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사라진 자리에 초고층 아파트가...바뀌지 않는 진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열 개의 우물>
한국 현대사의 한 토막이 기록영상과 자료로 소환된다. 역사적 상황에 관한 해설이 이어진다. 그렇게 묵직한 시대 배경을 풀어내던 화면이 바뀌면 초로의 여성이 과거 경험담을 회고하기 시작한다. 그의 간단한 회상이 이어지다가 점점 화면의 윤곽이 흐릿해진다. 이윽고 온통 흰 꽃으로 가득해진다. 어디론가 현재와 다른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감돈다. 마치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반세기 전으로 시간여행을 출발한다.
관객이 도착한 곳은 1980년대 인천의 원도심 일대다. 그중에도 한국전쟁 이후 무수한 실향민이 자리를 잡고, 산업화와 함께 '이촌향도' 현상으로 발생한 도시 빈민들이 모여들어 '달동네'를 형성했던 만석동과 십정동 지역이 조명된다. 젊은 부부들은 생계를 위해 맞벌이하기 일쑤였고,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마땅히 의탁할 곳이 없었다. 당시에는 보육과 돌봄은 오롯이 가족의 책임이던 시절이다.
이 지역으로 일군의 여성 활동가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이 여성 노동자들의 자녀를 돌보는 데 힘을 합친다. 각기 다른 배경과 사연을 간직한 이들이 '탁아운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열악한 조건과 함께 관이 통제하지 않는 자율적 영역이 형성되는 것을 불온시한 정부의 감시와 탄압도 따라붙는다. 공부방은 사복경찰의 상시적인 사찰을 감내하는 한편, 열악한 물적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거듭한다.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산업현장에 뛰어든 여공은 하필 동네에 있던 공장이 한국에서 첫 여성 대표자를 배출한 동일방직인 까닭에 정당한 권리투쟁에 참여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 길이 봉쇄되고 만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시골로 내려가 여성농민운동의 선구자가 된다. 누군가는 여전히 공부방과 돌봄 지원기관에서 현장을 지키고, 다른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 일선에서 활약 중이다. 카메라는 차례로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소환하는 여정을 이어간다.
공간의 과거와 현재 역사가 마치 인물의 생애처럼 스며들다
영화의 제목 뜻이 무척 궁금했었다. "열 개의 우물"은 무슨 의미일까? 머리를 굴려본다. 항상 제목에 작품 전체의 함의와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추리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 가능성을 재어보고 있던 순간, 답은 아주 싱겁게 설명된다. 이야기 속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십정동'을 풀어쓰면 '열 개의 우물'인 것. 작품에만 온전히 집중하면 어렵지 않게 풀 의문을 혼자 끙끙 앓던 셈이다.
비류와 온조 형제가 고구려에서 내려와 새 나라를 정할 때, 온조는 지금의 서울 일대에 터를 잡았고, 비류는 바다의 이익을 얻고자 인천에 자리를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류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바닷가 주변은 물이 짜고 농사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 결과 동생의 판단에 뒤진 것을 부끄러워한 비류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고, 유민들은 온조에게 합류해 백제의 기원을 이룬다. 그런 인천 원도심 일대에서 우물이 열 개나 있었다면 그 동네의 유래가 제법 장구하단 걸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주요 배경인 만석동, 요즘 세대에겐 닭강정의 고장인 이곳의 지명 유래 역시 매우 간단했다. 만 석의 곡식이 쌓여 있던 곳, 고려와 조선 시대 국가 재정의 바탕이 된 조운선이 정박하던 포구에서 기원한 동네인 것이다. 영화의 제목도, 주요 무대도 모두 지정학적으로 의미심장한 선택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영화는 역사적 실체를 풀어내기 위해 상당한 분량의 기록 자료와 사진을 첨부한다. 이런 유형의 다큐멘터리는 자칫 교과서적으로 지루하게 나열될 위기에 종종 처하곤 한다. 제작진은 그런 우려를 충분히 숙지하고 파훼하고자 고심한다. 그 결과물이 겉보기에는 소소해 보이지만, 세심하게 공을 들인 변주로 관객의 시선에 각인된다.
