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이목은 현재 미국 대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미디어도 선거 지형, 후보들의 정책, 외교적 함의 등 미국 대선에 대한 여러 분석을 내놓고 있는데요. 애정클은 기본적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미국 대선에 민주주의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죠.
보수주의자들의 경고: '트럼프는 파시스트'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우려하는 이들의 폭로와 규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트럼프 후보가 '파시스트'라고 비판했는데요. 이러한 발언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를 구성했던 핵심 인물, 심지어 가장 보수적인 성향으로 여겨지는 군 장성 출신들이 비판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토안보부 장관과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존 켈리, 합참의장을 지낸 마크 밀리, 국방장관을 지낸 짐 매티스 등이 포함됐어요.
특히 존 켈리 전 비서실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후보가 히틀러를 동경하는 발언을 자신에게 했다고 폭로했는데요. 그에 따르면 백악관 근무 당시 트럼프가 '왜 당신은 히틀러에게 전적으로 충성한 독일 장군들처럼 될 수 없냐'며 '히틀러는 좋은 일도 좀 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어 켈리는 트럼프에 대해 "극우의 영역에 있고 권위주의자이며 독재자들을 선망한다"라거나, "트럼프가 파시스트의 일반적 정의에 부합한다는 건 확실하다"고 증언했습니다.
켈리가 언론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최근 트럼프의 발언 수위에 심각성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대선 캠페인 막바지에 트럼프 후보는 '내부의 적'(enemies from within)을 자주 언급했어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훨씬 위험하다'며, 최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필요하다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내부의 적들을) 저지해야 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심지어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이라크 전쟁을 주도하고 전쟁 포로들에게 물고문 지시를 내렸던, 네오콘의 핵심 딕 체이니 전 부통령마저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공개지지 했습니다. 트럼프를 '미국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평하면서요.
이들은 왜 '파시스트'라는 극단적인 단어까지 써가며 트럼프 재선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걸까요?
정보의 진실성, 그리고 권력
유발 하라리의 신간 <넥서스>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책의 부제는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입니다. 하라리는 서두에서 '정보'를 이해하는 두 가지 관점을 소개합니다. '순진한 관점'과 '포퓰리스트의 관점'인데요.
'순진한 관점'은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진실에 가까워지고, 진실은 우리에게 지혜와 권력을 가져다준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순진한 관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건 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는 말이 있죠. 정보화 시대는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지만,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 속 가치 있는 것을 골라내는 일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2010년대 이후 '미디어 리터러시'가 화두로 떠올랐던 이유이기도 하지요.
음모론과 허위 정보가 퍼지는 속도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페이스북을 매개로 퍼져나간 허위 정보는 혐오를 부추겼습니다. 인공지능(AI)의 발전도 마찬가지죠.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딥페이크 범죄의 폭증이 그 사례입니다.
하라리는 이어서 정보에 대한 '포퓰리스트의 관점'을 설명합니다. '정보는 곧 권력이다'라고 여기는 시각입니다.
얼핏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하라리의 논점은 이 관점에는 '진실'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포퓰리스트들은 정보의 팩트 여부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극단적으로는 '객관적 진실은 없으며 각자 버전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유일한 실존은 팩트가 아니라 권력이기에, 권력을 얻을 수 있다면 정보가 팩트인지 아닌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라리는 주장합니다.
하라리의 주장은 현재 트럼프와 그의 정치가 상징해 온 바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트럼프에게 정보의 사실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놓고 거짓말과 혐오를 퍼뜨리죠. '테일러 스위프트와 팬들이 나를 지지한다'는 가벼운(?) 거짓말부터 시작해 '2020년 대선은 조작되었고 내가 진정한 승자'라거나 '아이티 이민자들이 미국 주민의 반려묘와 반려견을 잡아먹는다'는 심각한 허위 정보를 퍼트렸습니다.
트럼프 캠프의 핵심 인물로 활동 중인 일론 머스크는 이러한 혼란을 가중하고 있습니다. 머스크는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목하에 2년 전 소셜 미디어 플랫폼 트위터를 인수해 '엑스(X)'로 이름을 바꾸었죠. 이후 거짓 정보 확산을 막기 위한 트위터의 규제를 모두 해제했고, 본인의 계정을 통해 반유대주의, 선거 음모론, 무슬림 혐오 등 근거 없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확산시켜 왔습니다. 머스크 역시 정보의 진위보다 정보의 파괴력을 중시하는 듯합니다.
