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친구들이 생일파티에서 벌인 위험한 게임
[안지훈의 3인칭 관객 시점]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
1960년대 미국 뉴욕이라는 배경에 어울리는 가구들이 무대에 가득하다. '마이클'이라는 한 남자의 집이고, 이곳에 총 9명의 남자가 모여든다. 크지 않은 대학로 극장에 배우 9명이 출연하는 공연도 드문데, 여기에 모든 배역이 남자 캐릭터라니 이 역시 보기 드문 일이다. 어떻게 보면 신선하고 획기적이다.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번에 한국에 처음 소개된 <보이즈 인 더 밴드>는 반세기 전 미국에서 처음 공연되었는데, 이때 미국에서도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7명의 동성애자 친구들과 2명의 손님이 한 집에 모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려낸 <보이즈 인 더 밴드>는 당시 소수자의 삶을 조명하는 데에서 나아가 사랑, 가족 등과 같은 주제도 다루며 호평을 받았다.
이후 2018년 다시 무대에 올랐을 때에는 공연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일컬어지는 토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동성애자 친구들의 이야기는 20세기에도 획기적인 주제였는데,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공연계에서 소수자를 이야기하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워 모든 이야기를 채우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이즈 인 더 밴드>가 반가웠다.
연극이 조명하는 소수자의 삶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60년대 어느 날은 '해롤드'의 생일이다. 해롤드는 동성애자이면서 마약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 마이클과 해롤드를 비롯한 동성애자 친구들은 해롤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다.
앞서 해롤드의 특징을 굳이 언급한 까닭은 연극에 등장하는 7명의 동성애자들이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흔히 미디어에서 동성애자에게 씌우는 편견의 이미지, 예컨대 높은 톤의 목소리나 특유의 말투, 제스처가 동성애자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물론 특유의 말투와 제스처로 수다 떠는 걸 즐기는 '에머리'라는 인물도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이외에 집 주인인 마이클은 여전히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며 자기 혐오에 빠져있고, 또 누군가는 멀끔한 직업과 맵시를 애써 유지하며 다수자 중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성애자이며, 다른 친구들 역시 각자만의 고민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마이클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이자 아내와 자녀가 있는 '앨런'이라는 인물이 생일 파티가 열리는 마이클의 집을 찾아오면서, 동성애자 친구들 간의 차이는 분명해진다. 마이클은 아직 앨런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기에 친구들에게 조심해달라고 부탁하는데, 누군가는 동조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얼떨결에 성향을 드러낸다. 또 다른 친구는 대놓고 앨런과 부딪히기도 한다.
연극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차이'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소수자 집단을 하나의 동질적인 대상으로 바라보진 않았는지 질문하게 한다. 편견이 덧칠된 이미지로 소수자를 묘사하고, 그렇게 소수자에게 '소수자다움'을 강조하진 않았는지 묻게 한다.
'Who I Am?'이라는 질문
이후 이들은 진실을 대면하는 일련의 게임을 통해 새로운 갈등을 맞이하기도, 이전의 갈등을 봉합하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연극을 관통한다. 등장인물들은 갈등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혹은 스스로 지난 날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다.
이런 점에서 연극에 'Who I Am'이라는 음악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질문하기 이전에 묘사하는 자기 자신, 타인이 평가하는 자신, 그리고 스스로 성찰한 후에 다시 묘사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보이즈 인 더 밴드>를 단순히 소수자들의 이야기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한편 <보이즈 인 더 밴드>에는 '카우보이'라는 또 다른 손님이 등장한다. 해롤드의 생일 파티를 위해 고용된 인물로, 그는 스스로를 "남창"이라고 이야기한다. 카우보이는 등장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연결고리가 없는 인물이다. 일면식이 없고 서로 간의 얽힌 사정을 모르기에 외부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덕분에 동성애자 친구들의 어떤 면은 순수하게 이해하고, 궁금한 것은 거침없이 질문하며,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필자는 이런 카우보이가 무지한 상태에서 차츰 이해하기 시작하는 인물로서의 상징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가 잘 모르는 대상을 볼 때 지녀야 하는 태도가 아닌지, 공연을 보는 관객이 갖춰야 하는 태도가 아닌지 생각했다.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는 12월 29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3관에서 공연된다. 오정택, 안재영, 박은석, 진태화, 정상윤 등이 출연한다.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번에 한국에 처음 소개된 <보이즈 인 더 밴드>는 반세기 전 미국에서 처음 공연되었는데, 이때 미국에서도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7명의 동성애자 친구들과 2명의 손님이 한 집에 모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려낸 <보이즈 인 더 밴드>는 당시 소수자의 삶을 조명하는 데에서 나아가 사랑, 가족 등과 같은 주제도 다루며 호평을 받았다.