스크린은 자주 양면분할로 해당 지역의 과거 vs 현재를 대조해 주요 배경 공간을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승격시킨다. 해설과 증언으로만 박제되지 않고, 지금은 흔적도 없을지언정 과거에는 이렇게 생동하는 장소였다는 증명, 그리고 간혹 남아 있는 흔적과 여전한 활동은 마치 '살아있는 화석'처럼 좀 더 깊숙하게 다가오는 접근법이다. 꼼꼼한 배경 공간 해설이 설명에만 그치지 않고, 눈 앞에 펼쳐지는 시각 이미지 배치와 조응하며 인물들의 인터뷰에만 의지하지 않는 독자적 주역을 탄생시킨다.
그 덕분에 시종일관 꽉 들어찬 화면의 질감이 관객에게 방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대개 인물이 나오면 집중하고 공간을 훑어가면 지나가는 장면으로 치부하는 선입견은 낄 틈이 없다. 하지만 그러면 관객이 너무 피곤하고 쉴 짬이 없지 않을까? 제작진은 적절한 완급조절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허투루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공백을 두는 게 아니라 화두를 던지고 이를 관객 개별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식으로 행간을 설정하는 배려를 제시한다. 그저 끌려다니지만 말고 사색하라는 제안이다.
이런 방식은 요즘 기록영화에서 화두가 되는 공간의 역사와 변화가 중심이 되는 작법에 대한 일종의 답변이기도 할 테다. 고전적인 독립 다큐멘터리의 원형질 그대로일 것 같지만, 형식적으로도 허술한 구석이 없다.
사람이 성벽이자 우물이 되어주던 도전은 계속된다
또한 '열 개의 우물'은 이 영화가 출발하게 된 배경, 인천 원도심에서 탁아운동에 도원결의하듯 일어선 열 명을 상징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증언자로 출연한 인물들의 간략한 자막 소개에는 공들인 표식으로 '우물' 문양이 각인되듯 새겨져 있다. 동네의 시발점이 생존에 필수인 물을 공급하는 실체적 우물이었다면, 모두가 탈출을 꿈꾸던 동네를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마을 공동체'의 꿈을 꾸게 만드는 대안적 공간으로 재구성하고자 도전한 이들이 존재론적 우물이던 셈이다.
공간에 대한 동시성을 강조하고자 해당 지역 공간과 기억을 과거 vs 현재 병행으로 풀이했던 것처럼, '우물'로 쓰임을 찾았던 이들 역시 청춘과 현재가 대칭으로 화면에 등장하곤 한다. 그들의 젊고 풋풋하던 시절은 그 당시로의 시간여행 통로가 되어준 만발한 꽃나무의 촉감과 고스란히 연결된다.
이 '사람 책'이자 '인간 우물'들의 장구한 연대기는 두 갈래 물줄기로 구분된다. 김현숙과 홍미영, 유효순, 신소영 등 치밀한 작전계획(?)을 수립 후 차근차근 기반을 다지고 현장조사를 진행하며 '변혁'적 차원의 탁아운동을 주도한 이들의 회고가 첫 번째 줄기다. 이들이 지역 특성에 주목하고 여성운동이자 빈민운동, 그리고 교육운동으로 추구한 탁아운동에 결집하는 과정은 생생한 1970-80년대' 살아있는 역사' 자체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자는 담론이 아니라, 실제 도시 빈민의 삶에 녹아들고, 실질적 도움을 제공함과 함께 대안적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실천 과정은 화려한 투쟁 과정과는 사뭇 달랐다. 물리적 근거로서 공간을 마련하고 유지하기 위해 장사를 벌이고 후원을 모집하는 지루한 일상이 거듭된다. 그런 어려움 속에도 곳곳에 뿌리를 내린 당시 주역들의 현재 삶은 늘 푸른 소나무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쯤 들으면 삐딱하게 보려는 이들은 과거 운동권 회고담 변주 아니냐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답변도 나름대로 준비해뒀다. 40년 지속해온 공부방 후원회원과 그 공간에서 만난 이들의 '자수정(자매들 수다 재밌다)' 모임 성원들이 과거를 회상하고 도움을 나누며 함께 해온 산증인으로 나선다. 여기에 두 번째 물줄기로 해고노동자들이 어떻게 여성농민운동 주역으로 결합했는지, 그들이 이룬 성과에 대한 소개가 계속된다.
오래된 미래를 향한 상상력과 실천의 계승을 꿈꾸는 영화
물론 지금의 각박한 아파트 부족사회에선 상상하기 힘든 40여 년 전 도시 공동체 기억은 그저 회고로만 배치되지 않았다. 주민운동 역사순례 투어 장면은 이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사라지는 동네와 변화된 환경을 드러내는 장치로 쐐기를 박는다. 낭만적 무용담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 일갈이 들리는 기분이다.