'대안적 진실'이 지배하는 세상의 대통령
트럼프와 그가 상징하는 정치와 권력의 성격을 가장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있다면 '대안적 진실'(alternative facts)입니다. 이 말은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나왔는데요. 숀 스파이서 당시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취임식에 '역대 최대 규모의 관중'이 몰렸다고 거짓말했습니다. 캘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고문은 이 거짓말에 대한 질문을 받자, '대안적 진실'이라 답했어요.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팀의 조사에 의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기 공식 석상에서 무려 3만 573개의 거짓 정보를 말했습니다. 하루에 21개의 거짓말을 한 건데요.
그중에서도 유명한 거짓말 몇 가지를 살펴보죠. 트럼프는 '오바마는 케냐에서 태어났다'는 거짓말과 함께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현재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도 2020년 부정선거 음모론을 기반으로 합니다. 정당한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다섯 개의 경합 주에 65개의 소송을 제기했으며, 급기야 2021년 1월 6일, 지지자들을 선동해서 초유의 의회 난입 사건을 일으킵니다. 참고로 최근 타운홀에서는 의회 난입 사건 당일은 '사랑의 날'(day of love)이었다고 발언했어요.
이것이 트럼프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유입니다. 민주주의란 사회적 합의의 틀 위에서 서로 다른 의견의 소통과 조율을 통해 이뤄져 갑니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는 늘 변하기 마련입니다. 기존의 정보가 틀렸다고 이야기하려면 그 정보가 사회적 합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쇄할 탄탄한 근거가 필요하고요.
하지만 트럼프는 근거 없는 거짓 정보로 기존의 합의를 모두 무너뜨림으로 대화와 소통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그의 세상은 각자의 '대안적 진실'이 혼재하는, 공론이 아닌 대결만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트럼프의 전염적 반사회성
대통령은 하나의 상징으로 존재하기에, 대통령의 행동과 말은 강한 파급력을 가집니다. 그렇기에 높은 도덕성 또한 요구되는 것이죠.
그런 대통령이 거짓말과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다면, 곧 그러한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동료 정치인, 나아가 유권자와 시민 모두를 감염시킵니다. 그동안 반사회적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정상화됩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공화당을 변화시켰습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의 거짓말과 혐오 발언은 일상화되었습니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D 밴스 상원의원의 발언이 상징적인데요. 지난 9월 토론회에서 트럼프는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시에서 아이티 이주민들이 미국 주민들의 반려묘와 반려견을 잡아먹는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밴스는 트럼프의 실언을 이렇게 옹호했습니다: "아무리 허위 정보라고 해도 그로 인해 소외된 미국인들의 문제에 이목이 집중될 수 있다면, 그러한 허위 정보는 퍼뜨려도 좋다."
2016년만 해도 밴스는 격렬하게 트럼프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미국의 히틀러'라고 불렀죠. 하지만 트럼프가 권력을 차지한 이상 밴스는 변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2022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오하이오주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고, 부통령 후보로 지목될 정도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트럼프 캠프는 토론회 후 실언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주민 혐오에 부채질을 했죠. 그 결과 실제 주민들의 피해도 있었습니다. 트럼프의 극단적 지지자들은 스프링필드시의 거리를 순찰하며 다녔고, 지역 학교들은 30건이 넘는 테러 협박을 받았습니다.
뉴욕 집회: 트럼프 2기가 초래할 일상에 대한 예고편
대선 막바지에 이른 지난 10월 27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트럼프 집회는 그가 권력을 잡은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의 공식 석상에서 뉴스에서도 언급 못 할 비속어와 혐오 발언, 거짓 선동이 난무한 것이죠.
가장 논란이 되었던 발언은 집회 오프닝을 맡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토니 힌치클리프로부터 나왔습니다. 라틴계를 향한 저급한 성적 농담을 비롯해 이런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들이 분노했고, 곧바로 배드 버니, 리키 마틴, 제니퍼 로페즈와 같은 푸에르토리코계 유명인의 해리스 공개 지지 선언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은 히스패닉 인구 중 두 번째로 많은 유권자 그룹입니다.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는 경합 주인 펜실베이니아에도 47만 명의 푸에르토리코계 유권자가 있죠.
