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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읽으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알게 된다니

<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을 쓴 작가 심완선 초청 강연 참관기

등록|2024.11.04 15:03 수정|2024.11.05 12:10
깊어가는 가을의 지난 토요일, 내가 과거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썼던 <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학교도서관저널, 2023)의 심완선 작가(SF 평론가)의 강연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나는 무조건 시간을 냈다.

지난 2일 토요일, 경기도중등독서교육연구회가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에서 'SF와 함께 독서교육의 길을 찾다'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열어 작가를 초청하고 관련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요즘 내 독서의 주된 관심사인 SF에 대한 지경을 넓힐 좋은 기회인 셈이다.

로봇과 인공지능... 상상이 현실이 될 때

심완선 작가 초청 강연 'SF와 함께 독서교육의 길을 찾다'심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SF는 과학과 문화의 서사입니다. 기술적으로 포화한 사회의 문학입니다. 기술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합니다." ⓒ 한준명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약칭 SF 소설은 다소 낯설다.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를 다루기 때문에 거기에 등장하는 미래사회의 제도와 기술과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 등 모든 것이 생소하다. 따라서 소설 속에 나오는 용어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작가가 상상해서 이름을 짓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서사의 흐름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 SF 읽기의 매력이기도 하다. <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에서 작가는 SF의 장르적 의미와 함께 12개의 키워드로 SF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소개한다. SF에 흥미가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꽤나 유창하게 SF에 대해 목에 힘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법도 하다.

"SF는 과학과 문화의 서사입니다. 기술적으로 포화한 사회의 문학입니다. 이론과 허구, 과학과 예술, 논픽션과 픽션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술은 우리 사회에 어떤 갈등을 낳을까, 구체적인 문제 상황이 발생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합니다.

SF에서 만들어진 상상력과 소설가가 만들어낸 용어가 인기를 끌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 다른 SF소설 속에서 재생산됩니다. SF는 이미 확립되어 있으나 특정 작가에게 속한 것은 아닌, 서로 공유되는 이미지와 모티프의 특정 집합인 메가 텍스트인 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어느 순간 작가의 상상이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되는 것을 목격한다. 우주여행이니 로봇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이미 진부한 상상은 최근 전세계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클론을 통해 인간이 영생을 꿈꾸고, 소위 '웜홀'이나 '워프'를 통해 공간 이동을 하고, 평행우주이론을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이야기를 과학자들이 이론적으로 검증하거나 현실에서 실현하려고 애쓰는 걸 보면 그것이 언젠가는 실현되리라는 기대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가상현실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의 기대, 혹은 인류가 스스로 파멸해가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불안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어쩌면 SF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미래로 열린 창을 내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 아닌 과학소설, 그 안에서의 실험

"가상 The Virtual 과 실재 The Actual 는 대립적인 개념 같지만 어느 것이 진짜 The Real 인지 생각해 보면 가상의 세계가 실재의 세계보다 더 진짜 세계일 수 있습니다. SF는 그 진짜 세계를 진지하게 탐구합니다. SF가 일상은 아니지만 거짓말도 아닌 거지요.

평소에는 하지 않을 행동, 일상에서는 불가능한 체험, 물리적 제약을 초월한 만남 등 다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진정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갖게 합니다."

뜬금 없는 이야기지만 조선시대는 소설을 금기시했다. 사대부들이 중시하는 이상세계를 잡다한 상상으로 어지럽히고, 충과 효와 예와 같은 법도를 갈등으로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마치 플라톤이 그의 이상국가에서 이데아의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 하고 시인은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시인추방론을 내세운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실은 이데아의 모방인데 문학은 그 현실을 다시 모방하고 있으니 이데아와 점점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심완선 작가의 책들심완선 작가는 , <우리는 SF를 좋아해>를 통해 SF문학을 소개한 바 있는데, <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은 작가가 섭렵한 지적 여정을 집대성한 친절한 안내서이다. ⓒ 한준명


그러나 인류는 언어가 생긴 뒤로 한 번도 '서사', 즉 이야기를 놓아본 적이 없다. 끝없이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 극단인 SF를 통해서, 존재할 법한, 존재하지 않는, 존재했으면 좋겠거나, 존재하지 말아야 할 세계까지 탐색한다.

SF를 읽은 독자는 어차피 존재하는 현실이 아니니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편하게 상상하고 결정까지 내려볼 수 있다. 조금만 그 현실을 내가 살아가는 실재 현실에 비춰보면, 진짜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더 궁극적인 질문과 해답에 도달할 수 있다.

< SF 정말 끝내주는데 >(에이플랫. 2020), <우리는 SF를 좋아해>(민음사, 2002>를 통해 SF소설의 장르와 작품을 소개한 심완선 작가의 <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은 SF문학에 다가가기 위한 훌륭한 안내서이자 지침서이다.

강연을 통해 작가에게 다양한 SF소설을 소개 받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심너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전삼혜의 <수수께끼 플레이>, 이희영의 <로열 로드에서 만나> 세 작품을 담은 <로열 로드에서 만나>(위즈덤하우스, 2023), 어슐러. K. 르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N. K. 제미신의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 김초엽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같은 작품들을 읽으며 이 가을 조금 더 흥미롭게 깊어져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 개인블로그인 '마음닿는 곳에 길이있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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