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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담으면 좋지" 이 도시락이 7천원이라니

[체험 함양 삶의 현장 25] 시니어 손맛 체험기

등록|2024.11.04 14:01 수정|2024.11.04 14:01
매월 첫째주, 방방곡곡 진솔한 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체험 함양 삶의 현장'을 연재한다. 주간함양 곽영군 기자가 함양의 치열한 노동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직업에 대한 정보와 함께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흥미롭게 전하는 연재 코너이다.[기자말]

직장인들에게 점심 식사 문제는 은근히 큰 고민거리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반복되는 선택의 순간에 뭘 먹어야 할지 모른 채, 주변 음식점을 배회하며 이곳저곳 메뉴를 살펴보는 일도 어느새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자극적인 외식 음식들에 입맛이 질려갈 때쯤이면, 따뜻한 집밥이 간절해진다. 사실, 요즘처럼 모두가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에 집밥을 매일 챙겨 먹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문득, 학창 시절로 돌아가 급식 메뉴를 마주하며 여러 음식을 먹던 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생각해보면 정해진 시간마다 규칙적으로 따뜻한 음식을 받을 수 있었던 학교 급식은 꽤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러한 고민을 덜어 줄 특별한 공간이 있다. 다양한 재료로 정성껏 요리하고, 조미료 없이 건강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곳이다. 이름하여 '시니어 손맛'. 어머니들의 정성과 손맛이 더해진 도시락을 통해 따뜻한 온정을 나누는 곳이다. 이번 체험에서는 어머니들이 요리사로 활약하고 계시는 이곳 '시니어 손맛'에서 일일 체험을 해보았다.

▲ ⓒ 주간함양


10월29일 오전 9시, '시니어 손맛'이 위치한 읍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내부는 음식 준비로 분주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탁 트인 작업 공간 중앙에 당일 배송될 도시락 70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식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느라 어머니들이 이미 많은 수고를 한 듯 보였다.

체험을 안내해 줄 시니어 손맛 담당자를 만났다. 이름을 밝히기 부끄럽다는 그녀는 소박한 미소를 지으며 오늘 체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오늘은 어머니들과 함께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준비된 음식을 도시락에 담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완성된 도시락을 아버님들과 함께 배달하는 체험까지 해보실 수 있을 거예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위생모자, 팔토시, 마스크, 장갑 등을 착용했다. 대부분의 음식들은 어머니들이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 두셨다. 테이블 위의 큰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은 마치 집에서 방금 나온 것 같은 따뜻함을 풍겼다. 담당자께서 먼저 도시락에 음식을 담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김치는 푸짐하게 담아주시고, 다음은 애호박볶음입니다" 시범을 보고 천천히 따라 해보려 했지만,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김치를 집게로 옮길 때마다 김칫국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몇 번 담고 나니 손가락에 힘이 빠져 저리기까지 했다.

담은 도시락을 담당자에게 검사를 맡으니, 김치 양이 약간 부족하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했다. 농담처럼 "덩치를 보면 더 푸짐하게 담을 줄 알았는데요?" 하시며 웃으셨다. 조금 민망해지면서도,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번엔 애호박볶음을 담아보았다. 숟가락을 사용하여 바닥의 포장 호일이 들뜨지 않게 젓가락으로 고정하며 담았다. 어설프게 담으려니 꽤 시간이 걸렸다.

▲ ⓒ 주간함양


그때, 주방에서 다른 음식을 만들고 계시던 울산에서 오신 '울산댁' 어머니께서 파래무침을 담으시다가 밖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레 미소 지으셨다. "고개 숙이고 담으려면 허리가 많이 아프죠? 이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 담긴 한마디에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담다 보니 일의 고단함도 잊게 되었고, 옆에서 자잘하게 손을 거들어 주시는 모습이 마치 가족처럼 편안했다.

▲ ⓒ 주간함양


다음으로 오늘의 메인요리, 닭강정을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 도착하니 갓 튀겨낸 바삭한 닭튀김이 있었다. 옆 냄비에선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어 보기만 해도 식욕이 돋았다. 어머니 한 분이 닭튀김을 한 조각 집어 제게 건네셨다. "한번 맛 좀 봐요. 잘 익었죠?" 말씀을 들으며 한 입 베어 물자, 바삭하고 촉촉한 식감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마치 김장할 때, 김치를 찢어 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튀겨진 닭튀김에 양념 소스를 아낌없이 부었다. 대형 나무 주걱으로 비벼가며 양념이 고루 배도록 버무렸다. 아몬드와 옹심이까지 더하니 점점 그럴듯한 닭강정이 완성되었다. 어머니 두 분이 맛을 보시더니 약간 부족하다며 물엿을 추가로 넣으셨다. 다시 맛을 보고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야 맛이 제대로 났다"며 만족스러워하셨다. 손맛과 직감으로 음식을 조율하시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셰프 못지않은 숙련미가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김치찌개를 완성할 차례였다. 다진 마늘과 대파를 넣어가며 간을 맞추고 국자로 저어가며 맛을 조율했다. 한 어머니께서 맛을 보시고는 "맛술을 조금 넣으면 깊은 맛이 나겠다"며 세월의 노하우를 방출하셨다. 정량이 아닌 감으로 더한 맛술 한 방울이 찌개의 깊이를 더했다. 어머니들의 손맛이란, 이런 감각적인 배합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겠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모든 음식이 완성되고 도시락을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보온 도시락통에 김치찌개를 따로 담고, 밥과 닭강정을 넣어 도시락을 차곡차곡 완성했다.

어머니들은 고객 요청에 따라 밥의 양을 조절하며 "푸짐하게 먹어야지"라며 정량보다 조금 더 밥을 담았다. 관리자께서는 밥을 너무 많이 담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어머니들은 웃으면서 "많이 먹으면 좋지"라고 웃어 보였다. 마치 자식들에게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은 것 같아 더욱 따뜻했다. 더불어 이렇게 완성된 도시락이 7천 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하나하나 정성으로 만들어진 도시락은 곧 두 분의 아버님이 차량에 실어 배달하러 나섰다. 올해 81세가 되신 한 어르신과 함께 배달에 동행하기로 했다. 대구에서 함양으로 3년 전 이사 오신 어르신은 배달 일을 통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씀하셨다.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단 이렇게 나와서 일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죠."

▲ ⓒ 주간함양


작은 소형차를 타고 10곳의 병원, 약국, 정육점 등 다양한 곳에 도시락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첫 배달지에서 어르신이 직접 도시락을 들고 나가셨는데, 배달지의 직원들이 반가운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자주 왕래하면서 유대가 형성된 듯한 훈훈한 장면이었다. 다음 배달지부터는 어르신을 대신하여 직접 도시락을 들고 들어가 보았다. 문을 열고 약국에 들어서자 고객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웃음이 나와 별다른 말 없이 도시락을 전달하고 나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함양뉴스 (곽영군)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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