이에 트럼프 캠프는 곧바로 힌치클리프의 발언과 거리를 두었지만, JD 밴스 부통령 후보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인종주의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식 석상에서 농담이 되는 곳. 소수에 대한 다수의 비하가 그저 '사소한 것'이 되는 곳.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주민에게 순식간에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곳. 여성 비하적 발언과 욕설이 국가의 공적 무대에서 허용되는 곳. 이것이 이번 집회가 보여준 트럼프 2기 미국의 단면이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대선을 '동전 던지기'에 비유할 만큼, 이번 미국 대선의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해리스 후보가 승리할 경우 트럼프 측이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리란 것은 분명합니다.
이미 공화당 특은 대선 패배에 대비한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공화당이 다수인 조지아 주의회에서는 재검표 절차를 더욱 유연하게 하는 법이 통과되었으며, 그 외에도 정당한 선거 절차를 부정할 여러 전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민주당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대비 중이고요.
가장 기초적인 합의를 선제적으로 거부하고, 거짓을 '대안적 진실'이라 주장하며 혐오를 퍼뜨리는 세력이 미국의 권력을 다시 잡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가에서 사회적 합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면, 전 세계의 합의 지반은 어떻게 될까요.
보수주의자들의 경고: '트럼프는 파시스트'
특히 존 켈리 전 비서실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후보가 히틀러를 동경하는 발언을 자신에게 했다고 폭로했는데요. 그에 따르면 백악관 근무 당시 트럼프가 '왜 당신은 히틀러에게 전적으로 충성한 독일 장군들처럼 될 수 없냐'며 '히틀러는 좋은 일도 좀 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어 켈리는 트럼프에 대해 "극우의 영역에 있고 권위주의자이며 독재자들을 선망한다"라거나, "트럼프가 파시스트의 일반적 정의에 부합한다는 건 확실하다"고 증언했습니다.
▲ 백악관에서 함께 근무한 존 켈리 전 비서실장과 트럼프 전 대통령. ⓒ AP 연합뉴스
켈리가 언론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최근 트럼프의 발언 수위에 심각성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대선 캠페인 막바지에 트럼프 후보는 '내부의 적'(enemies from within)을 자주 언급했어요.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훨씬 위험하다'며, 최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필요하다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내부의 적들을) 저지해야 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심지어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이라크 전쟁을 주도하고 전쟁 포로들에게 물고문 지시를 내렸던, 네오콘의 핵심 딕 체이니 전 부통령마저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공개지지 했습니다. 트럼프를 '미국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 평하면서요.
이들은 왜 '파시스트'라는 극단적인 단어까지 써가며 트럼프 재선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걸까요?
정보의 진실성, 그리고 권력
유발 하라리의 신간 <넥서스>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책의 부제는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입니다. 하라리는 서두에서 '정보'를 이해하는 두 가지 관점을 소개합니다. '순진한 관점'과 '포퓰리스트의 관점'인데요.
'순진한 관점'은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진실에 가까워지고, 진실은 우리에게 지혜와 권력을 가져다준다고 여깁니다.
▲ 정보를 이해하는 ‘순진한 관점’ ⓒ Yuval Harari
우리는 '순진한 관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건 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는 말이 있죠. 정보화 시대는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지만,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 속 가치 있는 것을 골라내는 일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2010년대 이후 '미디어 리터러시'가 화두로 떠올랐던 이유이기도 하지요.
음모론과 허위 정보가 퍼지는 속도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페이스북을 매개로 퍼져나간 허위 정보는 혐오를 부추겼습니다. 인공지능(AI)의 발전도 마찬가지죠.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딥페이크 범죄의 폭증이 그 사례입니다.
하라리는 이어서 정보에 대한 '포퓰리스트의 관점'을 설명합니다. '정보는 곧 권력이다'라고 여기는 시각입니다.
