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 유치 국책사업'이라더니...기막힌 행담도 개발 비리
[그 섬에 사람이 살았네⑨] 쫓겨난 원주민 뒤로 건설사-은행-개인회사만 배불려
▲ 행담도 국제해양관광섬 개발을 알리는 신문기사 (매일경제 1999.5.19) ⓒ 매일경제 갈무리
애초 한국도로공사가 행담도 전체를 강제수용하고 원주민을 떠나게 한 건 외자를 유치해 국제관광휴식시설을 짓기 위해서였다. 도로공사는 외자 유치로 행담도 갯벌을 매립해 해양생태공원, 가족호텔, 범선카페, 모험놀이시설 등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담도는 현재 고속도로 휴게소를 빼면 갯벌을 매립해 만든 대규모 공터에 잡풀만 무성하다.
▲ '싱가폴 이콘 사 투자비율 66% 넘어' 제목의 당진시대 기사 (1999년) ⓒ 당진시대
도로공사가 행담도 개발계획을 처음 세운 때는 1995년. 그때는 행담도에 고속도로 휴게·편의시설을 건설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러다 1996년 행담도 국제관광휴식시설로 계획을 확대하고 건교부 승인을 받자, 행담도 개발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하지만 1997년 말 이른바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사업방식을 '외자 유치를 통한 민간사업 추진 방식'으로 급변경했다. 1999년에는 행담도국제관광휴식시설 사업자로 싱가포르 이콘(ECON)과 현대건설을 합작회사로 선정하고 행담도개발㈜(이콘 63.9%, 현대건설 26.1%, 도로공사 10%)를 설립했다.
개발계획도 기존 섬 6만9000평과 섬 주변 7만5000평을 매립, 총면적 14만여 평에 휴게소와 각종 레저시설을 개발하는 것으로 구체화했다. 행담도 원주민들의 반발에도 공사가 시작됐다. 1999년 결국 주민들은 국책사업에 밀려 모두 섬을 떠나야 했다.
[2002년] 대동강물 팔아 먹듯 공사 시공권 팔아 경영권 장악...개인사업으로 전락
▲ 서해대교 개통을 축하하는 당진시 행사 (2000년) ⓒ 당진시
2000년. 행담도휴게소(1단계 공사)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2002년 이콘 사는 국제관광휴양지(2단계) 공사를 앞두고 보유 주식을 처분하고 행담도 개발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그러자 당시 이콘 사의 직원이자 행담도개발㈜의 대표이사였던 K씨가 이콘 사의 주식을 인수하기 위해 개인회사를 설립 했다. K씨는 이콘 사의 보유 주식 53%를 95억4000만 원에 인수하기로 약정한다.
K씨는 이콘 사의 주식 인수 비용 마련 방법으로 흡사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식'으로 조달한다. 행담도개발㈜의 2단계 공사의 시공권을 주는 조건으로 개인 자격으로 대아건설 등으로부터 120억 원을 무이자로 빌린 것이다.
이 돈으로 이콘 사 주식을 인수하고, 현대건설의 보유 주식(26.1%, 38억3700만 원)도 몽땅 인수한다. K씨는 행담도개발㈜의 최대 주주로 경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2002.3.). 자기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통해 이자 수익(19억2000만 원)도 챙겼다. 이때부터 행담도 국제관광휴양지 개발사업은 사실상 K씨 개인사업으로 전환된다.
도로공사는 2004년 1월, K씨 회사(EKI)가 투자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주식 선매수 계약을 체결한다. 내용은 사업 개발이 끝나는 2009년부터 K씨 회사의 요청이 있을 때 K씨 소유회사 주식 1억500만 달러어치(투자비)를 사준다는 풋옵션(거래 당사자들이 미리 정한 가격으로 만기일 또는 그 이전에 일정 자산을 팔 수 있는 권리를 매매하는 계약)이었다. 평가액이 1억500만 달러에 미달할 경우에는 그에 해당할 때까지 도로공사가 주식을 추가 또는 전량 제공받는 조항도 들어 있다.
[2004년] 도로공사, 개인회사와 불평등계약... 동북아위, '정부지원의향서' 발급
▲ 행담도 전경 ⓒ 대한민국역사발물관 근현대사 아카이브
도로공사가 K씨 개인회사에 미화 1억500만 달러 상당의 보증을 제공한 것. 즉 사업이 망해도 투자비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이다. K씨로 보면 땅 짚고 헤엄치는 계약 조건이다. 반면 도로공사 입장에선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는 매우 불평등한 계약이다.
