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중한 어머니 걱정하던 한 효자가 호수서 낚아낸 '산삼'
임실 옥정호 붕어섬과 치즈테마파크로 2일 다녀온 역사 문화 탐방
▲ 섬진강 옥정호 붕어섬의 아침 ⓒ 이완우
이른 봄과 늦은 가을의 여명에 임실 섬진강 옥정호는 물안개로 자욱하다. 아침 햇살이 떠오르면 물안개가 사라지면서 드러나는 붕어섬의 윤곽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섬진강 상류의 옥정호 붕어섬은 하늘, 구름, 호남정맥 산맥, 섬진강 상류인 옥정호 호수와 출렁다리를 한 폭의 풍경화에 담아서 조화롭게 그려내고 있었다.
호수의 수면에는 밝은 햇살이 윤슬에 반짝거리며 출렁이고 있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과 산바람은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을 싣고 왔다. 붕어섬 소나무 숲에는 키 작은 꽃향유가 연한 보라색 향기를 피워내고, 꽃잎에 달린 아침 이슬이 투명한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 (왼쪽 위) 옥정호 붕어섬 풍경, (오른쪽 위) 옥정호 붕어섬 출렁다리 가을 풍경, (왼쪽 아래) 옥정호 붕어섬 산책길, (오른쪽 아래) 옥정호 붕어섬 소나무 숲속 아침 이슬 젖은 꽃향유 ⓒ 이완우
옥정호 호수의 물결은 호남정맥 산맥을 도수터널로 통과하여 호남평야에서 쌀이 된다. 탐방단은 옥정호 호수 물결을 바라보며, 출렁다리와 함께 흔들리며 붕어섬으로 건너갔다. 붕어섬은 강물이 휘돌아 가는 물돌이동 지형이다. 외앗날이라는 향토 지명이 있는데, 사진작가들이 애칭으로 붕어섬이라고 하여서 관광지 이름이 되었다.
붕어섬 가까운 곳에 낚시로 산삼을 낚았다는 설화를 지닌 조삼대가 있다. 조선 중기의 충신인 이흥발(호 雲巖 운암, 1600∼1673)은 효자로도 이름이 높았다. 그는 이곳 운암강(옥정호의 옛 이름)에서 붕어와 잉어를 낚아서 병환이 깊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어느 날 그의 낚시에 산삼이 낚였다고 한다.
혹시 이흥발이 어머니께 끓여 올린 어탕의 효능이 '산삼 못지 않았다'하여, '산삼을 낚았다'는 설화가 생겨난 것은 아닐까? 옥정호를 내려다보며 孝子雲巖先生釣蔘臺(효자운암선생조삼대)라는 비석이 서 있다.
▲ 옥정호 하운암 풍경. 운암강 월척 붕어 유명했던 곳 ⓒ 이완우
옥정호 하운암 지역의 금기리는 예로부터 월척 붕어가 유명하여 쌀 한 가마니에 거래되기도 했단다. 어느 백성이 이곳의 월척 붕어를 대원군에게 진상하였는데, 대원군이 그 백성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탐방단은 붕어섬에서 구불구불한 옥정호반의 아름다운 도로를 18km 내려갔다. 옥정호의 아랫녘인 하운암으로 이동하여 맑은 금기리까지 이어진 옥정호 물결을 바라보았다.
점심으로 커다란 뚝배기에 담겨 적당히 뜨겁고 맛 좋은 어탕(물고기 매운탕)을 즐겼다. 식사가 끝나는 무렵에 제공되는 구수한 숭늉은 인정 가득하게 나왔다.
▲ 임실 옥정호 어탕(매운탕) 진미 ⓒ 이완우
섬진강 상류 방향으로 22km를 이동하여 진구사지 석등 앞에 섰다. 500년이 넘는 긴 세월, 폐사지에서 이렇게 5m가 넘는 석등이 거의 온전하게 보전되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석등에 새겨진 하늘을 향한 연꽃잎 앙련과 땅을 향한 연꽃잎 복련은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7세기 중엽에 백제 땅 지역에 고구려 승려들이 망명하여 진구사를 창건하였고, 신라인의 석공 기술로 9세기 후반에 이 석등이 조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규모가 크다고 평가받는 석등이다.
고려 때에는 한 왕자가 이 사찰에 주지를 역임하였고, 한때는 몽골(원) 황실의 비호까지 받았던 이 사찰의 위세는 대단했다고 한다. 이 진구사 앞에서 섬진강을 가로질러 거대한 강상누각(江上樓閣)이 있었다고 하니 믿기가 어려워질 정도이다.