▲ 정보를 이해하는 ‘포퓰리스트의 관점’ ⓒ Yuval Harari
얼핏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하라리의 논점은 이 관점에는 '진실'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포퓰리스트들은 정보의 팩트 여부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극단적으로는 '객관적 진실은 없으며 각자 버전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유일한 실존은 팩트가 아니라 권력이기에, 권력을 얻을 수 있다면 정보가 팩트인지 아닌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라리는 주장합니다.
하라리의 주장은 현재 트럼프와 그의 정치가 상징해 온 바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트럼프에게 정보의 사실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놓고 거짓말과 혐오를 퍼뜨리죠. '테일러 스위프트와 팬들이 나를 지지한다'는 가벼운(?) 거짓말부터 시작해 '2020년 대선은 조작되었고 내가 진정한 승자'라거나 '아이티 이민자들이 미국 주민의 반려묘와 반려견을 잡아먹는다'는 심각한 허위 정보를 퍼트렸습니다.
▲ AI로 합성된 ‘트럼프 지지하는 테일러 스위프트 팬들’의 가짜 이미지와 더불어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짜 지지 선언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한 트럼프 전 대통령 ⓒ Donald Trump/Truth Social
트럼프 캠프의 핵심 인물로 활동 중인 일론 머스크는 이러한 혼란을 가중하고 있습니다. 머스크는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목하에 2년 전 소셜 미디어 플랫폼 트위터를 인수해 '엑스(X)'로 이름을 바꾸었죠. 이후 거짓 정보 확산을 막기 위한 트위터의 규제를 모두 해제했고, 본인의 계정을 통해 반유대주의, 선거 음모론, 무슬림 혐오 등 근거 없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확산시켜 왔습니다. 머스크 역시 정보의 진위보다 정보의 파괴력을 중시하는 듯합니다.
'대안적 진실'이 지배하는 세상의 대통령
트럼프와 그가 상징하는 정치와 권력의 성격을 가장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있다면 '대안적 진실'(alternative facts)입니다. 이 말은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나왔는데요. 숀 스파이서 당시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취임식에 '역대 최대 규모의 관중'이 몰렸다고 거짓말했습니다. 캘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고문은 이 거짓말에 대한 질문을 받자, '대안적 진실'이라 답했어요.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팀의 조사에 의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기 공식 석상에서 무려 3만 573개의 거짓 정보를 말했습니다. 하루에 21개의 거짓말을 한 건데요.
그중에서도 유명한 거짓말 몇 가지를 살펴보죠. 트럼프는 '오바마는 케냐에서 태어났다'는 거짓말과 함께 정계에 입문했습니다. 현재 트럼프의 재선 캠페인도 2020년 부정선거 음모론을 기반으로 합니다. 정당한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다섯 개의 경합 주에 65개의 소송을 제기했으며, 급기야 2021년 1월 6일, 지지자들을 선동해서 초유의 의회 난입 사건을 일으킵니다. 참고로 최근 타운홀에서는 의회 난입 사건 당일은 '사랑의 날'(day of love)이었다고 발언했어요.
이것이 트럼프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이유입니다. 민주주의란 사회적 합의의 틀 위에서 서로 다른 의견의 소통과 조율을 통해 이뤄져 갑니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는 늘 변하기 마련입니다. 기존의 정보가 틀렸다고 이야기하려면 그 정보가 사회적 합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쇄할 탄탄한 근거가 필요하고요.
하지만 트럼프는 근거 없는 거짓 정보로 기존의 합의를 모두 무너뜨림으로 대화와 소통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그의 세상은 각자의 '대안적 진실'이 혼재하는, 공론이 아닌 대결만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트럼프의 전염적 반사회성
대통령은 하나의 상징으로 존재하기에, 대통령의 행동과 말은 강한 파급력을 가집니다. 그렇기에 높은 도덕성 또한 요구되는 것이죠.
그런 대통령이 거짓말과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다면, 곧 그러한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동료 정치인, 나아가 유권자와 시민 모두를 감염시킵니다. 그동안 반사회적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정상화됩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공화당을 변화시켰습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의 거짓말과 혐오 발언은 일상화되었습니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JD 밴스 상원의원의 발언이 상징적인데요. 지난 9월 토론회에서 트럼프는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시에서 아이티 이주민들이 미국 주민들의 반려묘와 반려견을 잡아먹는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밴스는 트럼프의 실언을 이렇게 옹호했습니다: "아무리 허위 정보라고 해도 그로 인해 소외된 미국인들의 문제에 이목이 집중될 수 있다면, 그러한 허위 정보는 퍼뜨려도 좋다."