달동네가 사라진 자리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차는 풍경은 사실 대도시 어디에서나 목격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며 회상에 잠긴 관객에겐 새삼 괴물 같은 존재감으로 다가설 테다. 85층 2만 세대 재개발 단지의 압도적 존재감은 마치 과거 주인공들이 도전했던 꿈을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매장해버릴 것 같은 악의로 가득해 보인다.
대부분의 원도심 재개발이 그렇듯 이 동네 역시 원래 땅값에서 아파트 신축과 함께 몇 곱절 치솟은 부동산 가격은 선주민을 내몰 예정이다. 하지만 과거 도시 빈민을 주역으로 도시 공동체를 꾸리려 했다면, 이제는 아파트 입주민 상대로 새로운 기획을 수립할 것이라는 다짐은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멀고 힘든 길이다.
농촌에 정착한 이들의 고민 역시 복잡하다. 1천만 농민운동은 어느새 230만으로 축소되었고, 세계 최대 협동조합이라는 농협은 본래 의미와 달리 농촌 사회에 군림하는 존재가 된 지 오래다. 동네 최초 여성 이장과 농협 이사를 역임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안순애 씨가 동학농민운동 관련 독후감을 들려주다 마을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전자음악가 '한받'의 신랄한 노래에 추임새를 맞추며 농협의 고리대 방불케 하는 이자를 규탄하는 장면은 해학적 풍자가 묵직하다. 하지만 이 역전의 여성 용사들은 절망하기보단, 그들 각자가 자리한 곳에서 게릴라 전투를 이어나갈 결의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난 40여 년의 경험이 충만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감독의 전작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역시 국경을 초월해 과거 제국주의와 식민지 유산을 파괴적으로 극복하려던 연대운동의 가능성을 소환하고 현재적 의미를 환기하려는 기획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열 개의 우물> 역시 온고지신의 지혜를 활용하라고 관객에게 거듭 권하고자 한다. 파편화된 내 아이 금쪽이 만들기로서의 돌봄이 아니라, '마을이 아이를 돌보는' 공동의 기획이자 사회 변혁의 일환으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기획하던 '탁아운동'의 경험담, 그리고 지역 조건에 천착한 사회운동 기획 사례는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로서 손색이 없는 배움과 성찰의 장으로 기능할 테다.
<작품정보>
열 개의 우물 Ten Wells
2023 한국 다큐멘터리
2024.10.30. 개봉 82분 12세 관람가
감독 김미례
출연 안순애, 홍미영, 유효순, 신소영, 김현숙
제작/배급 감 픽쳐스
관객이 도착한 곳은 1980년대 인천의 원도심 일대다. 그중에도 한국전쟁 이후 무수한 실향민이 자리를 잡고, 산업화와 함께 '이촌향도' 현상으로 발생한 도시 빈민들이 모여들어 '달동네'를 형성했던 만석동과 십정동 지역이 조명된다. 젊은 부부들은 생계를 위해 맞벌이하기 일쑤였고,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마땅히 의탁할 곳이 없었다. 당시에는 보육과 돌봄은 오롯이 가족의 책임이던 시절이다.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산업현장에 뛰어든 여공은 하필 동네에 있던 공장이 한국에서 첫 여성 대표자를 배출한 동일방직인 까닭에 정당한 권리투쟁에 참여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 길이 봉쇄되고 만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시골로 내려가 여성농민운동의 선구자가 된다. 누군가는 여전히 공부방과 돌봄 지원기관에서 현장을 지키고, 다른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 일선에서 활약 중이다. 카메라는 차례로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소환하는 여정을 이어간다.
공간의 과거와 현재 역사가 마치 인물의 생애처럼 스며들다
▲ "열 개의 우물"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 감 픽쳐스
영화의 제목 뜻이 무척 궁금했었다. "열 개의 우물"은 무슨 의미일까? 머리를 굴려본다. 항상 제목에 작품 전체의 함의와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추리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 가능성을 재어보고 있던 순간, 답은 아주 싱겁게 설명된다. 이야기 속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십정동'을 풀어쓰면 '열 개의 우물'인 것. 작품에만 온전히 집중하면 어렵지 않게 풀 의문을 혼자 끙끙 앓던 셈이다.