와중에 당시 정권 실세로 불리던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시대위원회(아래 동북아위원회)의 문정인 위원장과 정태인 동북아위원회 기조실장이 행담도개발㈜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정부 지원의향서(Letter of support)를 발급해 준다(2004.9.).
캘빈 유 주한싱가포르대사는 당시 청와대 관계자에게 행담도 개발사업과 관련해 K씨에게 최대한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다. 정부 주요 인사가 총동원돼 민간기업의 사업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행담도개발㈜ 대표이사이기도 한 K씨는 행담도 개발에 필요한 투자금도 갖고 있지 않았다. K씨는 2003년부터는 이 돈마저 회사채를 발행해 조달하는 방법으로 추진한다. 그는 회사채 발행에 필요한 국제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을 높게 받기 위해 도로공사에서 행담도 개발과 관련한 모든 권리를 채권자들에게 담보로 양도(주식 담보 제공)하는 것에 대해 동의해 달라고 요청한다. 도로공사는 이를 거부한다. 거부 이유는 당시 도로공사가 작성한 내부 보고서인 '행담도 사업 관련 진행 상황'에 잘 담겨 있다.
[2005년] 도로공사 내부보고서 "자본금 2500만원 페이퍼 컴퍼니, 관계 끊어야"
▲ 서해대교(가운데)와 행담도휴개소(오른쪽), 모다아울렛(의류 복합상가, 서해대교 왼쪽) ⓒ 한국역사발물관 근현대사 아카이브
"K 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는 자본금 2500만 원의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 서류 형태로만 존재하면서 회사 기능을 수행하는 회사)로서 행담도개발㈜의 배당금 이외에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고, 2009. 1. 31.까지 1억500만 달러를 상환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기존의 협약 범위 내에서 행담도개발㈜의 자본 투자와 채권 발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현시점에서 사업 파트너 관계를 절연하고 새로운 사업 시행자를 선정하여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도로공사 내부 보고서 중
행담도개발㈜에 참여한 K씨의 회사가 자본금 2500만 원의 페이퍼 컴퍼니로 자금 조달 능력이 없으니 오히려 관계를 끊고 새로운 사업 시행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동북아위 관계자 "왜 K씨에 협조 안 하나, 청와대서 감사할 것" 고함도
▲ 개발로 파헤쳐진 행담도 (1997년 추정) ⓒ 오마이뉴스자료사진
도로공사가 권리 양도(주식 담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자, K씨는 정관계 로비를 시도한다. 당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동북아위의 정태인 기획조정실장을 만나 도움을 요청한다. 정 기조실장은 도로공사 관계자들을 불러 "왜 동의를 못 해주는 것이냐, 전형적인 복지부동이다. 며칠 뒤 청와대에서 감사 나갈 것"이라고 고함을 친다.
도로공사가 외압에 버티며 권리 양도를 하지 않았음에도 K씨 회사는 결국 씨티그룹을 주간사로 8300만 달러의 채권을 발행했다. 교원공제회(2300만 달러)와 우정사업본부(6000만 달러)가 채권을 매입했다. (2005년 2월) 외환위기 극복과 외자 유치를 위해 시작된 사업이 외자가 아닌 전액 국내 돈으로, 그것도 개인 사업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2005년 3월. 감사원은 도로공사에 대한 정기 재무감사에 착수했다. 같은 해 5월부터는 행담도 사업 전체에 대한 감사로 확대됐다. 한 달 만에 내놓은 감사원의 행담도 감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 당초 목적사업을 벗어났는데도 편법으로 건교부 승인
- 행담도 일대는 국가산업단지여서 복합 레저시설 설치가 불가능한데도 사업 추진
- 외자 유치 사업에서 개인사업으로 변질
- 청와대 인사들의 부적절한 개입
감사 결과는 '도로공사가 해서는 안 되는 공사를 편법으로 추진했다' '외자 유치사업이 개인사업으로 변질됐다' '이 과정에 청와대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검찰 수사 결과 "자금 능력 없는 K씨가 정관계 영향력 행사해 자금 조달"
▲ '행담도 아산만 갯벌에 레저타운 논란'제목의 당진시대 기사 (1997년) ⓒ 당진시대
검찰은 행담도 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를 통해 2001년 행담도개발㈜ 감사로 파견된 K씨가 아무런 자금 능력이 없는데도 사업을 추진하면서 친분이 있던 싱가포르 관계자와 정관계 인맥을 배경으로 도로공사와 동북아위원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자금을 조달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사기 및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행담도개발㈜ K씨, 당시 불공정 계약으로 도로공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업무상 배임)로 당시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기소했다. 당시 문정인 동북아위원회 위원장(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과 정태인 기조실장(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도 기소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의 판결은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1심 법원은 K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형을 선고하고 풀어줬다. 집행유예 선고 이유는 '싱가포르 자본의 국내 유치를 위해 노력했고, 경영혁신을 추구한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었다.
