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 시대, 부모 돌봄은 왜 장녀들만 떠안을까?"
[인터뷰] 연극 <장녀들> 서지혜 연출가
▲ 서지혜 연출가 ⓒ 서지혜
연극 <장녀들>(서지혜 연출)은 우리가 흔히 '돌봄'으로 알고 있는 낯선 용어에 관한 작품이다. 일본 중장편소설 <장녀들>(시노다 세츠코 작)을 토대로 제작됐다.
일본에서 가장 기피하는 직종에 뽑힐 정도로 돌봄 문제는 오래전부터 사회적 이슈로 부각돼 왔다. 개호는 "신체나 정신적 장애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자가 목욕, 배설, 식사 등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본에선 병든 사람을 돌보는 간병과 다르게 해석한다.
"시의성 있는 소재, 연극적 미학을 충족한 연출, 배우들의 응집된 앙상블로 밀도 높게 풀어내어 삶과 죽음에 대한 고충이 여운을 선사한다. 초고령화 사회를 강타한 돌봄 노동의 문제를 한국적 정서에 맞게 현실감 있게 풀어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필자가 화제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상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공연을 관람한 어느 관객으로부터 "4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이 40분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병들고 힘 없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나의 마음에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라고 울며 말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필자는 서지혜 연출가로부터 <장녀들>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돌봄은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
-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은 자 모두의 윤리와 존엄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를 언급한 계기가 있는가?
"돌봄 문제는 비단 어머니를 돌보면서 마주한 병원의 풍경뿐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현실이다. 안타깝게도 돌봄 과정은 돌보는 자의 희생이 당연시되거나 돌봄 받는 자에 대한 이해가 사라진 각박함이 만연해 있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껴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우리 모두 결국 늙어가고 누군가를 돌보는 존재에서 돌봄을 받을 것이기에 '돌봄'이야말로 초고령 사회에서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할 중요한 문제다."
- 원작이 나오키상을 수상한 일본의 시노다 세츠코 작가가 20년간 치매 노모를 돌본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라는데, 서 연출가는 각색을 하면서 무엇을 느꼈나. 일본과 다르게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포인트가 있는지.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일본은 가부장 제도 아래 돌봄 노동이 장녀에게 치중돼 있다는 점에서 이제 막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한국과 매우 흡사해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다만 일본 원작에서 주인공인 장녀가 엄마를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냉랭한 시선이 부각됐다면, 각색본에는 모녀가 동질감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는 한국적 정서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다."
▲ 1부 '집지키는 딸' 공연장면 ⓒ 보통현상
- 각 에피소드가 서로 약간의 차이가 보이는데, 연출가로서 어떤 점들이 다르게 읽히길 바라는가?
"1부는 의료의 한계라고 할까. 의료진들이 환자를 대할 때 굉장히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이길 원했다. 특히 정신에 대한 의학은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해 환자의 정신세계를 온전히 아는 의사가 없는 모습에서 의료인과 환자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가 보였으면 했다.
2부는 장녀 자신이 의료인인데, 아버지를 보살피지 못한 덧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다른 나라에 의료봉사활동을 하러 왔으나 결국 자신의 일방적인 의지와 생각만으로 마을 사람들을 돌보려 했다는 것이 포인트다.
3부는 어머니 외에 온 가족이 의료인 집안인데도 아픈 한 가족을 돌보지 못해 가족 안에 분란이 나는 모습들을 통해 돌보는 것은 의료를 얼마나 잘하고, 잘 아는지 보다 환자에 대한 마음이 중요하다."
- 30명의 출연배우가 작품에 오르려면 제작비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 난관을 해결했는가. 연극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제작 과정인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이 없었다면 꿈만 꾸었을 일이다. 이 지원사업이 큰 도움이 됐다. 사실 그러고도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인적, 물적 자원으로 제작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지원사업 덕분이다. 내가 한 건 소품이나, 세트들을 재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제작비에만 예산을 쏟아부을 수 있게 노력한 점이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건 배우와 스태프들이 예산이 부족한 것을 알고 오히려 더 걱정해줬고, 개인 연습실 공간이나, 음식, 후원자들까지 소개해 줬다. 이 또한 극단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30명배우 중 20명이 극단원들이었기에 무대전환이라든가, 소품 제작, 퍼펫 제작 등 많은 예산을 써야 하는 것에서 절약할 수 있었다."
- 혹자의 평론에선 무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한정된 공간에서 같은 주제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려면 막전환 시 무대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소설을 각색하다 보니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여러 다양한 장면과 장소들이 구현돼야 했다. 너무 상징적이거나 비사실적인 것은 극의 성격과 맞지 않고, 너무 리얼한 무대는 공간의 한계를 주게 될 거라는 생각에 무대디자이너와 여러 차례 우려사항들에 대한 회의를 했다. 그러다 나온 것이 모빌형 무대였다. 장녀들이 갇혀있는 집이라는 구조와 이미지는 두되, 이 집들이 분리되고 합쳐지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보자는 의견으로 좁혀졌다.
