙어있는 라벨 속 주인공이 바로 그의 아버지다. 경환씨는 단 막걸리가 수준이 낮은 술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안타깝다. 단맛에도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있고, 아주 미묘한 차이로 달라지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는 '달다'는 한 마디로 뭉뚱그려지는 것에 대한 저항감 같은 게 있다고 말한다. 그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셔보니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첨가물 없이 오로지 쌀과 누룩으로만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배와 포도 같은 자연의 단 맛이 부드럽게 혀끝을 맴돌았다.
"저는 막걸리는 좀 달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술이 달면 일단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좋으면 같이 술자리 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겠죠. 그런데 술이 쓰면 내 감각과 시선이 술에 먼저 가게 되잖아요. 옆에 있는 관계가 죽고 술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할까요."
"가양주의 대중화를 꿈꾸고 있어요"
경환씨는 2년 전 아내와 함께 강원도 고성으로 이주했다.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쳇바퀴처럼 반복될 삶이 문득 두려워 고민 끝에 일을 그만둔 후 퇴사에 관한 그림책 <반쪽인간>을 출간했다.
결혼 후 신혼생활은 즐거웠지만 끊임없이 질주하는 도시의 삶에 갑갑함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고성에 하나 뿐인 영화관이 개관하면서 일자리가 생겼고, 이와 맞물려 이주를 결심하게 됐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발끝이라도 물에 담그고 있어야 속에서 열불이 사그라지는 사람'이라서 운명처럼 바닷가 앞으로 오게 되었다.
서울 살 때부터 술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고성에서는 꼭 술을 배워야지 다짐했지만 본업으로 바쁘다보니 그마저 잊었다. 영화처럼 우연한 기회에 20년간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막걸리를 빚어온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잊었던 꿈이 다시 피어올라 술 만드는 법 좀 알려달라는 간곡한 요청 끝에 본격적으로 막걸리 제조법을 배우게 되었다.
"막걸리를 막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끝 맛이 없다'는 얘기를 종종 해요. 첫 맛은 누룩향이 나지만요. 끝 맛을 살리는 건 온도와 시간인 것 같아요. 발효와 숙성의 힘이죠. 맛의 개성을 살리려면 이 부분의 변주가 필요한데 요즘에는 발효 온도와 기간이 마치 공식처럼 존재해요. 맛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가정에서 술을 빚어 마시는 풍습이 뿌리를 내려왔다. 전통주 명인 박록담 선생의 <한국의 전통명주 1권>에 따르면 지방과 가문에 따라 또 빚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갖가지 방법과 기술을 발휘한 가양주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맛과 향기를 자랑했다.
"거창할 수 있겠지만 저는 가양주의 대중화를 꿈꾸고 있어요. 이 집 가면 이 술이 있고 저 집 가면 저 술이 있다면 얼마나 신명나는 술판이에요. 집에서 전통누룩을 만드시는 분들이 적게나마 남아계시는데 이전에는 이런 게 일상이었겠죠. 누룩은 환경에 따라 달라져요. 그 집이 통나무집인지 흙집인지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거든요. 그런 다양성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움이 큽니다. 저도 궁극적으로는 저만의 누룩을 만드는 게 목표에요."
'납북어부' 사건 예술로 시각화 해 런던에 전시
'저승서 돈 벌어 이승자식 먹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다 일은 험하고 고되다. 어부들에게는 시시각각으로 변용하는 파도에 따라 작업 여부나 어업량이 결정된다. 사람들에게 바다는 낭만일 수 있지만 어부들에게 바다는 때때로 큰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극한의 작업장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어부들도 제 자식에게는 업을 물려주는 걸 원치 않았다.
"옛날에는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배탄다'는 얘기를 흔히 들었어요. 저희 아버지도 제가 어부를 한다고 하면 무척 반대가 심하셨어요. 뱃일은 거칠고 힘들고 못 배운 사람이 한다는 인식이 많았으니까요. 저는 어부에 대한 귀천의식이 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마침 제가 하는 일이 예술이다보니 이런 생각을 나만의 방법으로 좀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고유한 맛과 멋을 자랑하는 가양주처럼 이 세상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경환씨는 어부와 어민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면서도 낭만적으로 대상화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어부의 낮술'을 매개체로 적극 활용하려 한다. 하지만 술 말고도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그는 말한다.
경환씨의 본업은 미술작가다. 동양화가인 아내 김소정 작가와 한 팀으로 고성군의 문화와 역사, 어촌의 생활모습등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김소정·엄경환 작가는 '서울의 건기'(서울, 사이아트도큐먼트), '빌라 다르 Villa D'Art 2021'(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연결된 풍경'(강릉, 대추무아트센터), '지구를 구하는 멋진 이야기들' (강릉, 2024 문화올림픽, 경포해변) 등 다수의 전시회를 열었다.
최근 영국에서 열린 '제 2회 런던한류축제' 특별기획전시(<Korean Iconic; Echoes Now> Hanmi gallery, 런던, 영국)에서 고성군 내에서 벌어졌던 사건인 '납북어부' 사건을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작품으로 시각화했다. 현재는 서울 APO project <우리는 끝없이 흐른다> 전시를 앞두고 있다.
