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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에 현수막 210여 개가 걸린 까닭은?

분수 설치 두고 양분된 시민들... "호수 풍경 해쳐" 관광객들 지적도

등록|2024.11.05 17:40 수정|2024.11.05 17:40
경포호가 최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호수 주변 4.3km 구간에 무려 210여 개의 현수막이 걸리며 행사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가 경포호 수질 개선 등을 목적으로 대규모 인공분수 설치를 추진하면서 찬성하는 단체와 주민들이 환영의 플래카드를 내건 것이다.

호수 주변 길가에 내걸린 현수막분수설치를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길거리에 내걸려 있다(2024/11/2) ⓒ 진재중


경포호수 현수막분수대 설치를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호수입구에서부터 내걸려 있다(2024/11/2) ⓒ 진재중


경포호에 걸린 현수막경포호수 분수 설치를 환영하는 플래카드(2024/11/2) ⓒ 진재중


2일 경포호 현장에 내걸린 현수막의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대부분 인공분수 설치를 환영하는 문구들로 가득했다.

"경포호 분수 설치는 강릉시민의 생존권"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에는 인근 상인들의 절실한 기대와 희망이 담겨 있다. 현수막을 내건 단체들은 인공분수 설치가 수질 개선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은 현수막에 적힌 문구들이다.

명승지 '경포호'에 다시 찾게 하는 분수 설치!
경포호 분수 설치로 다시 태어난다.
20년 만에 다시 오는 볼거리 제공에 기회를 살리자.
소득증대 분수 설치 시민들은 갈망한다.
주민이 죽어야 분수 설치 되는가,
음악과 스토리가 흐르는 경포분수,
경포주민의 생존권을 철새에게 뺏기지 말자,
경포호 환경개선사업 분수 설치, 적극 찬성합니다.
지난 세월 30년 아무것도 못했다, 분수 설치 찬성한다.
수질도 개선하고 분수도 설치하여 제일 경포 만듭시다.

경포호수에 내걸린 현수막분수 설치를 환영하는 경포번영회가 내건 현수막(2024/11/2) ⓒ 진재중


▲ 경포호에 내건 플래카드(2024/11/2) ⓒ 진재중


▲ 경포호수에 내걸린 현수막(2024/11/2) ⓒ 진재중


일부 상인과 단체들은 분수 설치를 반대하는 단체를 겨냥해 경고성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를 본 시민과 관광객들은 현수막이 강렬하고 섬뜩한 인상을 준다고 전했다.

분수 설치 반대단체 20년 전에도 반대, 지금도 반대, 왜!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쓰레기 단체 치우자.
평생 반대만 하는 단체는 사라져라,
분수 설치 반대하는 단체, 고따구로 살지 마라.

▲ 분수 설치를 반대하는 단체에게 보내는 현수막(2024/11/2) ⓒ 진재중


▲ 분수대 설치 반대한 단체에게 보내는 메시지(2024/11/2) ⓒ 진재중


▲ 분수설치 반대하는 환경단체에게 보내는 현수막(2024/11/2) ⓒ 진재중


호수 주변에 걸린 환영 현수막들로 인해 경포호는 마치 플래카드 전시장처럼 보인다. 벚나무 사이사이에 걸린 현수막들은 호수 경관을 가리고 있으며, 시민들은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현수막으로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호수에서 운동을 하던 최광철씨는 "경포 호수에 지역 경기와 관광 활성화를 위해 분수를 설치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현수막으로 강릉 시민들이 나뉘는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당부한다.

경포호를 매일 걷는다는 강릉 시민 B씨는 "경포호는 강릉의 얼굴인데, 이런 모습을 관광객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데, 왜 외지에서 온 여행객들까지 나쁜 인상을 받게 합니까?"라며 분노를 표했다.

▲ 호수도로변에 내걸린 현수막(2024/11/2) ⓒ 진재중


▲ 분수대 설치를 환영하는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2024/11/2) ⓒ 진재중


호수를 찾은 관광객들도 곳곳에 걸린 현수막을 보고 의아해했다.

서울에서 온 김형섭(69)씨는 "중요한 사항은 공론의 장을 통해 해결하면 될 텐데, 왜 관광객이 찾는 호수 주변에 이렇게 보기 싫게 설치했느냐"고 지적했다. 함께 온 A씨도 "호수를 보러 왔는데 현수막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적당히 걸어야지, 호수 주변을 도배하듯 설치해 관광지의 이미지를 흐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또 다른 관광객은 "이 현수막이 강릉 경포호의 이미지를 흐려놓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분수를 설치해도 다시 방문하고 싶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강릉시는 관광도시에 걸맞은 도시 미관을 조성하기 위해 6월 3일부터 주요 지역에서 '불법 유동 광고물 청정지역'을 시범 운영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청정지역으로 지정된 장소는 유동인구가 많고 강릉의 관문 역할을 하는 터미널과 강릉역이며 유동광고물에는 입간판, 현수막, 벽보, 전단 등이 있다.

지정 장소에서 적발되면 게시 주체를 불문하고 즉시 철거 및 과태료 부과를 병행할 예정이다.'

호수 주변에 설치된 수많은 현수막이 강릉을 찾는 방문객과 시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아름다운 호수 경관이 현수막에 가려지면서, 시민들은 "이 현수막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경포호는 강릉의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관광 명소로, 자연경관 보호와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한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 경포 호수와 습지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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