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30% 감축 의무화? 한국 감내할 수 있어" 석유화학 전문가의 주장
[인터뷰]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대외협력본부 본부장
오는 11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 한국 부산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를 위한 마지막 회의(INC-5·이하 5차 회의)가 열립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국제협약의 최종안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현재 국제사회는 개최국으로서 한국에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있습니다.정작 한국에서는 '산업 피해 대 환경 피해'·'재활용 대 감축' 등 플라스틱을 두고 날 선 대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일부 쟁점에 매몰돼 플라스틱으로부터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그리니엄에서는 한국 사회의 이러한 대립 구조를 해소하고, 합리적이며 생산적인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 다양한 인터뷰를 기획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각계의 목소리를 듣고, 보다 나은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합니다.[기자말]
▲ 플라스틱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마지막 회의가 다가온 가운데 그리니엄은 지난 25일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대외협력본부 본부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 그리니엄
"10월 31일은 '화학산업의 날'이다. 그날 한국석유화학협회 이름에서 '석유'를 지울 예정이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대외협력본부 본부장은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앞둔 협회의 비전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리니엄은 지난 25일 서울 한국석유화학협회 사무실에서 김 본부장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기존 석유계 화학산업의 틀에서 벗어나 저탄소·친환경 화학산업을 선도하겠다는 의미라고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재생·바이오플라스틱 산업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는 설명입니다.
그리니엄은 오는 11월 25일부터 한국 부산에서 열릴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이하 5차 회의)'를 앞두고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30여 년간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서 종사한 인물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산업계 또한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환경문제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나아가 중국발 플라스틱 공급과잉으로 장기불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업계 역시 저탄소·친환경 플라스틱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그는 피력했습니다.
이에 협약의 세부내용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김 본부장의 설명입니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 폐기물의 3분의 2가 수명 5년 미만의 플라스틱에서 발생했다. 그중 40%가 포장재였다. ⓒ 그리니엄
"부담은 되지만 협약은 필요하다고 본다"
"산업에 부담이 되는 협약이지만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도 중요하다는데 동의한다. 다만, (협약이) 플라스틱 오염 종식에 초점을 둔다면 오염이 어디서 유발되느냐를 먼저 보자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협약의 필요성에는 원론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플라스틱 오염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 이유로 크게 2가지 문제를 짚었습니다.
첫째, 대부분의 플라스틱 오염이 포장재에서 유발된다는 것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 폐기물의 3분의 2가 수명이 5년 미만인 플라스틱에서 발생했습니다. 그중 40%가 포장재였습니다.
둘째, 플라스틱 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은 개발도상국의 관리 부재로 인한 유출이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입니다. 이와 관련한 연구도 있습니다. 올해 9월 영국 리즈대에 따르면, 세계 10대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국 중 러시아를 제외한 9곳이 모두 개도국이었습니다.
즉, 플라스틱 포장재를 감축하는 동시에 개도국에 재정 지원과 기술 이전을 강화하면 플라스틱 오염은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 김 본부장의 주장입니다.
"사실 24%만큼 생산 감축에 동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민단체는 전체 플라스틱의 75% 감축을 말한다. 포장재 40%, 폴리머 원료 30%, 우려되는 폴리머 5%, 그렇게 75%다. 근데 (플라스틱을 감축하기엔) 대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협약의 최대 쟁점인 '생산감축'에 대해 김 본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장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생산감축 75%란 수치는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75%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제시한 수치입니다. 그린피스는 2040년까지 플라스틱 생산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여 최소 75%까지 줄일 필요성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적어도 대안이 존재하고 공감대가 높은 포장재에 대한 감축 필요성은 공감한다고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주 오염원인 일회용 플라스틱을 포함한 포장재에 대해서는 (산업계도) 동의하고 감내할 수 있다. 전체 석유화학 수요의 60%가 플라스틱이고, 그중 40%가 포장재다. 60%의 40%를 계산하면, (포장재 감축은) 사실 24%만큼 플라스틱을 생산감축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다."