비류와 온조 형제가 고구려에서 내려와 새 나라를 정할 때, 온조는 지금의 서울 일대에 터를 잡았고, 비류는 바다의 이익을 얻고자 인천에 자리를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류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바닷가 주변은 물이 짜고 농사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 결과 동생의 판단에 뒤진 것을 부끄러워한 비류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고, 유민들은 온조에게 합류해 백제의 기원을 이룬다. 그런 인천 원도심 일대에서 우물이 열 개나 있었다면 그 동네의 유래가 제법 장구하단 걸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주요 배경인 만석동, 요즘 세대에겐 닭강정의 고장인 이곳의 지명 유래 역시 매우 간단했다. 만 석의 곡식이 쌓여 있던 곳, 고려와 조선 시대 국가 재정의 바탕이 된 조운선이 정박하던 포구에서 기원한 동네인 것이다. 영화의 제목도, 주요 무대도 모두 지정학적으로 의미심장한 선택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영화는 역사적 실체를 풀어내기 위해 상당한 분량의 기록 자료와 사진을 첨부한다. 이런 유형의 다큐멘터리는 자칫 교과서적으로 지루하게 나열될 위기에 종종 처하곤 한다. 제작진은 그런 우려를 충분히 숙지하고 파훼하고자 고심한다. 그 결과물이 겉보기에는 소소해 보이지만, 세심하게 공을 들인 변주로 관객의 시선에 각인된다.
스크린은 자주 양면분할로 해당 지역의 과거 vs 현재를 대조해 주요 배경 공간을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승격시킨다. 해설과 증언으로만 박제되지 않고, 지금은 흔적도 없을지언정 과거에는 이렇게 생동하는 장소였다는 증명, 그리고 간혹 남아 있는 흔적과 여전한 활동은 마치 '살아있는 화석'처럼 좀 더 깊숙하게 다가오는 접근법이다. 꼼꼼한 배경 공간 해설이 설명에만 그치지 않고, 눈 앞에 펼쳐지는 시각 이미지 배치와 조응하며 인물들의 인터뷰에만 의지하지 않는 독자적 주역을 탄생시킨다.
그 덕분에 시종일관 꽉 들어찬 화면의 질감이 관객에게 방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대개 인물이 나오면 집중하고 공간을 훑어가면 지나가는 장면으로 치부하는 선입견은 낄 틈이 없다. 하지만 그러면 관객이 너무 피곤하고 쉴 짬이 없지 않을까? 제작진은 적절한 완급조절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허투루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공백을 두는 게 아니라 화두를 던지고 이를 관객 개별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식으로 행간을 설정하는 배려를 제시한다. 그저 끌려다니지만 말고 사색하라는 제안이다.
이런 방식은 요즘 기록영화에서 화두가 되는 공간의 역사와 변화가 중심이 되는 작법에 대한 일종의 답변이기도 할 테다. 고전적인 독립 다큐멘터리의 원형질 그대로일 것 같지만, 형식적으로도 허술한 구석이 없다.
사람이 성벽이자 우물이 되어주던 도전은 계속된다
▲ "열 개의 우물"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 감 픽쳐스
또한 '열 개의 우물'은 이 영화가 출발하게 된 배경, 인천 원도심에서 탁아운동에 도원결의하듯 일어선 열 명을 상징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증언자로 출연한 인물들의 간략한 자막 소개에는 공들인 표식으로 '우물' 문양이 각인되듯 새겨져 있다. 동네의 시발점이 생존에 필수인 물을 공급하는 실체적 우물이었다면, 모두가 탈출을 꿈꾸던 동네를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마을 공동체'의 꿈을 꾸게 만드는 대안적 공간으로 재구성하고자 도전한 이들이 존재론적 우물이던 셈이다.
공간에 대한 동시성을 강조하고자 해당 지역 공간과 기억을 과거 vs 현재 병행으로 풀이했던 것처럼, '우물'로 쓰임을 찾았던 이들 역시 청춘과 현재가 대칭으로 화면에 등장하곤 한다. 그들의 젊고 풋풋하던 시절은 그 당시로의 시간여행 통로가 되어준 만발한 꽃나무의 촉감과 고스란히 연결된다.