▲ 대선 후보 토론회 중 실언하는 트럼프 후보 ⓒ 연합뉴스TV
2016년만 해도 밴스는 격렬하게 트럼프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미국의 히틀러'라고 불렀죠. 하지만 트럼프가 권력을 차지한 이상 밴스는 변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2022년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오하이오주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됐고, 부통령 후보로 지목될 정도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트럼프 캠프는 토론회 후 실언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주민 혐오에 부채질을 했죠. 그 결과 실제 주민들의 피해도 있었습니다. 트럼프의 극단적 지지자들은 스프링필드시의 거리를 순찰하며 다녔고, 지역 학교들은 30건이 넘는 테러 협박을 받았습니다.
뉴욕 집회: 트럼프 2기가 초래할 일상에 대한 예고편
대선 막바지에 이른 지난 10월 27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트럼프 집회는 그가 권력을 잡은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의 공식 석상에서 뉴스에서도 언급 못 할 비속어와 혐오 발언, 거짓 선동이 난무한 것이죠.
"(해리스는) 악마이고, 적그리스도입니다" (데이비드 렘, 뉴욕시 환경미화원)
"(해리스와) 그녀의 포주들은 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그랜트 카돈, 사업가)
"힐러리 클린턴은 역겨운 XX이죠. 아주 그냥 X 같은 당 자체가 낙오자들로 가득해요… 우리 미국의 재향군인들이 센트럴파크의 대변 위에서 노숙할 때 X 같은 불체자들은 5성급 호텔, 현금 등 원하는 모든 걸 다 공급받죠." (시드 로젠버그, 라디오 쇼 호스트)
가장 논란이 되었던 발언은 집회 오프닝을 맡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토니 힌치클리프로부터 나왔습니다. 라틴계를 향한 저급한 성적 농담을 비롯해 이런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에 쓰레기 섬 하나가 둥둥 떠 있는데… 섬 이름이 '푸에르토리코'였나요?"
▲ 트럼프 유세에서 문제적 인종주의 발언을 이어가는 코미디언 토니 힌치클리프. ⓒ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수많은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들이 분노했고, 곧바로 배드 버니, 리키 마틴, 제니퍼 로페즈와 같은 푸에르토리코계 유명인의 해리스 공개 지지 선언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은 히스패닉 인구 중 두 번째로 많은 유권자 그룹입니다.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는 경합 주인 펜실베이니아에도 47만 명의 푸에르토리코계 유권자가 있죠.
이에 트럼프 캠프는 곧바로 힌치클리프의 발언과 거리를 두었지만, JD 밴스 부통령 후보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농담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보나 마나 뻔한 바보 같은 인종주의적 농담이었겠죠. 그게 아닐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인간적으로 미국에서는 무슨 말을 못 하겠네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긁히는 것 이제 진절머리가 납니다."
인종주의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식 석상에서 농담이 되는 곳. 소수에 대한 다수의 비하가 그저 '사소한 것'이 되는 곳.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주민에게 순식간에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곳. 여성 비하적 발언과 욕설이 국가의 공적 무대에서 허용되는 곳. 이것이 이번 집회가 보여준 트럼프 2기 미국의 단면이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대선을 '동전 던지기'에 비유할 만큼, 이번 미국 대선의 결과는 쉽게 예측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해리스 후보가 승리할 경우 트럼프 측이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리란 것은 분명합니다.
이미 공화당 특은 대선 패배에 대비한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공화당이 다수인 조지아 주의회에서는 재검표 절차를 더욱 유연하게 하는 법이 통과되었으며, 그 외에도 정당한 선거 절차를 부정할 여러 전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민주당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대비 중이고요.
가장 기초적인 합의를 선제적으로 거부하고, 거짓을 '대안적 진실'이라 주장하며 혐오를 퍼뜨리는 세력이 미국의 권력을 다시 잡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가에서 사회적 합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면, 전 세계의 합의 지반은 어떻게 될까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애증의 정치클럽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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