조선 초기에 이 진구사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폐사지를 홀로 지키고 있는 이 석등은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면 뒷산이 광배 모양으로 신비로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 (왼쪽 위) 진구사지 석등 아침 안내 풍경, (오른쪽 위) 진구사지 석등, (왼쪽 아래) 진구사지 석등, (오른쪽 아래) 석등 측면도 비교. 좌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우 진구사지 석등. 석등조사보고서Ⅱ(국립문화재연구소, 2001년) 참조 편집. ⓒ 이완우
섬진강 상류로 11km를 더 올라가서 관촌 사선대 조각공원에 도착하였다. 임실 관촌 지역은 백제 무왕이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각산성(성미산성)을 쌓았다는 천 오백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이 지역이 백제가 호남정맥과 섬진강 상류에 의지하여 국경을 지키는 '앞 마을(仍肹 잉힐)'이었다.
'잉'은 '님, 임'으로 앞을 의미하며, '실'은 골짜기로 마을을 의미하는 고어이다. '잉힐'이 '임실(任實)'로 음차되었으니 같은 의미로 추정된다. '임실'은 우리나라에서 천오백 년 동안 한번도 이름이 바뀌지 않은 유일한 군현의 지명으로 알려졌다.
사선대 조각공원은 사선대 국민관광지의 일부이며, 울창한 절벽 위로 사선대 생태공원 산책로가 연결되어 여유롭게 둘러보기 좋다. 관촌 사선대 지역은 임실에서 설화와 전설이 가장 많이 남아 있으며, 봄이면 천연기념물 산개나리와 가침박달 꽃이 사선대 절벽 위에서 무리 지어 피어난다.
▲ (왼쪽 위) 임실의 원 터전인 관촌 방수리 들녘에서 본 성미산과 공수봉, (오른쪽 위) 섬진강 상류 관촌 방수리 천년 마을, (왼쪽 아래) 오원교 위에서 본 성미산, (오른쪽 아래) 임실 사선대 국제조각공원 ⓒ 이완우
여행단이 8km를 이동하여 치즈테마파크에 도착하였다. 임실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치즈를 만들기 시작하여, 낯선 식품인 치즈를 향토 식품으로 발전시킨 곳이다. 1960년대 중반에 임실 치즈는 '우유로 두부를 만들자.'라는 지정환(1931~2019) 신부의 노력과 헌신에서 출발하였다.
물에 불린 콩을 갈아서 간수를 넣어 끓이면 엉기게 된다. 이것을 자루에 넣고 짜서 굳힌 가공식품이 두부이다. 우유에서 치즈를 만드는 과정은 콩물로 두부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공정이다. 임실 치즈의 맛은 '우유로 만든 고향 두부'의 맛인 셈이다.
맛의 도시 전주의 팔미(八味) 중 하나인 콩나물은 섬진강 상류 임실 관촌의 콩으로 만들어야 제맛이 난다고 하였다. 콩과 두부의 고장 임실에 우리나라 최초로 치즈가 자리 잡았으니 흥미롭다. 임실 치즈는 변화를 거듭하며 60년의 역사를 새롭게 써왔으며, 목장형 유가공 공장을 스위스에서 최초로 도입하고 치즈 체험의 관광 시대를 열었다.
▲ 임실 치즈테마파크 3층 전망대 홍보탑, 에멘탈 치즈 모형 ⓒ 이완우
순천에서 임실을 찾은 탐방단 10여 명은 5시간의 여정을 거치며, 임실의 대표적 관광지인 옥정호 붕어섬과 치즈테마파크 두 곳을 함께 방문하였다. 역사적 유래가 깊은 진구사지 석등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명인 잉힐(임실)의 고장을 방문하며 향토 역사문화의 견문을 넓혔다.
임실의 서쪽에는 호남정맥을 등에 지고 섬진강이 옥정호로 출렁이고 있다. 이 옥정호에 '옥정 어탕 진미 玉井 魚湯 眞味'가 있다. 치즈는 한자로 바꾸면 '마른 발효유 식품' 건락(乾酪)이 된다. 임실의 동쪽에는 성수산 자락 성수면에 임실치즈테마파그가 있다. 이 치즈의 고장에 '임실 치즈 진미 任實 乾酪 眞味'가 있다.
옥정호 어탕(매운탕)과 우유로 만든 향토 두부인 치즈의 맛 기행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는 매력 있는 소재였다. 섬진강 옥정호의 어탕과 성수산 산기슭 목장 치즈가 좋은 추억으로 남는 임실 여행이었다. 치즈테마파크 주차장 옆 로컬푸드 판매장에 진열된 '임실N치즈'의 가운데 N 자가 '임실에는 치즈'라는 의미로 선명하였다.
▲ 임실N치즈, 숙성 고다치즈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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