"저와 아내는 부부 작가인데, 이런 귀천의식에 대한 문제의식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어요. 그물과 비단을 소재로 작업을 했었는데요. 비단은 값비싼 고급 천이지만 그물코가 아주 작으면 곧 비단처럼 고운 천과 다름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비단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촘촘한 그물처럼 보이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삶을 가까이서 보느냐 멀리서 보느냐에 따라 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단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결국 천한 것과 귀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하게 하죠. 어부인 아버지를 보며 삶의 가치를 생각했고 그물과 비단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는 고성 청년예술가 기획단체 '사각위'(대표 김소정)로 활동하고 있다. 고성에서 만난 작가 친구 부부와 함께 기획팀을 꾸린 것이다. 지난해에는 그의 고향 항구인 초도항에서 '바람에 맞서서'라는 주제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고성은 봄과 가을에 바람이 엄청 불어요. 항구에 놓인 물건들을 보니 밧줄로 묶고, 돌과 다라이로 누르고 불어오는 바람에 적응하고 때론 저항하면서 살아온 어민들의 삶의 방식이 느껴졌어요. 삶이란 것도 결국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에 때론 적응하고 때론 저항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예술가들이 세상에 질문하고 작업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초도항 외에도 고성의 여러 항구에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계속 해나가고 싶다. 우리나라 최북단 강원도 고성에는 멋진 사람들과 멋진 이야기과 멋진 예술이 있다는 인식을 만들고 싶어서다.
김영미 작가의 책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에는 '기획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좋아서 기획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획자란 어쩌면 자신이 속한 곳에 애정을 갖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일삼는 모든 직업인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구절이 꼭 고성의 엄경환을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다.
'어부의 낮술'과 그가 만들어내는 문화실험들이 강원도 고성을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중되는 곳으로 인식되도록 바람에 맞서고, 적응하고, 때로는 그 바람을 자유롭게 타고 날아다닐 것이라 믿는다.
이곳에서 태어난 엄경환씨는 어부의 아들이다. 해 뜨기 전 어두컴컴한 바다로 나서는 아버지는 대낮에야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고된 노동 끝에 마시는 술 한 잔으로 기분 좋은 미소가 번지는 아버지의 얼굴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 엄경환 대표가 직접 만든 막걸리를 잔에 따르고 있다. 2024. 9. 14 ⓒ 문슬아
그 마음으로 만든 막걸리가 '어부의 낮술'이다. 막걸리 병에 붙어있는 라벨 속 주인공이 바로 그의 아버지다. 경환씨는 단 막걸리가 수준이 낮은 술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안타깝다. 단맛에도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있고, 아주 미묘한 차이로 달라지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는 '달다'는 한 마디로 뭉뚱그려지는 것에 대한 저항감 같은 게 있다고 말한다. 그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셔보니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첨가물 없이 오로지 쌀과 누룩으로만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배와 포도 같은 자연의 단 맛이 부드럽게 혀끝을 맴돌았다.
"저는 막걸리는 좀 달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술이 달면 일단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좋으면 같이 술자리 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겠죠. 그런데 술이 쓰면 내 감각과 시선이 술에 먼저 가게 되잖아요. 옆에 있는 관계가 죽고 술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할까요."
"가양주의 대중화를 꿈꾸고 있어요"
경환씨는 2년 전 아내와 함께 강원도 고성으로 이주했다.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쳇바퀴처럼 반복될 삶이 문득 두려워 고민 끝에 일을 그만둔 후 퇴사에 관한 그림책 <반쪽인간>을 출간했다.
결혼 후 신혼생활은 즐거웠지만 끊임없이 질주하는 도시의 삶에 갑갑함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고성에 하나 뿐인 영화관이 개관하면서 일자리가 생겼고, 이와 맞물려 이주를 결심하게 됐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발끝이라도 물에 담그고 있어야 속에서 열불이 사그라지는 사람'이라서 운명처럼 바닷가 앞으로 오게 되었다.
▲ '어부의 낮술'강원도 고성의 쌀로 만든 막걸리 '어부의 낮술' 제품 사진 ⓒ 엄경환
서울 살 때부터 술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고성에서는 꼭 술을 배워야지 다짐했지만 본업으로 바쁘다보니 그마저 잊었다. 영화처럼 우연한 기회에 20년간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막걸리를 빚어온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잊었던 꿈이 다시 피어올라 술 만드는 법 좀 알려달라는 간곡한 요청 끝에 본격적으로 막걸리 제조법을 배우게 되었다.
"막걸리를 막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끝 맛이 없다'는 얘기를 종종 해요. 첫 맛은 누룩향이 나지만요. 끝 맛을 살리는 건 온도와 시간인 것 같아요. 발효와 숙성의 힘이죠. 맛의 개성을 살리려면 이 부분의 변주가 필요한데 요즘에는 발효 온도와 기간이 마치 공식처럼 존재해요. 맛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가정에서 술을 빚어 마시는 풍습이 뿌리를 내려왔다. 전통주 명인 박록담 선생의 <한국의 전통명주 1권>에 따르면 지방과 가문에 따라 또 빚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갖가지 방법과 기술을 발휘한 가양주들이 저마다의 고유한 맛과 향기를 자랑했다.
