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가방에는 담배, 아빠는 실직... 이 가족이 사는 법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34] 영화 <맞담>
▲ 영화 <맞담>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공간은 영화에서 의미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탐미적인 부분에 대한 역할을 맡거나 인물을 위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의 작품에서 최소한으로 제한되는 경우를 만나게 되는 일은 드물다. 배경에 변화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은 인물의 동선이 억제된다는 의미이며, 이는 극의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부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2018)은 놀라운 작품이었다. 밀실을 배경으로 하지는 않았으나 많은 등장인물을 한정된 공간 안에 늘어놓으면서도 극의 볼륨을 제대로 쌓았다.
영화 <맞담> 역시 공간을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공간에서 오롯이 극을 쌓아 올리고 있는 작품이다. 수험생인 딸 승희(유은아 분)의 집이 무대가 된다. 엄마 선영(강지원 분)의 생일날 딸의 가방에서 발견된 담배를 둘러싼 작은 소동극. 김준형 감독은 이 단순하면서도 소소한 이야기를 두고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는 가족의 보편성을 스크린 위에 그리려 한다.
02.
"맨날 이런 식이야. 둘 중의 한 명이라도 날 믿어줬으면 이런 일 없잖아."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동력은 점진적으로 커지는 사건의 크기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물 사이의 갈등이다. 사건이 덩치를 키워가는 지점의 문제는 인물이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먼저 내놓기에 바쁘고, 그로 인해 마찰이 일어나면서 발생한다. 이 영화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 갈등의 원인을 찾는 일이어야 하는 이유다. 표면적으로는 신과 신 사이에 놓이는 몇 번의 장면, 딸 승희의 말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느끼기에 부모는 자신을 믿기보다 의심을 먼저 하는 쪽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담배와 같은 물건을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는 수험생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엄마는 물론, 중재하려던 아빠 민혁(장정식 분) 역시 사건이 커지는 과정에서 엄마 쪽에 함께 선다. 문제는 담배가 담배가 아닌 대마초로 의심되는 상황이 펼쳐지면서다. 어느 쪽이라도 먼저 딸이 왜 이런 물건을 습득하게 되었는지, 신변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물어봤다면 쉽게 해결되었을 문제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해 영화는 상황을 촉박하게 밀어붙인다.
딸 승희의 태도에도 갈등을 유발할 문제는 분명히 있다. 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한 엄마의 추궁에 사실을 이야기하거나 잘못을 고백하는 방식이 아닌 자기 가방을 왜 뒤졌나는 강 대 강의 태도로 맞불을 놓는다. 엄마 선영이 제기한 문제에서 벗어나는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대응은 한번이 아니라 이후에도 반복된다. 남자 친구가 담배를 준 건 아니냐는 의심에 핸드폰은 또 왜 몰래 훔쳐봤냐고 화를 내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갈등이 되는 담배를 가방 속에 넣어둔 사람은 승희 본인이다.
▲ 영화 <맞담>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3.
"그걸 제일 먼저 물어봤어야지 왜 혼부터 내냐고."
담배가 대마초로, 대마초로 추정되는 담배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불을 붙이는 아빠의 중독까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영화는 처음에 놓인 사건을 점차 키우는 형태로 극을 이끌어간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덩치를 키워낸 다음에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다른 주제로 시선을 옮기며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방식이다. 대마초에 중독된 아빠가 갑자기 대뜸 회사에서 잘린 사실을 가족 앞에 털어놓으며 이제 문제는 딸의 담배가 아닌 아빠의 실직이 된다. 영리한 전환이다.
가족의 문제가 어느 하나의 당사자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라도 하듯이 영화는 딸과 아빠의 문제에 이어 엄마에게도 연약한 면을 투영한다. 거세게 딸을 몰아붙이던 엄마가 아니라 자신을 책망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모습이다. 실제로 어떤 상황을 마주한 다른 두 인물에 비하면 다소 약하게 여겨질 수 있는 문제이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엄마 선영의 문제가 가장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상황의 문제는 곧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책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특히 이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는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지나온 과거 시간 속에서 역할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다.
▲ 영화 <맞담>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4.
모든 과정을 지나 이 가족이 도달하게 되는 장소는 화해와 회복의 자리다. 그 장면이 조금 생소하기는 하다. 거실에 둘러앉은 세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담배를 피운다. 맞담이다. 이제 세 사람은 말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 사는 이야기만 하다 보니 진짜 해야 하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고.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치고받고 싸워야 한다고. 겉으로 사이 좋아 보이는 가족이 되기 위해 가식을 떠는 일보다 서로를 조금 아프게 하더라도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뜻처럼 느껴진다. 담배를 피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게 필요한 일이라면, 하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지루함을 느끼는 관객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카메라의 움직임을 동적으로 가지고 간다던가, 주요한 상황에서 주밍(zooming)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이 부분을 극복하고자 한다. 시각적 변화를 통한 단조로움의 상쇄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갈등이 고조되는 극의 톤 앤 매너에도 정확히 어울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의미심장하다. 가족 내부에서 합의된 상황이 과연 외부에도 통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 엔딩에 이르기까지 극을 쉽게 닫지 않으려는 감독의 성실한 태도가 돋보이는 마무리다.
덧붙이는 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운영 중인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는 2024년 2월 15일(목)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 92편(장편 22편, 단편 70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열여덟 번째 큐레이션인 '모서리에서 만난 우리'는 11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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