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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온 사람들, 인정 투쟁 넘어 신뢰 투쟁으로

[탈북, 환대와 냉대 사이⑥] 개인의 '다름'에 대한 끊임없는 타자화

등록|2024.10.31 11:56 수정|2024.10.31 12:16
온전한 시민이 되려면

한국 사회에서 북향민들이 온전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인정 투쟁(recognition struggle) 외에도 신뢰 투쟁(Trust struggle)을 거쳐야만 한다. 인정 투쟁은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가 소개한 이론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과정은 타인과의 상호 인정, 즉 타인과의 투쟁을 통해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신뢰 투쟁 개념은 인정 투쟁에 빗대어 내가 만든 개념이다. 인정 투쟁을 존재의 가치와 사회적 인정의 범주로 본다면, 신뢰 투쟁은 존재의 정체성 증명 그 자체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야 모든 사람이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탈북'이라는 정체성을 일종의 비(非) 시민으로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이 존재한다.

앞선 연재 기사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듯이 보수를 옹호하는 북향민들은 인격적 공격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만, 민주나 진보를 지지하는 북향민들은 '빨갱이, 간첩' 같은 인격적 비난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북향민은 아직까지는 비(非) 정치적 시민으로는 환대를 받겠지만, 정치적 시민으로는 환대를 받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이 북향민들까지 구속하는 셈이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여전히 적대국으로 대결 중에 있는 분단 체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여론조사에서 북향민에 대한 호감도가 조선족보다 낮은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우선 북향민들은 동포이기 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적대국에서 왔기 때문에 사상과 신분에 대한 검증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아무리 국정원에서 간첩이 아니라는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고 하더라도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심리적 경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혹시 간첩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그들이 북한 정권을 강하게 비난하는 이유

따라서 북향민들은 인정 투쟁과 더불어 "북한에서 왔지만 간첩도 아닌, 믿어도 안전한 사람"이라는 신뢰를 끊임없이 줘야 한다. 이것이 신뢰 투쟁이다. 북향민들이 유독 보수적인 목소리만 내거나 북한 정권을 강하게 비난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북한 체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람들에게 강력한 신뢰를 주는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태영호 의원이 전당대회로 전국을 돌며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불필요했을 사상 검증이자 자기 검열이다. 나는 태영호 의원을 비롯해 강경한 보수적 목소리를 내는 북향민들의 심리적 부담이 어느 정도는 이것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 2016년 12월 27일 태영호 전 주영국북한대사관 공사가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통일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망명 소감 등을 담은 글을 낭독한 뒤 "통일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체제 경쟁의 증표로 호명되는 북향민들

물론 나는 그들의 주장에 다 공감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정치적 동기에 대해서만 이해할 뿐이다. 그럴수록 북향민들이 더욱 이데올로기 체제 경쟁의 증표로 끊임없이 호명되고 이용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있다 보니 보수에 선 북향민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환영을 받지만 그 반대편 즉, 진보에 선 북향민들은 냉대를 넘어 '종북'으로, 다시 '간첩' 취급을 받기도 한다. 나더러 "비전향 탈북자"라고 댓글을 단 사람의 심리적 경계심도 바로 이와 비슷하다. 한국 사회도 여전히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이러니 통일은 멀고도 험한 길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 생활 20년 동안 정치적 시민으로 살면서 통일을 사유할수록 통일은 요원하다는 답을 얻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통일에 대한 논쟁은 지식인들의 담론으로만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다. 오늘날 통일 담론에는 '국가'만 있고 '개인'은 없다. 분단이 만든 폭력은 각 개인들의 '다름'에 대한 끊임없는 타자화에서 발현되고 있다. '사람의 통일'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그런데 우리가 이토록 외치는 통일에 사람이, 주체적 개인들의 서사가 없다. 사상 검증과 자기 검열만이 있을 뿐이다. 사유(思惟)가 없는 통일은 일방적 약탈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내가 제도정치를 넘어 사람의 통일을 위한 통일 인문학을 고민하는 이유다.

/조경일 작가(피스아고라 대표)
덧붙이는 글 필자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아오지 출신이다.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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