그렇게 1, 3부는 집이 메인무대라 가능했지만, 2부 미션이 완전히 다른 (라다크) 곳이라 어떤 표현들로 전환이 이뤄져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1부 마지막에 장녀, 나오미가 '집을 판다'는 것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딸이 집을 팔고 그 집이 공사나 이사에 들어간다면? 집을 보여주는 무대들이 서서히 분리돼 퇴장하고, 사라지면 빈 무대에 새로운 무대가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1부 무대가 완전히 사라질 때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커튼이 걷히고 그곳에 히말라야산맥과 타르초가 있는 것이다. 셋업 때는 이것들이 과연 얼마나 자연스레 구현될까 고민도 했었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잘 구현된 듯하다."
"한국 결혼제도 문제점 등 다뤄보고 싶어"
▲ 2부 '미션' 공연 장면 ⓒ 보통현상
- 동시대에 던지는 메시지와 함께 전작에서 전석매진이라는 흥행성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대학로 연극계에서 쉽지 않은 성과를 보여줬기에 이번 수상까지 이어진 것 같다. 연출가로서 작품을 제작하는 데 어떤 부분을 주안점으로 뒀나?
"여러 동호회나 크고 작은 단체들에게 홍보를 해 비예술인들이 공연을 많이 볼 수 있도록 홍보했다. 또 이야기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도록 선명한 구조로 풀고, 빠른 장면 전환을 통해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게 했다. 그것이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 2021년 모친의 병간호에서 나온 직접적인 경험이 이 작품의 각색에서 어떻게 반영됐나.
"모친의 병간호에서 경험이라기보다 그때 병원에서 바라보았던 풍경들이 제게 큰 인상으로 남았다. 오히려 그 경험에 저는 없다. 내가 바라본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너무 힘겹게 병간호를 하고 있었고, 누구도 아픈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 같지 않았다. 보호자도 환자도 다 지치고 괴로워 보였다. 아무 말 없이 혼자 앉아 있는 보호자와 환자의 모습은 서로의 지친 상황이 서로를 떼어 놓고, 마음을 가두게 한 것 같았다.
장녀들은 모두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했다. 환자인 부모들도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 작품의 인물들도 병원의 그들처럼 뭔가를 쏟아내고 싶지만 그냥 말하지 못하고 견디고 있는 모습, 그리고 혼자 있을 때 감정이 터져 나오는 모습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싶었다."
-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서 노년과 죽음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을 더 듣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하기엔 각자의 생각들이 다르기에 질문만을 던졌는데, 마치 우리는 늙지 않으려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들이 돌봄을 연장시켜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으로 사람의 관계들을 이끄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스레 병들어 죽는 것에 대해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너무 과한 의료들이 우리를 오히려 더 고통스럽게 오래 생명을 붙들고 있으니까."
- 프로젝트아일랜드에게 관객들의 충성도가 높은 비결은 알려달라.
"극장에 왔을 때 관객들이 뭔가를 얻어 가길 바란다. 아마 대다수의 연출들이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나도 그렇다. 이 시간을 우리에게 내어준 관객들에게 할 수 있는 보답은 티켓값이 아깝지 않게, 연극다운 연극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대한 기복 없이 만들어 내려고 노력한다."
- 4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을 견디는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4시간은 물리적으로 긴 시간이 맞다. 그러나 1, 2, 3부가 각각 다른 이야기이고,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다 보니, 생각보다 관객분들의 체감 시간은 훨씬 짧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너무 힘들었다면 다음에는 인터미션의 안배를 고민하겠다."
-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 시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한국 결혼제도에서의 문제점과 형식적인 측면들을 다루어 보고 싶다. 비혼과 집값 상승의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기성세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가 제일 시급하다."
* 서지혜(1979) 현 프로젝트아일랜드 대표, 연출
- 주요작품: <장녀들>, <두 코리아의 통일>, <BULL>, <러브송>, <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고독한 목욕>, <아일랜드>
-수상경력: 2024년 <장녀들> 이데일리 문화대상, 2018년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동아연극상 작품상 수상, 공연베스트 7, 공연과 이론 모임 작품상 수상, 서울연극제 대상, 연출상 수상, 2015년 <아일랜드> 홋카이도 연극재단 연극 베스트 대상, 2014년 <아일랜드> 삿포로 TGR(Theater go round) 연극제 대상 수상
▲ 3부 퍼스트레이디 ⓒ 보통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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