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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신생아 2명-사망 70명인 마을, 머리 맞대자 나온 해법

충남 홍성 장곡면의 오누이커뮤니티센터, 행복농장 사례발표를 들으며

등록|2024.10.31 09:52 수정|2024.10.31 09:53
장곡면에 버스가 멈추자 마을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안개비가 내리는 논에 대형마시멜로 같은 곤포사일리지가 띄엄띄엄 놓였다.

시월 중순, 이 날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사회적경제협의회에서 유성구민 혹은 유성구에 일터가 있는 남녀노소 주민 20여명이 홍성군 장곡면의 사회적경제기업을 탐방하는 날이었다. 유성구청의 일자리정책과 주무관도 함께 동행 했다.

▲ 오누이커뮤니티센터에서 사례발표하는 담당자 ⓒ 한미숙


장곡면 도산리 오누이커뮤니티센터 입구에는 '먹고 기록하고 연합하라'는 포스터의 글이 붙었다. 장곡면의 마을을 하나로 만들고 있는 느낌이 연합에서 강조되는 듯 했다.

안내를 받고 들어간 곳은 센터의 도서관처럼 가운데 공간은 교육이나 모임 등을 할 수 있게 책상이 있고, 좌우 양쪽 서가엔 다양한 책들이 꽂혔다. 마을에 살면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담당자로부터 농업과 돌봄, 마을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화면과 설명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 마을사람들과 일상을 함께 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다.

농업+돌봄+마을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

장곡면은 청양과 예산을 경계로 그 사이 맨 끝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그 안에 32개의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홍성읍까지는 차로 30분이 걸린다. 마을은 65세 이상 노인인구 50%가 넘을 정도로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젊은 층에 의한 발전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

이곳은 작년 2023년 기준으로 아이 2명이 출생하고 사망이 70명이었단다. 누군가 마을로 새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마을은 어떻게 존재할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젊은이들은 마을을 떠났다. 농촌인구가 줄고 차츰 아이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자, 학교는 본교에서 분교, 분교에서 폐교로 이어졌다.

마을엔 나이 60대가 여전히 마을의 막내인 경우도 많다. 그동안은 마을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마을일을 해왔던 게 당연했지만, 막상 내가 보살핌을 받을 나이가 되면 누가 보살펴줄 것인가.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살던 마을을 떠나 자식들이 사는 도시나 요양원으로 간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이다. 농촌 지역 노인 자살률은 도시보다 약 1.5배 높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어르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일어난다.

마을에서 고독사가 발생하자 부녀회에서는 자발적으로 내가 지은 먹거리와 품을 내어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반찬배달을 했다. 동네 할머니들에게 농사 소일거리를 나누고 정성으로 차린 밥상을 대접하는 농장, 주민들이 함께 모여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이웃마을 할머니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농장에 초대해서 같이 꽃도 가꾸고 요리활동을 했다.

마을엔 언젠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치매예방, 원예복지 교육을 받은 젊은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 주변 이웃들을 만나고 돌보는 활동을 당연스레 해왔다. 하지만 어떤 때는 돌봄에 드는 자원이나 비용이 몇몇의 희생이나 봉사하는 사람에게 부담이 됐다. 함께 해오던 일들이 개인 사정으로 중단되는 경우도 있었다.

마을과 농장 단체들은 그동안 자발적으로 해오던 돌봄활동을 서로 공유하고 지지하는 얼개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몇몇 농장과 마을 리더들이 모였다. 그렇게 2020년 '장곡면 사회적농업네트워크'를 꾸리게 됐다.

사람들이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마을. 노인들이 아프고 병이 나면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모시고 가거나 요양원에 들어간다. 그동안 노인들은 신체적인 죽음보다 사회적인 죽음이 더 많았다. 그 지점이 바로 농업과 돌봄, 마을이 만나게 된 첫걸음의 시작이었다.

나이가 들고 몸이 좀 불편해도 '돌봄'을 받고 마을에서 활동할 수 있거나, 마을에 살면서 마실가듯 이웃이 서로 모여 일하고 밥도 같이 해먹고 즐거운 시간으로 하루가 채워진다면 어떨까.

장곡면에서는 2019년~2020년, 2030 발전계획수립 현장연구 제안이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농촌주민들이 바라는 농촌마을 공론장이 생겼다. 마을에 펼침막을 걸고 이장들은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을의 문제가 내 문제라는 걸 실감했다. '일만하면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도깨비가 된다'는 뜻의 <일소공도협동조합>은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주민과 공무원, 연구자 등이 총 일곱 번 모였다.

그럴 때마다 한 번에 주민 60~70명씩이 참여하며 공동학습회를 열고 핵심리더와 그룹인터뷰, 주제별 간담회, 종합토론회를 거쳐 '장곡면 2030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주민들이 나서서 지역의 미래를 그리다

▲ 행복농장 가는 길 ⓒ 한미숙


농업과 돌봄 마을이 만나는 과정을 살펴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행복농장'의 개소식을 시작으로 실사구시를 토대로한 자연구시(自然求是)를 시작했다. 대상자는 만성정신질환자들이었다. 농장의 독립적 운영을 목표로 시설하우스에 꽃모종, 허브, 멜론, 미니토마토, 상추 등을 채택해 심었다.

정신과외래진료 청소년과 장애인가족 텃밭활동 등 돌봄 프로그램을 이때부터 진행했다. 협동조합 등록과 자연구시 참가자 고용과 인턴십등 치유형 농업체험 비즈니스 모델기반을 구축하는 사업진행이 이어졌다. 따라서 농장작업장, 요리실습장, 브랜드개발 등 다양한 대상의 돌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했다.

'한국의 농업현실과 사회적농업'세미나를 개최하면서 마을경관조성사업 준비모임을 시작하는가 하면, 돌보는 농부학교를 운영하고 '장애,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주제로 돌봄농업 연수세미나를 개최했다. 행복농장은 농업활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게 돌봄·교육·고용 등을 제공하는 사회적농업의 거점농장으로 선정되었다.

지역의 필요로 주민의견을 수렵하고 공론장을 만들며 조직하고 '마을의제'로 만들어서 총회로 띄우고 행정에 요청한다. 이렇게 만나서 하다 보니 주민들은 자치회를 인식하고 직접 경험했다. 책임과 권한을 나누는 일, 그렇게 함께 해야 조금이라도 같이 하게 된다.

장곡면은 농림부공문의 농촌돌봄 마을공모에 선정되었다. 그 선정은 이미 마을에서 이런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마을의 당면한 우선순위에 세부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지역 스스로 미래를 설계했다는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장곡면의 사회적농업협동조합사례를 듣고 잠시 질문이 오갔다. 담당자는 농촌의 상황이긴 하지만 대전의 유성지역에서도 접수해봐야 할 돌봄과 참여가 가능한 사회적농업기업, 마을기업, 자활, 자립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남천나무 붉은열매 뒤로 황금들녘이 널리 퍼져있다. ⓒ 한미숙


돌아가는 시간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비맞은 남천나무 열매가 더 붉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장곡면에서 보고 느끼고 체험했던 시간들. 아기 울음소리가 귀해지고 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 대다수 농촌이 처한 심각한 현실이다.

도시의 미래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발전을 위해 지원만 기대할 게 아니라 주민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사례를 통해 모두가 함께 좋은, 연합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호혜(互惠)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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