김 본부장은 협약 또한 일회용 플라스틱과 포장재로 범위를 좁혀서 합의를 해 나가는 것이 현실 가능한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려 화학물질 규제 등은 추가적인 과학적 검증을 통해 검토하고 도입해 나가자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추가로 확인한 결과, 전체 석유화학 수요에서 플라스틱의 비중은 44%로 확인됐습니다. 플라스틱 중 포장재 수요는 44%로 파악됐습니다. 종합하면 포장재 감축으로 가능한 실질적인 플라스틱 감축량은 약 19%로 추정 가능합니다.
▲ 석유화학 생산량 중 플라스틱 제품 수요가 44%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플라스틱 생산량에서 포장재 비율이 44%였다. ⓒ 그리니엄
"플라스틱 75% 감축이 오히려 탄소감축에 역행할 수 있다"
김 본부장은 인터뷰 전반에서 플라스틱 전체를 문제시하면 안 된다는 말을 여러 차례 역설했습니다.
"플라스틱이 사회경제적으로 유용성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플라스틱을 75% 감축하게 되면 자동차 경량소재, 건물 단열재 등 탄소 감축을 돕는 소재 모두 다 줄이자는 얘기다."
그는 플라스틱 자체가 상아 등 천연소재를 대체하기 위해 탄생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오늘날 플라스틱 수요를 금속·유리·목재·면화로 대체하면 전 세계 산림자원과 식량자원이 모두 고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탄소감축을 위해서도 플라스틱의 역할이 크다고 김 본부장은 역설했습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동차를 들었습니다.
지난해 미국화학협회(ACC)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2~2021년) 차량 내 플라스틱 부품 사용량은 16% 증가했습니다. 덕분에 차체 중량이 줄어들면서 연료효율성이 개선되고 배출량이 줄었다는 것이 협회의 분석입니다.
김 본부장은 "자동차를 이전처럼 모두 금속으로 만들면 오히려 탄소배출에는 역행하는 일"이라고 피력했습니다. 따라서 "(플라스틱을) 써야 한다면 현명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다만,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자동차나 비행기 날개 등에 들어가는 플라스틱을 규제하려는 것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자동차 부품에 들어가는 일부 플라스틱 소재는 플라스틱 해양오염의 주요 원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0% 감축 의무화, 한국은 감내할 수 있어... 문제는 중국·인도"
김 본부장은 플라스틱 생산감축 논쟁이 산업계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내비쳤습니다.
강력한 생산감축 의무화를 통해 플라스틱 공급과잉 해소 시점을 앞당길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전망입니다. 현재 세계 플라스틱 시장은 중국 내 생산시설 급증으로 2030년까지 공급과잉이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한국은 (공급과잉으로) 공장을 못 돌리는 상황"이라며 "30% 감축을 의무화해도 사실 감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이같은 구상의 한계도 지적했습니다. 중국·인도를 비롯한 개도국 다수가 플라스틱 규제에서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 원칙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CBDR 원칙은 역사적으로 책임이 큰 선진국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개도국이 플라스틱 국제협약 협상에서도 CBDR 원칙을 요구하고 있다고 김 본부장은 상황을 전했습니다. "한국이 30% 감축을 감내해도 개도국이 CBDR을 근거로 계속 생산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개도국도 함께 이행한다는 전제가 중요하다고 김 본부장은 강조했습니다. 특정 시점부터 신규 생산시설을 금지한다면 환경에도 도움이 되면서 한국 석유화학 업계로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재생·바이오플라스틱? 문제는 국내 시장이 없다"
한편, 국내 플라스틱 대응 정책에 대해 김 본부장은 그간 정부의 재생·바이오플라스틱의 시장 창출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2022년 '한국형(K)-순환경제 이행계획'을 통해 지난해부터 플라스틱 제조업체의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했습니다. 예를 들어 페트(PET) 기준 연 1만 톤 이상 생산업체는 재생원료를 3% 이상 생산해야 합니다.
여기서 김 본부장은 원료 생산자에게만 재생원료 사용 의무가 부과됐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로 인해 소비처인 식음료 기업에서 굳이 고가의 재생원료를 구입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그는 토로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환경부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논의 역시 이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재생원료 초기 시장 창출을 지원하기 위해 ▲재생원료 의무사용 제도 ▲재활용 지원금 등이 거론됐습니다. 그는 환경부 등 정부부처와의 협의는 거의 끝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후테크 전문매체 그리니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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