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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 비자로 전락'한 계절근로자 정책, 제도 개혁 시급"

이주인권단체들 '인신매매, 임금착취' 문제 엄중수사촉구

등록|2024.10.31 17:25 수정|2024.10.31 17:43
지난 30일 이주인권단체들이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한국 농어촌의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겪는 심각한 인권침해와 임금 착취 문제를 지적하고, 브로커 개입을 근절할 수 있는 법적 보호장치 마련과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 외국인 계절근로자 인신매매 임금착취 규탄 기자회견 ⓒ 이건희


한국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계절근로자 제도는 국내와 해외의 기초지자체가 업무 협약(MOU)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농어촌의 단기 인력으로 초청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파종기와 수확기 등 계절적으로 단기간 발생하는 농어촌의 인력 난 해소를 위해 2007년부터 법무부가 운영하고 있는 제도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는 외국인고용허가제에 비해 한국어능력시험을 요구하지 않는 등 상대적으로 완화된 심사 요건 및 감독 하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인력 수급이 필요한 국내 기초지자체와 노동자들을 해외로 송출하려고 하는 해외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해마다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법무부는 2023년에는 4만 명을, 2024년에는 약 4만 6천 명을 각 지차체에 배정하였다.

법무부 지침에 따르면 공정성 확보를 위해 기초지자체는 근로자 모집·선정·송출 등의 중요 업무를 위임하지 않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여야 하고, 해외 지자체 역시 중요 업무를 주도적으로 관여해야 한다. 사인이나 단체의 개입은 통역·인솔 등 보조 업무 수행에 한하여 허용하고 있다. 사인이 근로자 모집, 선정·송출 등 중요 업무를 위임하거나 관련 대가를 주고 받는 등의 행위는 중대 위반 사항으로 업무 협약(MOU)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공공성? 현실은 '임금착취, 인권침해'

하지만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계절근로자 수요와 달리 국내 기초지자체는 계절근로자 모집·선발·송출 과정에 대한 관리·감독을 해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하여 노동자들은 불법적 중개 수수료와 임금 착취 등 각종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법무부가 송출 인프라가 부족한 지자체에 제도 운영을 맡겨 브로커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며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년 동안 브로커 없이 이주노동자를 합법적으로 채용하는 '고용허가제'라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송출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지만, 그럼에도 '고용허가제'도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가 운영하는 계절근로자 제도는 차원이 다릅니다. 브로커 비용과 임금착취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한국의 중앙인신매매피해자권익보호기관에서 최근 5명의 계절근로자에 대한 인신매매피해자 확인서를 발급해 주었습니다. 인신매매 피해자를 양산하는 이 제도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합니다."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 '착취를 목적으로 모집, 이동, 인계는 인신매매'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 따르면 착취를 목적으로 협박·강제 납치· 사기·기만 혹은 권력의 남용 등의 수단에 의해 사람을 모집·이동·은닉·인계하는 것을 인신매매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 국회가 비준한 이 의정서는 2015년 12월 5일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다.

▲ 외국인 계절근로자 인신매매, 임금착취 규탄 기자회견에 참가한 피해자들 ⓒ 이건희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이주노동자들은 필리핀에서 계절 노동자로 선발된 후 브로커에게 '출국 전 대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한국에 갈 수 없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피해 노동자는 한국에 도착한 후에도 브로커 계좌로 급여의 일부를 송금하도록 강요 받았으며 이를 거부할 경우 강제 귀국할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는 한국에 와서 통역사들에게 부당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통역사들은 도움을 주지 않았고, 고국에 남아 있는 가족이 협박을 받기도 했다며 고통을 토로했다.

고용노동부가 시행하는 외국인력 도입정책인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브로커를 거치지 않고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되지만, 법무부가 운영하는 계절근로자제도는 별도의 공적 송출 시스템 없이 지자체에 운영을 맡기고 있어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전문가와 피해자들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김종철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는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이 제도로 인해 계절근로자들이 착취 당하고 있으며, 인신매매 피해자가 발생한 점은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이런 인신매매는 단순히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법무부는 계절근로자 제도를 '공공형'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계절근로자 제도는 현재 모집과 송·출입이 완전히 사적인 시장에 맡겨져 있는 그래서 브로커가 활기 칠 수밖에 없는 심지어는 브로커가 모집과 송출을 위탁받은 제도로 한마디로 좌초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폐지된 산업기술연수생 제도의 부활?

17년 전 사회적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이미 폐지된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제도의 부활을 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소장(전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은 출국 전에는 허위 대부 약정서 작성, 연대보증인의 지불 약정, 입국 후 여권 압류, 급여 강제 자동이체, 이탈한 노동자에 대한 SNS 현상금, 허위 이탈신고 등 현재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입고 있는 피해는 가히 현대판 노예제라고 국내외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던 산업기술연수제의 부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공공성 관철과 근본적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계절근로자 제도의 법제화, 브로커 개입 근절을 위한 전담 기관 설립, 투명한 정보 공개 및 감독 체계 강화를 요구했다. 또한 제도적 결함을 통해 노동자를 착취하는 민간 브로커의 개입을 막기 위해 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인신매매피해자권익보호기관에서 계절근로자들이 '인신매매피해자'로 확인되고 있는 만큼, 이런 피해가 발생한 운영 지자체, 기관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인신매매 피해 이주노동자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체류 자격 변경과 향후 계절근로자 제도 참여 보장도 촉구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농어촌의 인력난을 해결하려는 제도가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형태로 변질 되었다'며 정부와 법무부의 책임 있는 제도 개혁을 요구했다.

▲ 법무부, 외국인 계절근로자 조기적응 프로그램(법무부 보도자료 갈무리) ⓒ 법무부


지난 2022년 11월 법무부는'외국인 계절근로자 인권보호 강화에 나선다'며 법무부가 계절근로자 제도 송·출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인권 침해 피해 식별지표'를 통해 입국 및 체류 단계별로 진단한다고 밝혔다. 이는 법무부가 송출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비리, 착취 문제를 분명히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2024년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계절근로자 인권 침해 문제 예방을 위해 '현장 밀착형' 조기 적응 교육을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브로커만 배불리는 제도, 이번엔 개선될 수 있을지 주목

이주노동자 송출 비리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미 20여 년 전에 경험한 바 있다. 수십 년 전 문제를 경험했음에도 정부가 이 제도를 브로커만 배 불리는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현실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주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계절근로자 제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경우 한국 농어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인권 침해 문제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계절근로자 제도의 문제점이 다시 한번 제기된 가운데, 법무부와 경찰, 기초지자체가 어떤 대응을 내놓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이건희 기자는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함께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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