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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발표대회장서 만난 '한강'들, 희망이 보였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행위가 중요한 이유

등록|2024.11.05 17:39 수정|2024.11.05 17:39
며칠 전, 대전시교육청에서 주최하는 인문학 발표대회가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 열렸다. 나는 학교 대표로 6학년 여자아이를 인솔해 대회에 참가했다. 오늘의 발표대회를 위해 아이와 나는 두 달간 스무 권의 책으로 열심히 독후감을 연습해 왔다. 작은 목소리가 옥에 티였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의 글솜씨는 일취월장했고 , 대회에서도 작은 목소리를 뚫고 나올 만큼 깊은 내면의 목소리로 대회에서도 은상이라는 쾌거를 거두었다.

나는 이번 대회장에서 은상이라는 쾌거도 의미가 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바로 21명의 학생들 각각 단상에 올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발표시간이었다. 그날 아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책은 바로 최도영 작가의 '돌돌한 아이'.

주어진 두 시간 안에 책을 읽고 쓰는 지난한 시간 뒤, 단상에 오른 아이들의 발표를 종합해 보건대 작품 속 돌돌한 아이는, 똘똘한 아이가 되길 바라는 간절한 엄마의 소원과는 달리 돌처럼 단단한 형상을 하고 태어난 아이가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와 온갖 시련을 겪으며 돌처럼 단단하게 살아가며 매일 성장한 자신을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주인공인 것 같았다.

약 두 시간가량 진행된 이번 발표대회에서 발표번호 1번부터 21번까지 단 한 명의 아이도 중복되는 내용 없이, 책 속 주인공의 삶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깊이 공명한 다 다른 21개의 목소리가 차례차례 대회장에 울려 퍼졌다.

자신은 돌돌이 엄마처럼 자녀에게 강요하고 억압하는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아이.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자신도 돌돌이처럼 까만피부를 가져서 놀림당한 경험을 꺼내놓으며 앞으로는 돌돌이처럼 굳세게 맞서겠다는 아이. 늘 작은 목소리가 단점인데 돌돌이처럼 단점을 발판삼아 더 자신감있는 목소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는 아이. 그리고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발판삼아 딛고 더 성장한 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며 자신의 미래를 굳건히 다지던 아이까지.

두 시간 넘는 지난한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의 발표가 결코 지겹지 않았던 이유는, 아이들이 책을 통해 감화한, 깊은 내면에서 길어올리는 위와 같은 책 속 교훈들이 내 가슴에 먹먹하게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책 속으로 빠져들어 책 속 주인공이 시련을 견뎌내는 것을 보며 위안을 받고, 자신의 삶을 돌아본 뒤 더 나은 삶을 위해 다짐하는 3분 남짓의 발표.

그 3분 속에 아이들이 앞으로 그려나갈 미래가 짙은 농도로 담겨있었다. 그 발표들을 들으며 장차 우리 나라의 문학계를 이끌어나갈 작은 '한강'들, 미래 작가들이 여기에 모여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니 문득 중학교 2학년 시절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피어올랐다. 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두고 극심한 복통에 시달려 찾은 병원에서 , 급성 맹장염 진단을 받고 갑작스럽게 입원했던 그날. 중학교 입학 이후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던 내게 입원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그 1등을 빼앗아가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흘을 꼬박 눈물짓다 잠들어 내 베갯잇은 눈물이 마를 새가 없을 정도였달까.

학교에 등교해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 하얀 병실에서 눈을 뜨는 하루하루가 내겐 늘 악몽과도 같았다. 우울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아 병실 밖에 한 발짝도 나서지 않고 멍한 눈으로 침대 안에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짝친구가 문병을 와 <몽실언니>라는 제목의 책을 내 손에 들려주고 갔다.

책 속 주인공인 몽실언니는 한없이 가여운 사람이었다. 가족을 잃고 불의의 사고로 멀쩡한 다리까지 잃었지만 그 모든 시련을 꿋꿋이 이겨내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몽실언니. 나는 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만 불행하다며 우울의 늪으로 한없이 빠져 엄마에게 툴툴대며 속을 후벼 팠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언니가 그 모든 시련들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책을 덮은 후 갑자기 나는 삶의 변곡점을 맞은 듯 하루아침에 입원 생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벌떡 일어나서 병동을 산책하며 아침을 맞이했고 틈틈이 교과서로 시험공부를 이어갔다. 중간중간 불행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힐 때마다 한쪽 다리로 삶을 꿋꿋이 이어간 몽실언니를 떠올렸다. '나보다 더 큰 시련을 겪은 언니도 열심히 살아갔는데 나라고 못할게 뭐가 있냐'라고 늘 속으로 되뇌며 포기하지 않고 시험공부를 꿋꿋이 해내었다.

그 결과 퇴원 후 학교로 돌아가 치른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거머쥘 수 있었다. 몽실언니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인생 선배였다. 그 이후 나는 삶에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몽실언니 책을 다시 빼들었고 그 책은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나보다 먼저 인생을 경험한 몽실언니는 내게 최고의 롤모델이 되어 준 셈이다.

나는 일찍이 몽실언니라는 책을 통해 책의 효용성을 피부로 체감한 뒤,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가 삶의 변곡점이자 인생의 방향등이 되어 줄 수 있는 최고의 스승이라는 사실을 또 한 번 절감한다.

특히나 이번 발표대회에서 책 속 주인공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더 큰 내가 되기 위해 다짐하는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엿본 것 같아 전율마저 일었으니까.

한강 작가의 수상 이후 한강열풍이 불며 k문학에도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작은 한강들을 보며 나는 우리나라의 문학계에 돋아나는 중인 밝은 희망을 엿보았다. 오늘의 뜻깊은 경험을 기점으로 독서와 글쓰기로 매일 성장한 작은 한강들이 하나 둘 모여 언젠가는 큰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나도, 우리 교실 속에서도 작은 한강들을 길러내기 위해 열심히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매일 작게 5분 씩이라도 설파하고 실천해 나가야지 속으로 작게 되뇌며 그날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독서와 글쓰기라는 작은 걸음이 모여 거인의 발걸음으로 아이들이 한 층 더 성장한 자신의 모습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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