이 '사람 책'이자 '인간 우물'들의 장구한 연대기는 두 갈래 물줄기로 구분된다. 김현숙과 홍미영, 유효순, 신소영 등 치밀한 작전계획(?)을 수립 후 차근차근 기반을 다지고 현장조사를 진행하며 '변혁'적 차원의 탁아운동을 주도한 이들의 회고가 첫 번째 줄기다. 이들이 지역 특성에 주목하고 여성운동이자 빈민운동, 그리고 교육운동으로 추구한 탁아운동에 결집하는 과정은 생생한 1970-80년대' 살아있는 역사' 자체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자는 담론이 아니라, 실제 도시 빈민의 삶에 녹아들고, 실질적 도움을 제공함과 함께 대안적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실천 과정은 화려한 투쟁 과정과는 사뭇 달랐다. 물리적 근거로서 공간을 마련하고 유지하기 위해 장사를 벌이고 후원을 모집하는 지루한 일상이 거듭된다. 그런 어려움 속에도 곳곳에 뿌리를 내린 당시 주역들의 현재 삶은 늘 푸른 소나무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쯤 들으면 삐딱하게 보려는 이들은 과거 운동권 회고담 변주 아니냐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답변도 나름대로 준비해뒀다. 40년 지속해온 공부방 후원회원과 그 공간에서 만난 이들의 '자수정(자매들 수다 재밌다)' 모임 성원들이 과거를 회상하고 도움을 나누며 함께 해온 산증인으로 나선다. 여기에 두 번째 물줄기로 해고노동자들이 어떻게 여성농민운동 주역으로 결합했는지, 그들이 이룬 성과에 대한 소개가 계속된다.
오래된 미래를 향한 상상력과 실천의 계승을 꿈꾸는 영화
▲ "열 개의 우물"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 감 픽쳐스
물론 지금의 각박한 아파트 부족사회에선 상상하기 힘든 40여 년 전 도시 공동체 기억은 그저 회고로만 배치되지 않았다. 주민운동 역사순례 투어 장면은 이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사라지는 동네와 변화된 환경을 드러내는 장치로 쐐기를 박는다. 낭만적 무용담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 일갈이 들리는 기분이다.
달동네가 사라진 자리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차는 풍경은 사실 대도시 어디에서나 목격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며 회상에 잠긴 관객에겐 새삼 괴물 같은 존재감으로 다가설 테다. 85층 2만 세대 재개발 단지의 압도적 존재감은 마치 과거 주인공들이 도전했던 꿈을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매장해버릴 것 같은 악의로 가득해 보인다.
대부분의 원도심 재개발이 그렇듯 이 동네 역시 원래 땅값에서 아파트 신축과 함께 몇 곱절 치솟은 부동산 가격은 선주민을 내몰 예정이다. 하지만 과거 도시 빈민을 주역으로 도시 공동체를 꾸리려 했다면, 이제는 아파트 입주민 상대로 새로운 기획을 수립할 것이라는 다짐은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멀고 힘든 길이다.
농촌에 정착한 이들의 고민 역시 복잡하다. 1천만 농민운동은 어느새 230만으로 축소되었고, 세계 최대 협동조합이라는 농협은 본래 의미와 달리 농촌 사회에 군림하는 존재가 된 지 오래다. 동네 최초 여성 이장과 농협 이사를 역임한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안순애 씨가 동학농민운동 관련 독후감을 들려주다 마을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전자음악가 '한받'의 신랄한 노래에 추임새를 맞추며 농협의 고리대 방불케 하는 이자를 규탄하는 장면은 해학적 풍자가 묵직하다. 하지만 이 역전의 여성 용사들은 절망하기보단, 그들 각자가 자리한 곳에서 게릴라 전투를 이어나갈 결의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난 40여 년의 경험이 충만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감독의 전작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역시 국경을 초월해 과거 제국주의와 식민지 유산을 파괴적으로 극복하려던 연대운동의 가능성을 소환하고 현재적 의미를 환기하려는 기획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열 개의 우물> 역시 온고지신의 지혜를 활용하라고 관객에게 거듭 권하고자 한다. 파편화된 내 아이 금쪽이 만들기로서의 돌봄이 아니라, '마을이 아이를 돌보는' 공동의 기획이자 사회 변혁의 일환으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기획하던 '탁아운동'의 경험담, 그리고 지역 조건에 천착한 사회운동 기획 사례는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로서 손색이 없는 배움과 성찰의 장으로 기능할 테다.
<작품정보>
열 개의 우물 Ten Wells
2023 한국 다큐멘터리
2024.10.30. 개봉 82분 12세 관람가
감독 김미례
출연 안순애, 홍미영, 유효순, 신소영, 김현숙
제작/배급 감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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