2심서 법정구속 K씨
▲ 행담도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는 행담도주민들 (1980년대) ⓒ 당진시
재판부는 당시 도로공사 사장에게도 집행유예(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K씨에게 사기 범행의 실마리를 제공했고, 위 범행으로 도로공사가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하게 돼 사안이 매우 무거우며, 죄질 또한 불량하다"면서도 "도로공사의 발전을 위하여 기여한 점을 참작해 형을 유예한다"라고 밝혔다.
문정인 동북아위원회 위원장과 정태인 실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정부 부처가 외자 유치를 위해 지원 및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점 등의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허위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고 봤다.
반면, 2심 재판부는 K씨에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2심은 "자본금 없이 4000억 원이 필요한 개발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한국도로공사에 큰 손해를 입혔고, 정부 기관 관계자를 통한 로비를 시도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밝혔다. 정태인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도로공사 직원을 협박해 도로공사가 행담도개발㈜ 주식의 담보제공에 대해 동의해 주도록 강요했다"라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와 강요미수 혐의를 각각 인정했다.
문정인 위원장과 당시 도로공사 사장에 대해서는 1심의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다. 대법원도 이런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그런데... 원주민 피해 언급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 행담도 휴게소 ⓒ 한국역사발물관 근현대사 아카이브
"행담도 국제관광휴양지 개발사업은 영리 목적의 수익사업일 뿐 외자 유치도, 공익사업이 아니다"는 주민들의 절절한 외침이 불과 수년 만에 사실로 확인됐다. 하지만 터전을 잃고 쫓겨난 원주민들에 대해선 누구도 관심을 두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는 물론 판결문 어디에도 원주민들의 피해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행담도개발㈜의 갯벌매립사업은 계속됐다. 행담도개발㈜의 지분은 씨티은행이 90%를 가져갔다가 2014년 씨티은행의 지분 전량을 맥쿼리자산운영에 매각(매각 대금 1250억 원) 했다.
당시 이미경 민주당 의원은 "행담도 휴게소 운영권만 22년간 최대 2200억 원의 사업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매각 가격은 그 절반에 불과하다"라며 헐값 매각 의혹을 제기했다. 행담도개발㈜의 대주주가 된 맥쿼리자산운영은 행담도휴게소와 유통시설인 모다아울렛(의류 복합상가)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현재 여전히 행담도 대규모 관광 휴양지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2016년에는 행담도 내 유휴부지 매각을 추진했지만 불발됐다. 2020년에는 '행담도 개발 방안 구상 용역'을 통해 개발사업 대상 부지(약 18만 ㎡) 에 대한 개발 방향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편법, 졸속, 비리로 마무리된 행담도개발... 쫓겨난 주민들은?
▲ 행담도 아이들(1980년 대 초) ⓒ 당진시
결국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행담도 개발은 편법, 졸속, 비리로 확인되면서 주민들만 섬에서 쫓겨나고 무분별한 개발로 환경을 훼손한 채 25년째 방치되고 있다. 100년 가까이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 역시 함께 파헤쳐진 뒤 매립돼 사라지고 있다.
전국 각지로 흩어진 원주민들은 행담도 비리 사건의 결말을 기자에게 전해 듣고 울분을 쏟아냈다.
"행담도 비리 사건이 있다는 소식은 뉴스로 들었지만, 주민들이 모두 흩어져 살다 보니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주민 중에는 비리 사건이 있었다는 소식조차 처음 듣는 사람이 많다.
주민들은 처음부터 도로 확장·포장 공사하는 도로공사에서 섬을 통째로 사서 관광단지 개발사업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따졌다. 그때마다 건교부도, 환경부도 '외자 유치를 위한 국책사업'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외자는 한 푼도 없고, 정부 고위직과 공기업 관계자들이 결탁해 건설회사와 은행, 개인회사만 배불리는 사업을 한 거 아니냐. 고향 잃고 땅 잃고 터전 잃은 주민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하나"
(* 주요 참고자료: 감사원 감사결과, 각 기소자별 1심, 2심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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