연극이 조명하는 소수자의 삶
▲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 공연사진 ⓒ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60년대 어느 날은 '해롤드'의 생일이다. 해롤드는 동성애자이면서 마약 중독에 시달리고 있다. 마이클과 해롤드를 비롯한 동성애자 친구들은 해롤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다.
앞서 해롤드의 특징을 굳이 언급한 까닭은 연극에 등장하는 7명의 동성애자들이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흔히 미디어에서 동성애자에게 씌우는 편견의 이미지, 예컨대 높은 톤의 목소리나 특유의 말투, 제스처가 동성애자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물론 특유의 말투와 제스처로 수다 떠는 걸 즐기는 '에머리'라는 인물도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이외에 집 주인인 마이클은 여전히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며 자기 혐오에 빠져있고, 또 누군가는 멀끔한 직업과 맵시를 애써 유지하며 다수자 중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성애자이며, 다른 친구들 역시 각자만의 고민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마이클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이자 아내와 자녀가 있는 '앨런'이라는 인물이 생일 파티가 열리는 마이클의 집을 찾아오면서, 동성애자 친구들 간의 차이는 분명해진다. 마이클은 아직 앨런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기에 친구들에게 조심해달라고 부탁하는데, 누군가는 동조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얼떨결에 성향을 드러낸다. 또 다른 친구는 대놓고 앨런과 부딪히기도 한다.
연극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차이'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소수자 집단을 하나의 동질적인 대상으로 바라보진 않았는지 질문하게 한다. 편견이 덧칠된 이미지로 소수자를 묘사하고, 그렇게 소수자에게 '소수자다움'을 강조하진 않았는지 묻게 한다.
'Who I Am?'이라는 질문
▲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 공연사진 ⓒ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이후 이들은 진실을 대면하는 일련의 게임을 통해 새로운 갈등을 맞이하기도, 이전의 갈등을 봉합하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연극을 관통한다. 등장인물들은 갈등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혹은 스스로 지난 날을 회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다.
이런 점에서 연극에 'Who I Am'이라는 음악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질문하기 이전에 묘사하는 자기 자신, 타인이 평가하는 자신, 그리고 스스로 성찰한 후에 다시 묘사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이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보이즈 인 더 밴드>를 단순히 소수자들의 이야기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한편 <보이즈 인 더 밴드>에는 '카우보이'라는 또 다른 손님이 등장한다. 해롤드의 생일 파티를 위해 고용된 인물로, 그는 스스로를 "남창"이라고 이야기한다. 카우보이는 등장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연결고리가 없는 인물이다. 일면식이 없고 서로 간의 얽힌 사정을 모르기에 외부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덕분에 동성애자 친구들의 어떤 면은 순수하게 이해하고, 궁금한 것은 거침없이 질문하며,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에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필자는 이런 카우보이가 무지한 상태에서 차츰 이해하기 시작하는 인물로서의 상징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가 잘 모르는 대상을 볼 때 지녀야 하는 태도가 아닌지, 공연을 보는 관객이 갖춰야 하는 태도가 아닌지 생각했다.
▲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 공연사진 ⓒ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연극 <보이즈 인 더 밴드>는 12월 29일까지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3관에서 공연된다. 오정택, 안재영, 박은석, 진태화, 정상윤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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