"거창할 수 있겠지만 저는 가양주의 대중화를 꿈꾸고 있어요. 이 집 가면 이 술이 있고 저 집 가면 저 술이 있다면 얼마나 신명나는 술판이에요. 집에서 전통누룩을 만드시는 분들이 적게나마 남아계시는데 이전에는 이런 게 일상이었겠죠. 누룩은 환경에 따라 달라져요. 그 집이 통나무집인지 흙집인지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거든요. 그런 다양성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움이 큽니다. 저도 궁극적으로는 저만의 누룩을 만드는 게 목표에요."
'납북어부' 사건 예술로 시각화 해 런던에 전시
▲ 엄경환 '어부의 낮술' 대표. 2024. 9. 14 ⓒ 문슬아
'저승서 돈 벌어 이승자식 먹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다 일은 험하고 고되다. 어부들에게는 시시각각으로 변용하는 파도에 따라 작업 여부나 어업량이 결정된다. 사람들에게 바다는 낭만일 수 있지만 어부들에게 바다는 때때로 큰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극한의 작업장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어부들도 제 자식에게는 업을 물려주는 걸 원치 않았다.
"옛날에는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배탄다'는 얘기를 흔히 들었어요. 저희 아버지도 제가 어부를 한다고 하면 무척 반대가 심하셨어요. 뱃일은 거칠고 힘들고 못 배운 사람이 한다는 인식이 많았으니까요. 저는 어부에 대한 귀천의식이 좀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마침 제가 하는 일이 예술이다보니 이런 생각을 나만의 방법으로 좀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고유한 맛과 멋을 자랑하는 가양주처럼 이 세상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경환씨는 어부와 어민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을 거두면서도 낭만적으로 대상화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어부의 낮술'을 매개체로 적극 활용하려 한다. 하지만 술 말고도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그는 말한다.
경환씨의 본업은 미술작가다. 동양화가인 아내 김소정 작가와 한 팀으로 고성군의 문화와 역사, 어촌의 생활모습등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김소정·엄경환 작가는 '서울의 건기'(서울, 사이아트도큐먼트), '빌라 다르 Villa D'Art 2021'(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연결된 풍경'(강릉, 대추무아트센터), '지구를 구하는 멋진 이야기들' (강릉, 2024 문화올림픽, 경포해변) 등 다수의 전시회를 열었다.
최근 영국에서 열린 '제 2회 런던한류축제' 특별기획전시(<Korean Iconic; Echoes Now> Hanmi gallery, 런던, 영국)에서 고성군 내에서 벌어졌던 사건인 '납북어부' 사건을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작품으로 시각화했다. 현재는 서울 APO project <우리는 끝없이 흐른다> 전시를 앞두고 있다.
"저와 아내는 부부 작가인데, 이런 귀천의식에 대한 문제의식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어요. 그물과 비단을 소재로 작업을 했었는데요. 비단은 값비싼 고급 천이지만 그물코가 아주 작으면 곧 비단처럼 고운 천과 다름없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비단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촘촘한 그물처럼 보이니까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삶을 가까이서 보느냐 멀리서 보느냐에 따라 그물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단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 결국 천한 것과 귀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하게 하죠. 어부인 아버지를 보며 삶의 가치를 생각했고 그물과 비단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 김소정·엄경환 작가의 작품 '그물이야기' ⓒ 엄경환
그는 고성 청년예술가 기획단체 '사각위'(대표 김소정)로 활동하고 있다. 고성에서 만난 작가 친구 부부와 함께 기획팀을 꾸린 것이다. 지난해에는 그의 고향 항구인 초도항에서 '바람에 맞서서'라는 주제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고성은 봄과 가을에 바람이 엄청 불어요. 항구에 놓인 물건들을 보니 밧줄로 묶고, 돌과 다라이로 누르고 불어오는 바람에 적응하고 때론 저항하면서 살아온 어민들의 삶의 방식이 느껴졌어요. 삶이란 것도 결국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에 때론 적응하고 때론 저항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예술가들이 세상에 질문하고 작업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초도항 외에도 고성의 여러 항구에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계속 해나가고 싶다. 우리나라 최북단 강원도 고성에는 멋진 사람들과 멋진 이야기과 멋진 예술이 있다는 인식을 만들고 싶어서다.
김영미 작가의 책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에는 '기획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좋아서 기획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획자란 어쩌면 자신이 속한 곳에 애정을 갖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일삼는 모든 직업인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구절이 꼭 고성의 엄경환을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다.
'어부의 낮술'과 그가 만들어내는 문화실험들이 강원도 고성을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중되는 곳으로 인식되도록 바람에 맞서고, 적응하고, 때로는 그 바람을 자유롭게 타고 날아다닐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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