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으로 거짓을 덮는 정권, 국민이 그리 우습나
[取중眞담] 대통령실 윤 대통령·명태균 통화 해명, 오히려 '거짓말' 확인시켜줬다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2년 9월 19일(현지시각)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 그랬다."
아슬아슬하던 차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대통령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2년 전인 2022년 6.1 재보궐선거 이야기다. 당 공천관리위원회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특정인의 공천을 지시했다고 자백했다. 빼도 박도 못하는 공천 개입이다. 국정농단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천 개입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게 한 당사자가 윤 대통령이니 누구보다 뭐가 문제인지 잘 알 것이다.
경선 이후 연락한 적 없다더니... "기억한다"란 단어의 의미
그런 와중에 언제나 그랬듯 대통령실이 해명이라고 낸 입장문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대통령의 목소리가 공개되고 불과 2시간 만에 나온 입장문은 "윤 대통령은 공천 관련 보고를 받은 적도 지시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통화한 내용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고, 명씨가 김영선 공천을 계속 부탁하니까 좋게 얘기해준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전직 대통령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받게 했던 공천 개입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을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라면 도대체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기세등등한 당선자가 굽신굽신 '좋게 얘기해줘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해명을 그대로 믿어준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대통령실은 지난 9월 명태균씨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경선 막바지 국민의힘 정치인이 명씨와 거리를 두도록 조언해 이후 대통령은 명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고 말했다. '기억한다'는 말로 봐 윤 대통령에게 확인해 본 게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임이 명백하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은 2021년 11월 5일 끝났고 이 통화는 2022년 5월 9일이다. 경선 이후 문자나 통화를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더니 그 6개월 후까지 연락해온 게 아닌가.
당시 입장문에서 명씨와 통화한 사실이 "없다"가 아니라 "없다고 기억한다"고 한 것을 보고 뭔가 개운하지 않았다.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거짓말이 드러날 때를 대비했던 거 아닐까. 과연 검사 출신 대통령답다.
도이치 주가 조작 관련 거짓 해명도 금방 들통
▲ 김건희 여사가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에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근무자와 함께 '생명의 전화'를 살펴보며 대화하고 있다. 2024.9.10 ⓒ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의 거짓해명은 이 뿐이 아니다. 지난 10월 25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도이치모터스 관련해서 (김 여사 모녀가) 23억 가까이 벌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 여사와 어머니 최은순씨가 주가조작으로 23억 원을 벌었다는 것은 2022년 '문재인 정부' 때 검찰 수사팀이 한국거래소 심리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1심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 불과하고, 1심과 2심 재판부는 그에 기반한 수익은 '산정이 불가하고, 시세 조정 행위와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후 전후관계를 살펴보니, 당시 한국거래소에 심리분석을 의뢰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이었지만, 재판부에 의견서를 낸 것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7개월이 지난 그해 12월이었다.
더구나 의견서를 낸 반부패수사2부에는 국정농단 사건 피의자이자 증인인 장시호씨와 재판 중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의혹을 받아 국회로부터 탄핵 발의된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당시 반부패수사2부 부장검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대표적인 '친윤 검사'이기도 하다.
이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삼는 게 '전 정부탓'이지만, 너무 세게 휘둘러 뒤통수를 때린 셈이다.
대통령실이 '수익 산정이 불가하고, 시세 조정 행위와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재판부도 김 여사의 재판부가 아니고 다른 공범들의 재판부였다.
▲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 개막식'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임기 5년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고 하더니...
윤석열 정부 임기 반환점을 코앞에 둔 지금, 숨겨져 왔던 정권의 추악한 면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폭로가 폭로를 낳고, 이를 막기 위한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있다. 그러면서 행간에 숨길 수 없는 진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 안엔 나라와 국민을 졸로 보는 대통령 부부의 민낯이 엿보인다. 자신의 행동이 범죄가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검사 출신 대통령은 버젓이 범죄를 저질렀고, 대통령 머리 위에 앉은 부인은 누가 보든 말든 달콤한 '영부인 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자신을 키워준 당시 대통령을 향해서 "임기 5년 대통령이 뭐가 대단하다고. 하는 거 보면 너무 겁이 없다"라고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관련 대책을 요구하는 한동훈 대표와 면담한 뒤 속이 상했는지 이튿날 부산 범어사에 가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며,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고 그냥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거냐'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던 그말. 그런데 이제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국민을 우습게 알았던 그 업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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